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명시에 거주하던 50대 ㄱ씨는 10년 넘게 가족과의 연락이 끊겨 혼자 오랜 지병을 앓고 살았다. 건강 탓에 일을 할 수 없었던 김씨는 생계급여를 받으며 외롭게 버텼다. 1년여간 매주 똑같은 시간 자신을 찾아오는 이웃 봉사자 ㄴ씨를 만나고 나서야 적적함을 달랠 수 있었다. ㄱ씨가 가족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된 ㄴ씨는 사회복지관과 함께 ㄱ씨의 자녀를 수소문했다. 2020년 9월, 긴 설득 끝에 이들의 만남은 이뤄질 수 있었다. ㄱ씨는 바로 다음날 가족의 품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이는 광명 하안종합사회복지관에서 중장년(만 40~64살) 1인가구의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해 이들을 직접 방문하는 ‘뉴라이프 공작소’ 프로그램 참여자(뉴라이프 키퍼)의 이야기다. 코로나19로 중장년의 고독사 위험도가 더욱 커지고 있는 가운데 1인가구가 밀집한 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민간 사회복지관들이 직접 고독사 위험 사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복지 공백을 민간이 메우는 ‘실험’인 셈이다.
2020년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으로 전국 20개 복지관이 ‘사회적 고립가구’ 발굴에 나섰다. 지난해 서울시 복지재단도 10개 복지관을 선정해 고립가구를 발견 및 외부 지원 체계를 만드는 사업을 실시했다. 광명 하안종합사회복지관은 2020년부터 영구임대아파트와 다세대 주택, 고시원 등에서 고립 위험이 높은 중장년을 직접 찾아내 끊겨 있는 이들의 관계망을 되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복지관은 광명시민들로 구성된 뉴라이프 키퍼와 이들을 일대일로 연결해주고 있다.
3년째 키퍼로 활동하는 이아무개(50)씨는 11일 <한겨레>에 “사업 실패 뒤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분이 계셨는데, 집에 가 보니 몸이 부어 있어 급히 수술을 받게 해 드렸다. 넘어져 팔이 부러진 채로 지내셨다는데 우리가 없었다면 이분이 어떻게 됐을지 싶었다”며 “자립을 위해 여러 노력을 했음에도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 ‘왜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말할 것이 아니라,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고립가구 발굴에 나선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은 12명의 직원이 모두 나서 고시원 사장과 슈퍼 주인을 만나고 다세대 주택 골목을 돌며 67명의 중장년 고립가구를 찾아냈다.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권대익 사회복지사는 “어느 집주인 소개로 만난 분은 방 안에 쓰레기 더미가 가득하고 하루 종일 집에만 계시는 위험군이었다. 그런데도 여태 주민센터 등을 통해 공적 부조를 받은 적이 없는 사각지대에 계신 분이었다”며 “지자체도 최근 몇 년은 코로나19 관련 업무가 폭증하면서 어려움이 많은데, (우리 복지관은) 동 단위로 밀착해 전체 사회복지사를 투입해 사례 발굴과 모니터링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지역에서 중장년 1인 가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구로2동 화원종합사회복지관 역시 29개 쪽방과 고시원을 방문하고, 길거리 홍보를 하는 등 발품을 팔아 정부 복지망에 발견된 적 없는 취약계층 21가구를 찾아내기도 했다.
하안종합사회복지관 김재란 관장은 복지관들의 활동에 대해 “기초생활수급자 등 맞춤형 급여 대상자가 아닌 고립가구는 공공 영역에서 접촉할 길이 없다. 하지만 전문성을 가진 사회복지사가 지역에 밀착해 지속적으로 사례 관리를 하면서 정부·지자체의 복지 체계가 포섭하지 못하는 부분을 촘촘히 메꾸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립된 중장년층을 발굴하는 것과 더불어 장기화되는 고립을 막으려면 이들이 실직이나 건강 악화 등으로 위기에 빠지기 전부터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제력을 잃고 가족과 단절된 중장년은 불안정한 일용직 시장으로 내몰리는데, 이들이 주로 찾는 인력시장이나 산업 현장 등을 최전선 삼아 복지 연결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비정규직이나 단기근로를 하는 (중장년일수록) 건강이나 생활관리, 복지 면에서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이처럼 취약한 근로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일자리 부근에서 건강, 복지 상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며 “일용직일지라도 아프면 잠시 쉬고 다시 일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 등을 만들어 (고립에) 취약한 이들이 더 취약해지지 않도록 한 뒤 필요한 공적 지원을 연결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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