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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폭우 때 그 사투 겪고도…10평 곰팡이집이 ‘최선’이었다

등록 :2022-08-18 05:00수정 :2022-08-19 12:08

2022, 반지하에서 산다 ① 네 가족 이야기
반지하 가구 43%가 2인 이상
전세 보증금, 지상의 3분의1
무직 많고 일해도 임시·일용직 31%
“집값은 집값대로 올려놓고
땅 위로 가라면 갈수 있나요?”
지난 8일 밤 쏟아진 집중호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층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숨졌다. 이들은 밤 9시께부터 불어난 물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일가족이 살던 반지하층의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8일 밤 쏟아진 집중호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층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숨졌다. 이들은 밤 9시께부터 불어난 물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일가족이 살던 반지하층의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예기치 않은 불운이 닥친 어떤 날들이 있었다.

강석수(67)씨는 1990년대 중반 양파값 폭락으로 농사를 접고 전남 무안에서 서울로 와 반지하를 첫 집으로 삼았다. 이후 25년 가까이 서울살이 하며 버스 운전도 하고 고깃집 철판도 닦았는데 지상으로 올라가 산 적은 없다. 지금도 석관동 반지하 집에 혼자 산다.

유현기(70)씨는 그즈음 직원 200명이 넘는 아동복 공장을 폐업했다. 3년 전 뇌경색을 겪었다. 수술을 마치고 수중에 있는 1천만원으로 아내와 구한 집은 삼선동에 있는 방 2개와 주방으로 이뤄진 반지하 집이다.

박신애(63)씨한테는 남편이 사기를 당한 뒤 사라진 날이, 최태진(52)씨한테는 자신과 두 아이를 두고 갑자기 아내가 떠난 날이 불운했던 날이다. 두 사람 또한 각각 정릉동 반지하 집과 사당동 수해 대피소에서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이었던 그 불운한 날들을 떠올렸다.

2022년 8월8일. 다시 한번 불운이 닥쳤다. “같이 앉아 있는데 아내가 갑자기 ‘여보 큰일 났어!’ 소리 질렀어요.” 현기씨네 작은방 벽을 타고 빗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내는 정신없이 짐을 치우며 비닐봉투를 잘라 빗물받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는 나아요. 완전 침수된 다른 반지하 사람들은 어떡해요.” 그런 집, 사당동 태진씨네는 그 시각,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7살, 8살 두 아이 먼저 밖으로 내보내니 본격적으로 물이 들이차 태진씨 허리춤에 이르렀다. 물은 오물과 함께 화장실 배수구에서 솟구쳤고, 계단 위의 것들을 쓸면서 내려왔다. 태진씨도 곧장 탈출해 세 가족은 살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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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9일 폭우 속에 반지하 집에서 4명, 컨테이너 집에서 1명이 목숨을 잃었다. 반지하를 비롯해 옥탑·고시원·쪽방 등 비적정(취약) 주거에 관심이 쏠렸다. 이런 집은 2020년 기준 전국 85만5천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서울시는 앞으로 20년 동안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국토교통부는 취약계층 주거 실태를 조사하고 종합계획을 세우겠다고 했다. “지상으로 올라가길 다 원하죠. 그런데 집값은 집값대로 올려놓고 땅 아래 사는 사람들 올라가라고 하면 올라갈 수 있겠어요?” 신애씨는 정부 대응이 영 못 미덥다. 2018년 서울 종로구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2019년 영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도 비슷한 관심은 끓어올랐다가 이내 식었다.

<한겨레>는 한국도시연구소가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의 의뢰로  ‘2020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마이크로 데이터를 분석해 긴급 작성한 ‘생명권과 건강권을 위협받고 있는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 실태와 대응 방안’ 보고서(‘지옥고’ 보고서)를 입수해 한국 사회 비적정 주거의 모습과 주거 복지 대안을 두차례에 걸쳐 전한다.

정부의 공식적인 실태 발표가 없는 현재, 반지하 가구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가장 최근의 통계다. 그와 함께 반지하 집에 사는 네가구를 지난 15일 만났다. 개인의 재산 상태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돼 있어 모두 가명으로 적었다. 예기치 않은 불운, 벗어나기 쉽지 않았던 가난, 또다시 벌어진 재난 앞에서 자산이 아닌 ‘사는 공간’으로서 집의 절박함을 그들은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최대한으로 구한 세 식구의 최소한

지난 15일 서울 사당동 종합복지관에 마련된 수해 대피소에서 태진씨네 두 아이는 형광빛이 감도는 주황색, 초록색 옷을 입고 휴대전화 게임을 하느라 여념 없었다. 오락가락하는 비에 집에 돌아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태진씨는 “젖은 가전 기구만 길가에 두고 말리고 있다”고 했다.

사당동에 있는 태진씨네 반지하 집은 33㎡(10평) 남짓하다. 폭우와 함께 아수라장이 펼쳐졌지만, 방 2개와 주방이 포함된 이 집은 세 식구의 ‘최소한’이다. 아빠와 두 아들이 집에서 잠만 잘 수는 없다. 여느 집처럼 이들의 집 또한 먹고, 놀고, 공부하고, 부대끼는 ‘생활 공간’이 필요하다.

집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에 구했다. 지적 장애가 있는 태진씨가 구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보증금 가운데 300만원을 서울시가 지원했다. 주거급여로 월세를 해결한다. 생활비는 복지관에서 설거지 보조로 일하며 번다. 여기서 얻는 매달 59만원과 장애연금(40만원), 아동수당(20만원), 소액의 후원금이 이씨 가족의 생활비다. 반지하가 아닌 한, 서울에서 이 정도 비용으로 3인 가족이 삶을 꾸릴 수 있는 공간을 찾기는 어렵다.

반지하 가구는 다른 비적정 주거보다 넓고 2인 이상의 가족 구성이 많다. 1인 가구 최소 주거 면적인 14㎡ 이상인 집이 대부분(98.1%)이다. 물론 ‘전반적인 물리적 상태에 불만족한다’는 응답 비율(40.2%)은 전체 가구(12.8%)보다 월등히 높다. 환경을 포기하는 대신 가격과 넓이를 택한 셈이다. 가구원 수가 2인 이상인 지하 가구는 43%에 이른다. 1인 가구 비중이 90%를 넘는 쪽방이나 고시원보다 ‘가족’이 많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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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에 들어온 건 1년6개월 전이지만 태진씨네가 사당동에 산 지는 어느덧 7년이 됐다. 일터가 가깝고 태진씨네를 담당하는 지역 사회복지사와 관계도 끈끈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생활 터전이 되었다. “좀 더 싼 다른 지역에 사는 것도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애들 학교가 여기고, 제가 또 사당동에서 오래 살았거든요.” 쉽게 떠날 수 없다. 가족은 사투를 벌였던 그 동네로, 돌아가야 한다.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와야 거실 겸 부엌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박신애씨의 반지하 집 모습.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와야 거실 겸 부엌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박신애씨의 반지하 집 모습.

3분의1만큼의 임대차 시장

2020년 11월 현기씨 부부가 1천만원 보증금을 쥐고 찾은 곳은 삼선동 일대 공인중개사무소다. 현기씨는 삼선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죽더라도 여기서 죽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공인중개사가 보여준 집은 모두 (반)지하였다. 애초부터 큰 기대는 없었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어야죠. 없는 사람이니까.” 서울 전체 전세 가구의 평균 전세보증금은 1억7683만원이다. 지하 가구는 6527만원으로 3분의 1 수준이다. 현기씨네 집은 보증금 1천만원에 38만원, 이 집이 “우리 수준에 딱 적합한 액수”라고 생각했다.

‘우리 수준’에는 일해서 돈을 벌기 어렵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현기씨는 뇌경색을 겪었고 심혈관계 질환도 앓는다. 한쪽 눈도 안 보인다. 아내가 식당에서 시간제로 일해 버는 50만~60만원 정도가 노동소득의 전부다. 기초연금(30만원), 생계급여(27만원), 주거급여(32만원) 등을 합하면 가구 소득은 월 100만원을 조금 넘긴다.

노동·소득과 반지하의 삶은 연결돼 있다. 지하 거주 가구는 ‘지난 1주일 동안 일하지 않았다’는 비율이 34%(전체 가구 24.4%)로 높은 편이다. 일을 한 경우도 임시·일용직인 비중이 31%에 이른다(전체 가구 11.4%). 그에 따라 지하 거주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0만4천원으로 전체 가구(317만5천원)보다 100만원 이상 적다. 지하 거주 가구가 현재 거처로 이사한 이유 가운데 ‘주거비 부담’은 21.3%로 전체 가구(10.3%)의 두배다.

민간 임차 시장에서 ‘수준에 맞춰 구한 집’이 주는 스트레스는 다양하다. 이를테면 지상의 법률이 통하지 않는다. 건물 차고가 3분의 1쯤 파고들어온 집 구조는 불법임이 명백해 보이지만 현기씨는 문제 삼지 않는다. 이번 폭우에 벽면에 비가 쏟아져 곰팡이가 피었다는 이야기도 집주인한테 하지 않을 작정이다. “집 들어오고 나서 1년도 안 돼 형광등이 안 켜져서 집주인한테 이야기했는데 막 화를 내는 거예요. 그래서 ‘알았다, 이런 데 사는 내가 잘못이지’ 그러고 제가 직접 다시 설치했어요. 집주인한테는 (이제) 아무 말도 안 합니다.”

그래도 희망이라면, 주거복지센터 도움으로 ‘기존 주택 전세임대주택’ 사업의 수혜를 보게 됐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주거취약계층이 1억2천만원 한도 안에서 직접 집을 구해오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대신 임대차 계약을 맺는 제도다. “전세 1억2천으로 좋은 집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월세를 좀 더 얹으면 지상에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요?” 현기씨의 기대에는 어딘지 불안이 감돈다.

공공을 못 믿겠다

신애씨는 에스에이치 전세임대 주택 제도를 이용해 세차례 집을 옮겼다. 첫 집은 물이 잘 나오지 않았고, 두번째 집은 지붕이 무너졌다. 그리고 2020년에 만난 세번째 집, 반지하였다. “처음에 그 집을 보고 너무 기뻐서 두번도 안 봤어요.” 보증금 9천만원에 자녀와 손주가 놀러올 수 있을 만큼 넓은 집은 지하라 가능했다. 보증금 가운데 8500여만원은 에스에이치가 부담하고 신애씨가 본인 부담 보증금 450만원과 다달이 월세처럼 에스에이치에 이자 13만원을 내는 조건이었다.

이사한 지 두달이 지났을 무렵, 이불을 비롯해 집안 가구와 물품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벽과 바닥에도 습기가 차 스티로폼을 깔고 자야 할 정도였다. 곰팡이가 핀 탓에 그 집에서는 옷가지조차 망가졌다. 신애씨는 “사람들이 보기엔 우스운 물건이겠지만, 예순살 넘어까지 우리 애들하고 나 살던 흔적이 하나도 안 남았다”고 말했다. 가족을 초대하고 싶어 마련한 집에서 가족의 흔적을 잃었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 한 반지하 집의 안방 모습. 오후 2시께인데 창 바깥 아파트의 담벼락이 막아선 탓인지 어두워 보인다. 창틀에 화초가 놓여 있고, 지난 폭우 때 젖은 빨래가 널려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성북구 삼선동 한 반지하 집의 안방 모습. 오후 2시께인데 창 바깥 아파트의 담벼락이 막아선 탓인지 어두워 보인다. 창틀에 화초가 놓여 있고, 지난 폭우 때 젖은 빨래가 널려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결국 신애씨는 5개월 만에 다 놓고 집을 나왔다. 그러나 서류상 계약자인 에스에이치는 수수방관했다. 신애씨가 인근 주거복지센터를 찾아 도움을 요청한 뒤에야 에스에이치가 나섰고, 1년 가까이 신애씨는 본인 부담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한 채 월세를 내야 했다. 집을 나와 찾은 곳은 다시 반지하다. 다만 이번에는 공공 지원이 없다. 신애씨는 “전세임대주택 지원을 받으면 지금보다 나아질 순 있겠지만, 에스에이치를 더는 못 믿겠다”고 했다.

정부의 주거복지 정책은 크게 주거급여나 전세임대 같은 주거비 지원과 공공임대주택 등 주거 공간 지원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주거비 지원은 실제 사는 공간의 품질과 연계되지 않는다. ‘지옥고’ 보고서는 “주거급여 수급자가 지옥고에서 사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주거급여가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주거 품질과 연계되지 않는 한계가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적었다. 정부 지원으로 마련한 집에서 왜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일어났는지 설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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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집, 꿈꾸는 집

비적정 주거 속에서 그들이 꿈꾸는 적정한 주거를 물었다. “반지하에 혼자 살아도 그나마 덜 불안한 건 동네에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예요. 지하에서 끌어올려주는 것 좋지만 여기 머물게 해줬으면. 사람들이 자기 동네 지키면서 집도 깔끔하게 수리하고 관리하면서 살면 좋겠어요.”(박신애) “그동안 서민들을 서울에서 밀어내기만 한 것 같아요. 비싼 아파트만 짓고, 번호키 달아서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잖아요. 강자랑 약자랑 딱 이렇게 나눠진 게 참 안타까워요. 같이 살면 좋겠는데.“(강석수) “젊을 때 시를 썼는데 다시 써보고 싶어요. 의사가 건강해지려면 그런 게 필요하대요. 그러려면 침실 말고 방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는데.”(유현기)

‘사는 집’을 향하는 소박한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폭우 속 반지하 거주자 5명의 참혹한 죽음을 애도하며 ‘집’에 대한 생각과 정책이 얼마나 달라질지에 달린 일이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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