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사람 지브(가명·49)씨는 지방 도시에서 조그만 네팔·인도 식당을 운영한다. 그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이 한국과 네팔을 잇는 다리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뿌듯하다고.
요리를 잘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잘 못해요. 지금이라도 배우고 싶지만 손님 응대에 온정신을 쏟다 보니 주방에 들어가 배울 짬이 없네요. 어쩔 수 없이 네팔이나 인도에서 요리사를 초청합니다. 요리사 초청! 이것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요. 정말 힘들거든요. 외국인 요리사를 한명 초청하려면 반드시 내국인(한국인)을 2명 이상 고용해야 해요. 4대 보험을 다 들어야 하고, 적어도 3개월간 그 고용을 유지해야 하죠. 알바 오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길게 일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보험 가입도 싫어하죠. 적잖은 본인부담금을 내야 하니 손해라고 생각하나 봐요. 그래서 직원의 본인부담금까지 다 내주면서 보험에 가입하는데, 한두달 있다가 다른 직장 생겼다고 그만둬요. 그럴 때마다 요리사 초청 요건이 어그러질까 봐 애가 바짝바짝 탑니다. 그만두겠다는 사람에게 매달릴 수도 없고, 강제로 붙잡아둘 수도 없잖아요. 이런 작은 식당 일자리를 어떤 한국인이 좋아한다고 2명 이상 고용한단 말입니까. 제도를 만드는 분들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제발 좀 살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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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음식 하면 달, 바트, 타르카리죠”
제 비자를 연장할 때 겪는 일도 장난 아니죠. 이것저것 증빙 서류에 식당 사진 찍어 와라, 거래내역 뽑아 와라, 1년치 통장 거래내역 제출해라. 정말 … 모멸감과 슬픔을 느껴요. 배 속까지 탈탈 털리는 기분이죠. 요즘은 거의 다 카드 계산이라 매출을 숨기거나 부풀릴 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20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서 사업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잘 내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하는데, 격려해주고 영주권도 좀 편하게 주면 얼마나 좋아요.
다른 걱정도 있어요. 내가 늙으면 이 식당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요. 아들을 불러서 계속하게 하면 좋겠는데 그것도 쉽지 않아요. 아들이 사업 비자를 받으려면 엄청난 금액을 또 투자해야 한다더군요. 내가 땀 흘려 일군 식당을 내 가족이 이어가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건 나처럼 작은 사업 운영하는 이주민들이 하나같이 걱정하는 일이죠. 다들 나이 들어가고 있으니 머지않은 문제예요. 휴, 말을 하면 할수록 답답합니다. 아, 고마운 일도 있어요. 코로나19 자영업자 지원금을 받았거든요. 외국인이라고 안 주면 어쩌나 했는데, 그동안 세금 잘 낸 보람이 있어요!
손님 중에 친해져서 “형님 동생” 하는 분들도 있어요. 몇년 전 네팔에 큰 지진이 났을 때는 여러 손님이 안부를 물으려고 식당에 전화하거나 찾아왔어요. 참 고맙고 마음이 훈훈했어요. 손님 중에 네팔에 가서 사업하는 분도 여럿 있어요. 그분들은 거기서 또 이주민이잖아요. 내가 여기서 이리저리 치이며 자리 잡기까지 어려움을 겪었으니,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죠. 그래서 내가 전화로라도 통역하고 여기저기 연결해드리면서 정착을 돕고 있어요.
우리 음식을 좋아하는 단골손님이 많아요. 우리 식당에서 난과 커리가 가장 인기인데, 네팔에서도 전문 음식점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음식이죠. 집에서는 다들 달·바트·타르카리를 해 먹어요. 달은 녹두수프고요, 바트는 밥, 타르카리는 여러 채소를 볶아 만든 반찬이에요. 닭고기나 염소고기를 곁들이기도 하고요. 내가 “네팔에서는 달·바트·타르카리죠” 하면, 손님이 재치 있게 “한국에서는 밥·국·김치죠” 해요. 깔깔 웃음소리가 식당에 꽉 찹니다.
우리 식당은 문화를 나누는 곳이기도 해요. 손님들은 네팔이라는 나라가 궁금하고, 네팔 문화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요. 책이나 방송에서 들을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요. 여행 정보를 묻거나 네팔에 있는 누군가를 소개해달라 청하기도 해요. 종교에 대한 질문도 잦죠. 네팔 사람들 절대다수가 힌두교를 믿는데, 아무래도 한국인들에게는 낯설고 신기한 종교잖아요. 힌두교의 세계관은 오묘하고 깊어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내가 아는 만큼 성의를 다해 알려드리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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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찾아와서 밥 먹어요
힌두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힌두교는 카스트제도와 떼어내기 힘든 종교예요. 카스트제도는 오래전에 공식 폐지되었지만 관습은 여전히 깊게 남아 있어요. 지금도 다른 카스트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드물지 않아요. 얼마 전 기사에서 봤는데, 한 정치인이 낮은 카스트 집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했다가, 그 집에서 대접한 차를 사양하고 안 마셨대요. 그러다 낮은 카스트가 준 거라 안 마시느냐고 크게 비난받았다고 해요. 한국에 온 일부 네팔 사람들도 그래요. 한 손님이 한탄합니다. 자신이 천민 계급이라 회사 네팔 사람들 사이에서 따돌림받고 있다고. 같이 밥 먹기를 거부해서 자기는 다른 나라 사람과 식사한다고. 젊은 아이들이 아직까지, 더구나 여기까지 와서 그러고 있으니 참 안타까워요. 젊은이한테 그랬어요. 그 친구들한테 절대 고개 숙이지 말고 끝까지 당당하라고, 정 힘들면 나한테 와서 풀라고요.
우리 식당은 좋은 음식이 있고, 문화와 삶을 나눌 수 있고, 유쾌한 환영과 따뜻한 위로가 있는 곳이에요. 나는 우리 식당이 한국과 네팔을 연결하고, 한국이 바깥세상을 향해 창을 더 넓히는 데, 또 한국 내부의 다양성을 더해가는 데 작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뻥치는 거 아니냐고요? 직접 와서 느껴보세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