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출신 무삽(29·가운데)이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난민 면접조사 조작 사건’과 관련한 국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뒤 변호사와 난민인권센터 활동가와 함께 난민 인권 보호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난민인권센터 제공
이집트 출신 무삽(29·가운데)이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난민 면접조사 조작 사건’과 관련한 국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뒤 변호사와 난민인권센터 활동가와 함께 난민 인권 보호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난민인권센터 제공

“피고들은 공동하여 원고에게 3747만3257원을 지급하라.”

지난 3일 오전 9시50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의 한 법정에 앉은 무삽(29)은 한국어 실력이 서툰 탓에 재판장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대리인인 변호사와 난민인권센터 활동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보고 짐작했다. 3년2개월 동안 이어온 법정 싸움이 승리로 끝났다는 것을.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208단독 이정권 부장판사는 이집트인 무삽이 대한민국과 난민 심사 면접을 맡았던 통역관 장아무개씨, 서울 출입국·외국인청 조아무개 조사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무삽의 손을 들어줬다. 공무원이 난민 심사를 하면서 허위로 면접조사를 작성해 탈락시킨 것에 대해 국가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첫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 장씨와 조씨는 각각 고의나 중과실에 의해 난민면접 조서를 허위 내용으로 부실하게 작성해 자신들의 의무를 배반했다”며 “피고 대한민국은 피고 장씨, 조씨와 공동해 국가배상법에 따라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무삽의 소송대리인 권영실 변호사(재단법인 동천)는 “부실한 난민 심사 과정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처음 인정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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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삽은 이집트의 한 인권단체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던 인권 운동가였다. 이집트에서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을 주도한 단체에서 일하며,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여러 번 체포당했다. 무삽은 6일 <한겨레>에 “국가 안보 당국으로부터 표적이 됐고, 특히 이집트에서 보낸 마지막 몇주는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난민 제도와 법이 있고 비자가 필요 없는 한국에 오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2016년 5월 한국에 온 무삽은 난민인정신청서에 이러한 사연을 적었지만, 난민면접 조서에는 전혀 다른 사실이 기재되며 난민 불인정처분을 받았다. 조서에는 무삽이 “한국에서 장기간 합법적으로 체류하면서 일을 해 돈을 벌 목적으로 난민신청을 했다. 난민신청서에 기재된 사유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적혔다. 무삽은 조서가 허위로 기재됐다며 이의신청을 했으나 기각됐고, 결국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무삽 뿐만 아니라 여러 건의 부실 조사 정황이 나타나자 법무부는 자체 조사를 벌여 무삽의 난민 불인정처분을 직권 취소한 다음 다시 난민면접을 진행했다. 무삽은 2018년 3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고, 법원도 무삽의 손을 들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도 ‘난민 면접 조작’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해 법무부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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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삽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18년 9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많은 사람이 (소송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했지만, 17살 때부터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저로서는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어요. 저희 부부뿐만 아니라 모든 난민의 권리를 위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증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3년 넘게 이어진 재판 과정은 난민면접을 수십번 보는 것과 같은 강도의 스트레스였다. 피고로 선 공무원들은 무삽이 면접조서에 아랍어로 ‘본인은 면담 기록이 진술 내용과 일치함을 통역인을 통해 확인하고 서명함’이라고 적었으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했다. 한국어를 몰라 면접조서에 적혀있는 내용을 몰랐던 무삽은 자신은 충실히 난민면접을 했다고 주장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에 “충격받았다”고 했다. 권영실 변호사는 “원고 쪽은 법무부가 아랍권 난민신청자에 대해서는 요건을 따지지 않고 대부분 신속심사를 한 점이 위법이라는 주장을 했으나 이러한 법무부의 행위에 대해 판단이 이뤄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앞서 인권위는 관련 조사에서 법무부가 출입국 관리 공무원에게 1인당 월 40∼44건 처리를 할당하고 미달하면 경위서를 내도록 지시했다고 밝히며 개인의 일탈도 있지만 법무부의 책임도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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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삽은 그래도 한국이 고맙다. 무삽은 현재 한국에서 난민들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들고, 비영리단체에서 난민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은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나를 보호해준 구세주며, 우리 부부의 네 살 딸이 태어난 고향입니다. 한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심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더 나은 인권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