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텔레그램 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달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텔레그램 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하고 범죄 수익을 은닉했던 조주빈(26)은 징역 42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방들’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첫 보도 이후, 2년의 시간이 흘렀다. 2019년 11월10일, ‘청소년 텔레그램 비밀방에 불법 성착취 영상 활개’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매일 사회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 직한 7장짜리 사건 기사였다. 첫 제보는 짤막했다. ‘인천 지역의 한 고등학생이 1만명 정도가 가입돼 있는 텔레그램 비밀 채팅방에서 아동 성착취물을 유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보 메일에는 비밀 채팅방의 주소가 난수표처럼 적혀 있었다. 그렇게, 몰랐던 그러나 한번의 사건 기사로는 끝낼 수 없던 세계로 입장했다.

그 방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울렁거렸다. 입장하기 전까지 전혀 모르던 세계였는데, 갑자기 이전에 딛고 있던 세계가 통째로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기자로서 뭔가를 써봐야겠다는 생각보다, 두 아이를 키우는 어른으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절망감에 압도당했다. 그 절망감을 설명해야 하는데 그때는 그 말이 또 막막했다. 당연했다. 30여년 전 ‘소라넷’ 시절부터 인터넷에 있는 그런 성착취 피해들을 불가항력으로 받아들였다. 명백한 범죄의 증거들을 그저 음탕하고 난잡하단 뜻의 ‘음란물’이라고 불러왔던 게 단적인 예다. 범죄의 피해자를 ‘문란한 존재’로 규정하는 질서 속에서 우리는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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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을 비롯해 텔레그램에서 집단 성착취 영상을 거래했던 방들은 신원이 특정된 성착취 피해자들을 사물화해서 엔(n)명의 사람들이 유무형의 폭력과 성착취를 벌이고, 완전히 파괴된 피해자의 신상을 공유하며 또다시 희롱하고 제2, 제3의 범죄를 모의하고 실현하던 공간이다. 그 방에 입장한 모두가 실시간으로 엔분의 일(1/n)만큼 범행을 분담하며 피해자가 늘어갔는데, 그 방에 모여 있던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은 아무도 그걸 제지하거나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설명할 말조차 찾지 못하던 막막함을 딛고 매 순간 울렁이고 두려웠던 취재를 거쳐 기사를 썼다. 하지만 충분치 않았다. 기사로 끝낼 수 없으리란 건 알았지만, 기사 이후에도 활개를 치는 범죄자들의 행태에 치미는 역겨움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4개월여, 박사 조주빈이 검거됐다. 그러곤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달라졌다. 조주빈에게 내려진 42년형은 디지털 성착취 영상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지형이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거대한 진전을 이뤘는지를 입증하는 숫자다. 조주빈 이전의 성착취범들은 고작 1년6개월 형을 받거나 그마저도 초범이면 집행유예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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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이 잡히고, 공범들이 검거되고, 박사방에 입장했던 무료 회원들까지 수사 범위가 확대되어 있다. 취재 때 모니터링했던 거의 모든 텔레그램 방들이 없어졌고, 그 방에 머물던 계정들은 탈퇴했다. 하지만 익명에 기대어, 더 어두운 경로로 들어서면 여전히 ‘그런 방들’은 성행하고 있을 것이다. 성착취 영상 역시 완벽한 삭제를 확인할 길이 없는 세계에서 제한적으로만 지워진다. 우리는 이제 겨우 ‘그런 방들’을 운영했던 누군가들을 한번 엄히 단죄했을 뿐이다. ‘그런 방들’을 모두 파괴해야 한다. 박사 조주빈의 얼굴을 처음 마주했던 때의 분노로, 한번도 파괴해보지 않았던 것처럼.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