커피 찌꺼기가 컵으로, 페트병 뚜껑이 옷걸이로….
쓰레기에 숨을 불어넣어 낭비를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자며 등장한 ‘제로웨이스트’ 열풍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넘어서면서 잦아드는 분위기다. 고물가와 함께 찾아온 불황이 값비싼 친환경 제품 소비를 외면하게 하면서다. 제로웨이스트 가게도 하나씩 문을 닫는 가운데, 가게들도 장기적인 생존 방식을 고민 중이다.
3일 <한겨레>가 서울시 ‘스마트 서울맵’에 등록된 제로웨이스트 가게(리필 및 친환경 생필품 한정)의 운영실태를 분석한 결과, 총 91곳의 제로웨이스트 가게 중 10곳(11.0%)은 현재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는 2021년 말부터 가게의 요청이 있거나, 시의 지원을 받는 가게를 대상으로 스마트 서울맵에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등록했다. 10곳 중 1곳은 불과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문을 닫은 셈이다. 이중 두레협동조합이나 기업에서 운영하는 방식(17곳)을 제외하면 64곳(70.3%)만 개인 가게 형태로 운영 중이다.
제로웨이스트 가게의 상징인 서울 마포구 ‘알맹상점’ 고금숙(46) 공동대표는 “2021년과 비교해 지난해에 방문한 고객이 60~70% 수준”이라며 “영업이 어려워 운영을 중단하는 가게가 많다”고 밝혔다. 알맹상점의 공급처도 한 달에 많아야 6~7곳 정도다. 한창(2020∼2021년)때엔 많으면 한달에 30곳에 달했다.
1990년대 후반 등장한 ‘쓰레기 없는 생활’을 뜻하는 제로웨이스트는 201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생활운동이 됐다. 국내에선 2018년 알맹상점이 장바구니 대여 등의 운동을 시작하면서 주목받았다. 알맹상점은 2020년 6월에 문을 열었다.
점주들은 고물가 여파로 값비싼 친환경 제품에 대한 인기가 식은 결과라고 본다. 고 공동대표는 “친환경 제품은 좀 더 가격이 나갈 수밖에 없는데 시민들 지갑 사정도 좋지 않고 물가도 많이 올라 점차 찾지 않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꽃삼월’ 장혁(41) 점주는 “초기에는 환경의 가치를 위해 소비했다기보다는 일종의 유행에 동참하는 차원이 강했던 것 같았다”고 했다. 장 점주가 참여한 10여명 남짓한 제로웨이스트 점주 모임에서도 최근 3명의 점주가 폐업을 결정했다.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던 임소연(30)씨는 “친환경 제품은 가격이 높은데 최근 물가도 많이 올라서 구매가 망설여진다. 오히려 대기업 제품을 오랫동안 쓰는 게 친환경적일 수 있겠다 싶다”며 “제품군이 다양하지 않은 점도 한계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제품을 다양화해서 고객도 즐겁게 가게를 방문할 수 있도록 가게의 시도도 필요하지만, 영세한 가게들이 많아 쉽지는 않다”고 했다. 장 점주도 “시의 자금 지원도 좋지만, 장기적인 생존에 필요한 정책이 고민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는 신규 가게는 800만원, 기존 매장은 220만원의 사업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제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알맹상점이 2022년 1월1일부터 12월7일까지 집계한 재활용 제품은 6397㎏으로, 1년 반(2020년 6월~2021년 12월) 집계한 양(8274㎏)과 비교해 적지 않다. 인천 연수구 ‘플래닛어스’ 점주는 “한 번 경험한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찾는다”며 “아직 제품 다양성엔 한계는 있지만, 특별함은 분명히 있다. 자리만 잡으면 성장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 200개 상점 등록을 목표로 지원 사업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