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신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4월3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쪽에 고발을 사주하는 내용이 담긴 17분 분량 녹취파일 및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김 의원이 고발장 작성 주체로 거론한 “저희”가 사실상 검찰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김 의원이 이 사건 제보자인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에게 “고발장 초안을 저희가 만들어서 보내주겠다” “(미래통합당) 선대위 명의로 (고발)하는게 좋을 거 같다” “(당에는) ‘이 정도 보내면 검찰에서 알아서 수사해준다’고 하면 된다”고 말하는 등 고발장 초안 작성 사실 및 접수 대상·시기·주체·여론화 방법 등을 두루 전달한 사실에 주목하고, “저희” “우리”에 포함된 검찰 쪽 인사를 확인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공수처발 ‘그분’ 찾기인 셈이다. 김 의원은 여전히 해당 통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제가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저희’는 검찰은 아닌 것 같다”는 선택적 기억법을 또다시 폈다.
<한겨레>가 입수한 김 의원과 조씨의 통화 녹취록 2건(7분58초, 9분39초)에는 고발장 작성, 전달, 접수 과정에 김 의원과 대검찰청 쪽이 유착한 정황을 보여주는 구체적 발언들이 여럿 확인된다. “저희” 발언을 비롯해 “우리가 어느 정도 (고발장) 초안을 잡아봤다” “남부지검에 내랍니다” “검찰이 (고발장) 받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받는 것처럼 하고” 등이다. “저희” ”우리” “내랍니다” 등 표현에 비춰볼 때 고발 사주 전 과정을 김 의원에게 지시·전달한 누군가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의원은 조씨와의 첫 통화를 마친 직후인 지난해 4월3일 오전 10시12분 ‘손준성 보냄’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조선일보> 기사 링크와 페이스북 캡쳐 이미지를 무더기로 보냈다. 김 의원은 같은날 오후 4시19분 ‘손준성 보냄’ 메시지를 통해 범여권 인사 및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장모 관련 보도 등을 한 기자 고발장을 조씨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6분 뒤인 오후 4시25분 두번째 통화에서 미래통합당 4·15총선 선거대책위원회 명의로 대검에 고발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안내하면서 “제가 (대검에 고발하러) 가면 ‘윤석열이 시켜서 고발한 것이다’가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첫번째 통화에서도 고발장 취지에 대해 “(여권이 <문화방송>을 이용해) 윤석열 죽이기 쪽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이런 자료 등을 모아서 일단 드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수처는 김 의원이 언급한 “저희” 범주에 이미 입건한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은 물론 윤석열 전 검찰총장까지 포함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 특히 조씨 스마트폰에서 통화녹음을 복구한 이후인 지난 14일 고발장에 언급된 한동훈 검사장은 물론 권순정 당시 대검 대변인까지 피의자로 입건했다. 권순정 검사는 지난해 3월31일~4월2일 한동훈 검사장과 손준성 검사와 함께 카카오톡 메시지를 수십차례 주고받았다. 일단은 시민단체 고발에 따른 입건 형식이지만, 검찰총장의 안(손준성)과 밖(권순정) 눈과 귀 역할을 하는 핵심 참모 두 명이 공수처 조사 대상이 된 것이다.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전 기자들과 만난 김웅 의원은 조성은씨에게 고발장을 전달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윤석열이 시켜서’ 발언에 대해서도 “마치 이런 시빗거리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런 걸 좀 차단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나가는 것은 좋지 않겠다,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한 것으로 저는 파악이 됐다”고 했다. 조씨와의 통화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이런 부분에선 선택적 기억이 작동한 셈이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