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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지각한 시간도 근무 인정”…전장연 시위 ‘지각 연대’ 합니다

등록 :2022-06-15 07:00수정 :2022-06-21 17:30

김나리 미디어오리 대표 인터뷰
장애인 지하철시위로 지각하면 근무시간으로 쳐
“정부가 문제인데 시위에 쏟아지는 혐오 안 돼
학생 지각하면 지각 처리 않겠다는 대학교수도
작은 회사의 움직임이 큰 회사들로 퍼졌으면”
미디어 인큐베이팅 기업인 ‘미디어오리’의 직원들. 김나리 미디어오리 대표는 13일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전장연 시위로 인해 지각한 시간만큼을 근무시간 기록 플랫폼에 ‘연대’로 표시하고, 직원 당사자의 근무시간으로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나리 미디어오리 대표 제공
미디어 인큐베이팅 기업인 ‘미디어오리’의 직원들. 김나리 미디어오리 대표는 13일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전장연 시위로 인해 지각한 시간만큼을 근무시간 기록 플랫폼에 ‘연대’로 표시하고, 직원 당사자의 근무시간으로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나리 미디어오리 대표 제공

“죄송한데, 저 오늘 회사 가서 일 못 할 거 같아요. 재택 근무할게요…”

13일 오전 김나리 미디어오리 대표에게 경기도 안양에 사는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사정을 들어보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이날부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52일 만에 재개해 서울지하철 4호선 운행이 1시간가량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지하철 2·4호선 사당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직원은 회사가 있는 3호선 안국역에 도착하더라도 거의 점심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김 대표의 회사는 4월까지만 해도 4호선 숙대입구역 근처에 있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직원들의 지각으로 예정된 미팅 시간이 자주 미뤄졌다고 한다. 직원들은 전장연 시위 예고 기사가 나오면 서로 이를 공유하기도 했다. 전장연의 시위 취지에 공감한 김 대표는 메신저에 직원들이 전장연 시위로 늦는다고 말하면 “지각으로 연대하자!”라고 댓글을 달고, 지각한 시간을 근무시간으로 계산했다.

김 대표는 13일 저녁 회사에 오지 못한 직원이 근무일정 기록 플랫폼에 올린 근무기록을 봤다. 이 직원은 원래대로라면 회사에 도착했을 시간보다 한참 늦은 시간을 출근 시간으로 적어놨다. ‘지각으로 연대한다는 것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시스템으로 이를 보장해야겠다’는 생각이 김 대표의 머릿속을 스쳤다.

“우리 회사는 앞으로 전장연 시위로 인해 지각한 시간만큼을 근무시간 기록 플랫폼에 ‘연대’로 표시하고, 직원 당사자의 근무시간으로 인정할 것입니다. 그동안은 기록 없이 인정해왔으나, 앞으로 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이 데이터를 근거로 기재부에 항의하겠습니다.”

현재 전장연은 기획재정부(기재부)에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김 대표는 바로 회사의 새로운 방침을 직원들에게 공지하고, 이러한 내용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렸다. 14일 오후 기준 김 대표의 트윗은 700건 넘게 리트윗됐고, 페이스북에서는 600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다. 김 대표는 “글에 대한 반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 한 대학교수님이 학생들이 전장연 시위로 지각하면 지각으로 처리하지 않고, 고생했다고 커피를 한 잔 사주겠다고 하셨다. 그 대신 이번 시위가 장기화하면 기재부에 민원을 넣고 커피값도 청구하겠다고 덧붙이셨다”고 했다. ‘지각 연대 선언’이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준 것이다.

미디어 인큐베이팅 기업 ‘미디어오리’의 근무기록 플랫폼에 추가된 연대 아이콘. 김나리 미디어오리 대표 제공
미디어 인큐베이팅 기업 ‘미디어오리’의 근무기록 플랫폼에 추가된 연대 아이콘. 김나리 미디어오리 대표 제공

김 대표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전장연 시위에 대해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을 강조했다. “전장연의 시위로 지각자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늦은 사람이 늦은 만큼 더 일해야 하는 노동시간, 이로 인한 커뮤니케이션 비용, 어수선한 아침 분위기로 낮아진 생산성까지, 전장연은 정확히 이런 불편함을 겨냥해 시위를 진행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이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주체, 바로 전장연과의 면담을 거부한 기획재정부에게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죠.”

20살부터 17년 동안 독일에서 산 김 대표는 전장연 시위를 보며 독일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고 했다. 공공운송노조의 파업으로 대중교통은 마비되고, 대체버스에는 어린이나 노약자들이 탑승하던 현장에서 그는 “연대할 수 있으니까 좋네요”라는 시민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때의 경험에 대해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그 날, 베를린에서 살아서 참 좋다는 말을 나눴어요. 그 날, 외국인으로 그 사회에서 살아가던 저는 그들이 부러웠으며, 한편으론 그 사회의 일원이라 좋았습니다. 벅찼어요.”

김 대표는 불편을 겪은 시민들의 화살이 전장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독일에서의 경험을 얘기하면 ‘유럽은 우리보다 여유롭잖아’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지만, 연대하겠다던 그 시민들도 빡빡하게 살아가는 보통의 시민이었어요. 전장연의 시위에 쏟아지는 욕설과 약자에 대한 혐오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서로에 대한 신뢰와 관심이 이렇게까지 떨어졌나 싶어 서글퍼졌습니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미디어오리는 미디어 스타트업을 인큐베이팅하고, <k장녀독립위원회>와 같은 짧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미디어 관련 기업이다. 김 대표는 직원이 7명에 불과한 작은 회사의 움직임이지만, 연대의 물결이 더 큰 규모의 회사로도 퍼지기를 바란다. 그는 “전장연의 시위로 회사에 지각하고, 그것이 자신이 감당해야 할 불이익으로 돌아온다면 당연히 분노가 느껴질 것이에요. 더 큰 기업들이 이런 시위는 공가로 처리해준다든지 등의 방식으로 먼저 배려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해요. 또한 기업 관리자들이 시위로 인한 지각 등의 데이터를 모아서 국가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요. 무엇보다 이 피해는 전장연이 아닌 정부 때문이니까요.”

지난 13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열차에 탑승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지난 13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열차에 탑승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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