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겸해 열린 고 배은심 여사의 영결식에서 장녀 이숙례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1일 오전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겸해 열린 고 배은심 여사의 영결식에서 장녀 이숙례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만인의 엄마’로 자리 잡은 것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엄마가 내 엄마여서 행복했습니다. 이제 아버지도 만나시고, 한열이와 영면하세요. 삼일동안 장례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1일 오전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겸해 열린 고 배은심 여사 영결식에서 장녀 이숙례씨가 인사말을 했다. 5남매의 장녀인 이씨는 지난 9일 황망하게 세상을 뜬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는 “오늘 눈도 내리고 춥네요, 엄마.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분이 모여 있어요. 항상 엄마 마음을 아리게 했어요. 아들 가슴에 묻고 35년을 사셨던 엄마. 아들 보고 싶어 부르던 피맺힌 절규도 이젠 들을 수 없겠네요”라며 눈물을 훔쳤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로 평생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시대의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 영결식이 치러진 광장엔 유가족과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10시30분께 빈소가 차려진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노제가 열리는 5·18 민주광장으로 유해를 운구했다. 노제에선 연세민주동문회 이인숙 회장이 고인의 연보를 낭독했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1987년 6월9일 아들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7월5일 숨진 뒤, 민주·인권운동에 헌신해 민주화 운동가로 거듭났다. 배 여사는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시술을 받은 뒤 퇴원했지만, 사흘 만에 다시 쓰러져 회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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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고 배은심 여사의 유해가 광주 망월묘지공원 8묘원에 안장돼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11일 오후 고 배은심 여사의 유해가 광주 망월묘지공원 8묘원에 안장돼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한동건 상임장례위원장(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 인사말에 이어 생전 배 여사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배 여사는 생전 영상에서 “다시 천막을 치는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천막을 쳤습니다”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생전 고인의 가장 큰 바람은 민주유공자법이 통과되는 것이었다. 민주유공자법은 민주화 운동 참가자 예우를 담은 법안은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처리는 무산돼 온 법안이다. 1960~90년대 말까지 민주화운동 참가자를 민주유공자로 인정하고 교육·취업·의료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어 한국진보연대 김재하 대표와 이용섭 광주시장, 광주전남추모연대 박봉주 공동대표가 추도사를 했다.

11일 오전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겸해 열린 고 배은심 여사의 영결식이 노제와 겸해 열리고 있다. 정대하 기자
11일 오전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노제를 겸해 열린 고 배은심 여사의 영결식이 노제와 겸해 열리고 있다. 정대하 기자

고인의 유해는 이날 망월동 옛 5·18묘지에 있는 아들 이한열 열사의 묘지를 들러 광주 망월묘지공원 8묘원으로 옮겨져 남편 고 이병섭(1995년 10월 별세)씨의 곁에 안장됐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했던 아들의 묘에선 직선거리로 1㎞ 남짓 떨어진 곳이다. 이 묘역은 이 열사의 묘소를 마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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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 1주기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 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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