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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쥐 나오는 집, 볕 들지 않는 방에서 건강 챙기기란?

등록 :2021-09-12 09:22수정 :2021-09-12 10:29

[한겨레S]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이런 집, 저런 집
장애 있는 엄마와 질병 많은 아들
볕 안 드는 방의 폐지 줍는 노인
노력으로 건강을 챙긴다는 것은…
나는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까?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선생님 언제 와요? 보고 싶어요.”

‘보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애틋해진다. 들을 거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을 정후 (가명)는 요즘 갑작스레 전화로 한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정후와 어머니 효진 (가명)님은 진료하기 쉽지 않았다. 복지관에서 전반적인 건강 관리를 요청하셨는데 2년째 만나고 있지만,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 두 분은 살이 많이 쪄 체중 관리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먹는 걸 조절하기 힘들다. 체중 이야기를 꺼내면 상처를 받아서 살을 빼자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살을 빼고 싶다고 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안다. 다만 심각한 비만이라 이대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효진님은 정후가 취직해서 자립하길 바라지만 정후도 정신질환 등 여러 질병으로 고생 중이다. 일상생활 관리가 어렵다. 때때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한다. 차근차근 만성질환 관리를 하고 병원에 의존하기보다 자기를 돌보는 힘을 기르면 좋겠지만, 내가 무능해서 전혀 효용이 없다. 방문 진료 의사로서 낙제점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집이다.

이런 집, 저런 집 많이 다니지만

계속 찾아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나의 생각이 무색하게 모자가 돌아가며 언제 오는지 묻고, ‘보고 싶다’며 전화를 준다. 코로나로 찾아오는 이가 없는 상황이라 나는 때때로 찾아가서 사는 이야기도 듣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처음엔 내가 조금 질타하는 느낌을 줘도 모자는 예민하게 반응했는데, 오래 만나니 나도 조심스럽게 교육하는 법을 터득했고 두 분도 내 얘기를 들어준다. 당장은 효과가 없지만 언젠가는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변화가 어떤 변화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역시 질병 치료 이전에 친밀한 관계 형성이 먼저다.

정후네는 최근 이사를 준비 중이다. 집에 쥐가 있다고 한다. 쥐덫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반지하라 집이 어둡고 습한 건 알았는데 쥐가 있다니 나도 끔찍이 느껴졌다. 오래된 주택의 반지하 집이긴 하지만 환경이 그리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는데 쥐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반지하에 살고 있는데 집에 바퀴벌레가 많이 나와 신경이 쓰였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잡기도 하고 못 본 척한다. 요즘은 덜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바퀴벌레 정도는 함께 살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쥐는 조금 무섭긴 하다. 그래도 이사를 간다니 다행이다. 지상층의 적당한 집을 찾았나 보다. 나는 혹시 모자가 떠난 이 집에 새로 이사 온 분에게 또 진료하러 오게 될지 모르겠다.

이런 집, 저런 집 많이 돌아다니는데 어느 날은 주인이 없는 빈집에 홀로 들어가기도 한다. 주민센터 의뢰로 찾게 된 호영 (가명 )님의 집은 찾아가기 힘들었다. 식당이 있는 상가 건물 한쪽에 딸린 방이었다. 주민센터 담당자는 ○○식당의 오른쪽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왼쪽에 있는 문이었다. 찾아가기 어려울 거라고 동행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지만 남의 집 드나드는 데에 자부심이 있는 나는 혼자 가도 괜찮다고 했다. 역시나 기가 막히게 호영님의 집을 찾아냈다. 햇볕이 따사로운 한낮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두컴컴하고 눅눅한 방이 나타났다.

반지하 같은 1 층과 1 층 같은 반지하

문은 열려 있는데 사람은 없었다. 불을 켜서 주인이 없는 남의 집을 둘러보게 되었다. 분명히 전화로 약속을 하고 왔는데 안 계셨다. 산동네에 사는 나는 1층 같은 반지하에 살고 있어서 반지하 같은 느낌은 안 나는데, 이 집은 분명히 1층이긴 한데 볕이 전혀 들지 않는 반지하 같은 느낌이었다. 반지하 같은 1층보다 1층 같은 반지하가 지내기엔 조금 수월하다는 생각을 하며 집을 둘러보았다. 개어지지 않은 이불에 담배, 라면이 널브러져 있었다. 호영님이 분명히 없음을 확인하고 문 밖으로 나서니 걸려 있던 빨래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은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내리곤 하는데 빨래는 잘 마르려나 생각하며 호영님께 전화를 걸었다.

현관 앞에 호영님이 오셨다. 타고 있는 전동차에 폐지와 재활용품이 지저분하게 실려 있었다. 성하지 않은 몸에 전동차를 타고 폐지를 줍고 있었다. 잠시 시간을 허락받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픈 데는 없는지,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이 어눌해서 분명히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목적을 달성했다. 이제 돌아서려는데, 호영님은 뭔가를 나에게 말했다. “병원에 안 가도 되죠?” “네 , 제가 처리해드릴게요.”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서류를 받아야 하는 걸 주민센터에서 나에게 방문 진료로 처리해달라고 부탁하신 상황이었다. 병원에 찾아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호영님은 미소를 지으며 ‘엄지 척’ 해주셨다. 나도 엄지 척으로 화답하고 헤어졌다. 종종 지나치는 거리에 있는 집이었다. 호영님을 만나고 나니 전동차를 끌고 폐지를 가득 실은 노인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부디 건강히 지내시길 바랄 뿐이다. 나 역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건강을 챙긴다’는 게 과연 뭘까

건강하게 살아가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건강이 제일이라는 이야기를 귀에 박히도록 들어왔고, 건강을 돌보는 일을 하며 그 이야기를 실제로 누군가에게 하지만 건강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건강을 챙겨야 할지 잘 모르겠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는 집, 먹는 음식, 경제적 능력 등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매우 중요함은 분명하다. 일회적인 자선이나 이벤트와 같은 행사로 해결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장애가 있는 엄마와 아들에게, 폐지를 줍는 홀몸노인에게 나는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까? 부끄럽게도 나에게 충분한 실력이 없다. 스스로 자책한다. 누군가 해줄 수 있다면 나 대신에 해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보고 싶다고 할 때 찾아가고 행정적인 처리가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일이다.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겠지라고 낙관하며 게으름 피우지 말고 나의 방문을 허락하는 이들의 집을 드나들어 보아야겠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꿈도 계획도 없다. 내 집도 남이 드나들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방문을 허락하는 이들이 고맙고, 그 고마운 이들과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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