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사회일반

지상은 전세 2억, 닥닥 긁어도 역부족…반지하 ‘3중 잠금장치’

등록 :2022-08-19 05:00수정 :2022-08-20 01:17

2022, 반지하에 산다 지상까지 세 개 관문

① 보증금
‘LH 임대’ 알아본 석수씨 쥔 돈 200만원
보증금 최대 지원액 1억2천으로 못 구해
②관리비
‘LH 매입주택’ 순번 받은 수현씨
관리비 7만원 마련 길 없어 포기
③관계
급식 지원단체 모여있는 곳인지
지하철요금 1500원 안 드는 곳인지
홍수 피해를 본 서울 관악구 한 반지하 집에서 지난 16일 오후 침수된 세간살이를 들어내고 공사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홍수 피해를 본 서울 관악구 한 반지하 집에서 지난 16일 오후 침수된 세간살이를 들어내고 공사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재난 앞에 참상을 드러낸 반지하 집을 두고 ‘일몰제’(서울시)를 선언하고 ‘근본적 개선’(국민 주거 안정 실현방안)을 다짐하는 정부를 향한 반지하 주민들의 제언은 신중했다. 이들은 ‘지하’로부터 ‘지상’에 이르기까지 놓인 관문을 결코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 중요한 것, 사소한 줄 알았던 것 하나하나에 마음을 썼다.

서울 정릉동 반지하에 혼자 사는 박신애(가명·62)씨도 서울시의 반지하 퇴출 이야기를 듣고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저도 예전에 힘들게 아이 키워봤으니까요. 일단 아이 있는 집부터 정상적인 집을 마련해주면 좋겠고요, 반지하 나와서 이사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집은 없는지, 동네에서 떠나는 게 힘든 이유는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꼼꼼히 따져서 대책이 나오면 좋겠다고들 해요.”

지하·옥탑·고시원 등 비적정 주거에 사는 이들한테 ‘안전한 지상의 집’은 누구보다 간절하다. 다만 섣불리 희망을 품기는 어렵다. 불안과 희망 사이 간극을 벌리는 건 이들에게는 생명줄인 현재 주거복지 제도의 한계다.

‘반지하 이후’를 위해 정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주민들의 목소리와 함께 한국도시연구소가 쪽방, 고시원, 반지하 등 비적정 주거에 사는 50명의 심층 인터뷰를 담아 만든 2020년 ‘비적정 주거지 주거상황 심층조사’(이하 주거상황조사) 보고서를 참조해 짚었다. 주거상황조사 대상자들의 생각은 <한겨레>가 15~16일 만난 반지하·고시원 주민들의 말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한마디로 ‘집을 넘어 삶을 보아달라’는 요구였다.

서울 석관동 반지하에 사는 강석수(가명·67)씨는 불쑥 재정비 사업 소문을 귀띔했다. “우리 건물도 가로주택정비 사업인가를 추진한다는 소문이 있어요.” 집이 재건축되면 석수씨의 ‘삶’은? “떠나야겠죠. 떠나서 또 갈 수 있는 데는 반지하밖에 없고.”

관문① 돈: 보증금 200만원

석수씨네 집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이다. 보증금 200만원은 석수씨가 쥔 유일한 목돈이다. 소득은 기초생활보장 주거·생계 급여(그래픽 참조) 등 한달 79만원인데, 집세와 공과금을 빼면 40만원 정도로 한달을 살아낸다. 돈을 모을 여유가 없다.

그러나 석수씨의 목돈 200만원은 민간 임대 시장에서 초라하다. 수도권의 평균 전세 가격은 2016년 1억5천만원에서 2020년 2억1천만원까지 올랐다(2020년 주거실태조사). 석수씨의 200만원과 시장 가격이 멀어질수록 그 차이를 메워야 할 공공의 주거복지 부담이 커진다. 더군다나 정부는 공기업의 재정 효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의 주거복지는 크게 주거비 지원과 공공임대주택으로 나뉜다. 주거비 지원은 석수씨 같은 ‘기준중위소득 46%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한 주거급여가 대표적이다. 2022년 기준중위소득은 1인가구 194만5천원이며, 주거급여는 월 최대 32만7천원이다. 석수씨가 이 집을 떠나서 갈 곳으로 또다시 반지하를 점찍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서울에서 가장 크게 늘어난 공공임대주택 유형은, 사실상 전세보증금 지원 제도인 전세임대인데 이 또한 가파르게 오르는 시장 가격 앞에 속수무책이다. 전세임대가 최대로 지원하는 전세보증금은 1억2천만원. “그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을 찾기 어렵더라고요.”(강석수)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국장은 “궁극적으로 민간 부동산 시장이 안정돼야 임대료가 안정되고 공공의 재정 지원 부담도 덜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 한 반지하 집의 안방 모습. 오후 2시께인데 창 바깥 아파트의 담벼락이 막아선 탓인지 어두워 보인다. 창틀에 화초가 놓여 있고, 지난 폭우 때 젖은 빨래가 널려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성북구 삼선동 한 반지하 집의 안방 모습. 오후 2시께인데 창 바깥 아파트의 담벼락이 막아선 탓인지 어두워 보인다. 창틀에 화초가 놓여 있고, 지난 폭우 때 젖은 빨래가 널려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관문② 집: 관리비 7만원

“벌레가 막 부비고(달라붙고), 불나면 타 죽을 것 같은” 서울 강서구의 한 고시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수현(가명·54)씨도 수를 써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임대주택을 신청했다. 마침내 그의 차례가 왔다. 주거급여에 맞춰 월세로 나온 도시형 생활주택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 문제는 관리비 7만원이었다. 생활비로 쓰기에도 빠듯한 생계급여 58만원에서 7만원이 나가야 할 상황이라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갈 기회를 포기했다. “또 기다리고 있는데 집이 안 나오네요.”

관리비, 삶에 드는 잡다한 비용은 주거상황조사 보고서에 참여한 비적정 주거 주민들도 입을 모아 짚는다. “아파트 관리비 내는 게 부담스러워서 (공공임대 아파트) 안 가요.”(63살, 반지하 거주 1인가구) “고시원 생활을 쭉 해와서 냉장고도 없고….”(60살, 고시원 거주 1인가구)

주거급여는 물리적인 집 너머, 최소한의 삶을 위한 주거 품질까지 지원하지 못한다. 2015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생계·의료·주거 급여로 나뉘면서 ‘공동주택 관리비’는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어느 쪽에도 따로 포함되지 못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폭우로 반지하에서 돌아가신 분들 앞에서 돌아봐야 할 것은 무엇보다 그분들이 모두 주거급여 수급자였다는 점”이라며 “정부 지원을 받아도 안전하게 관리되지 않는 집밖에 구할 수 없는 현실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와야 거실 겸 부엌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박신애씨의 반지하 집 모습.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와야 거실 겸 부엌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박신애씨의 반지하 집 모습.

관문③ 삶: 10㎞

취약계층의 주거 문제를 살피는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만났던 한 사람 한 사람의 필요를 떠올린다. ‘취약’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을 수 없는, 모두 다른 사람이다.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도 다양하다. “아무래도 서울역과 용산 주변에 취약계층 급식소나 쪽방 지원 단체들이 있다 보니 그곳을 터전으로 삼으신 분이 많은데요, 그런 분들한테 예를 들어 강서구 공공임대주택으로 가는 일은 익숙했던 지원 체계, 관계를 모두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예요. 만 65살이 안 된 분들은 지하철 요금 1500원도 부담스럽고요. 자폐 장애가 있는 분들은 새로운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고요.” 그래 봐야 서울 안, 10㎞쯤 이사하는 일도 그리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한텐 절박한 삶의 저변을 바꾸는 일이다.

정부는 엘에이치 반지하 공공임대 거주자 1800가구 중 79.4%가 다른 지역 공공임대로의 이전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숫자 안에는 비적정 주거를 반드시 떠나고 싶고, 동시에 집을 바탕으로 꾸린 삶을 포기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담겨 있다. ‘반지하 퇴출’ 정책이 새겨야 할 마음이다. 주거상황조사 속 참여자들의 목소리로 대신 전한다.

‘반지하에 곰팡이가 심하니까 아이가 집을 ‘감옥’이라고 비유하더라고요. 가끔씩 엄마가 집에 늦게 도착하면 집에 안 들어가고 앞에 나와 있는 거예요.’(11살 아이 어머니, 현재 원룸 거주) ‘외국인들 오는 게스트하우스로 바꾼다고 해서 쫓겨났고, 또 한번은 집수리한다고 쫓겨났고요.’(61살, 쪽방 거주 1인가구) ‘2층에 있는 고시원이 왜 좋으냐면 장애인이고 관절염이 있으니까요. 되도록 계단을 적게 걸어야 해요.’(52살, 고시원 거주 1인가구) ‘나는 고독사라는 걸 몰랐는데, (사람이) 외로워서 죽어요.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협심하고 이야기를 하고 같이 살아나가는 거죠.’(59살, 쪽방 거주 1인가구)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경찰국 신설 반대한 총경 ‘문책성’ 인사 1.

경찰국 신설 반대한 총경 ‘문책성’ 인사

서울대 정시에 내신 반영했더니…일반고 출신 합격생 소폭 증가 2.

서울대 정시에 내신 반영했더니…일반고 출신 합격생 소폭 증가

‘한입 먹고 식사 끝’ 나도 해볼까?…‘소식좌’ 유행의 그늘 3.

‘한입 먹고 식사 끝’ 나도 해볼까?…‘소식좌’ 유행의 그늘

미국서 7천억 배상 ‘아이폰 성능 저하’, 한국에선 패소…왜? 4.

미국서 7천억 배상 ‘아이폰 성능 저하’, 한국에선 패소…왜?

서울 마포 골목서 제네시스 ‘급가속’…운전자·보행자 숨져 5.

서울 마포 골목서 제네시스 ‘급가속’…운전자·보행자 숨져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 뉴스그래픽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탐사보도 | 서울&
스페셜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사업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