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지난 6일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디·피‘(D·P)에서 재현한 군내 가혹행위에 대해 “일과 이후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환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했다.
하루 만인 7일 해군 강감찬함에서 근무하던 병사가 선임병으로부터 폭언을 듣고 집단 따돌림 등을 당하다 전입 4개월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 병사가 이런 사실을 휴대전화 메신저를 통해 함장에게 알렸지만 피해자·가해자 분리가 이뤄지지 않은채 20여일 방치되는 등 전형적인 군대식 사건·사고 대응이 이번에도 반복됐다. 뒤늦게 군 수사가 시작된 이후 해군은 함장 등 주요 수사대상자를 해외파병 보내는 납득하기 힘든 조처를 했다.
군인권센터는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강감찬호에 전입했던 정아무개 일병이 선임병 폭행과 군 당국의 미비한 조처로 휴가 중이던 지난 6월18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매번 군에서 사람이 죽을 때마다 어떻게든 사건을 무마, 은폐하여 책임질 사람을 줄여보려는 군의 특성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며 해군에 제대로된 수사를 촉구했다.
이 사건 수사는 성추행 피해를 신고하고 숨진 공군 이아무개 중사 사건 이후 군내 사건 처리에 대한 강도 높은 실태조사와 개혁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진행됐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공군 이 중사 사건으로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사건이 외부로 안 알려진 것은 여전히 군이 군 수뇌부의 논리로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해군 관계자는 “현재 사망 원인 및 유가족이 제기한 병영부조리 등에 대해 군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군 소식통은 “(기자회견 내용이) 대체로 맞다. 파병 중인 해당 부대 간부들은 조만간 복귀하면 추가 수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군인권센터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2월1일 강감찬호에 전입한 정 일병은 2월11일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자 같은달 25일까지 2주간 청원휴가를 나갔다. 휴가 복귀 뒤에는 방역수칙에 따라 3월9일까지 자가격리를 마친 뒤 내무생활에 들어갔다. 곧바로 선임병들의 폭언, 집단 따돌림이 시작됐다고 한다. 선임병들은 “꿀을 빨고 있네”(편하게 쉬고 있다는 군대 은어), “신의 자식“이라고 말하거나 정 일병이 승조원실에 들어오면 다른 병사들이 모두 나가버렸다고 한다. 군인권센터는 “선임병 2명은 갑판에서 정 일병이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가슴과 머리를 여러 차례 밀쳐 넘어뜨렸다. 정 일병이 ‘(업무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이들은 “뒤져 버려라”(죽어 버려라)라고 답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승조원실(생활관)에서 폭행이 있었다는 말을 생전 정 일병에게 들었다는 동료 병사 진술도 나왔다. 일부 선임병들이 승조원실에서 욕설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다시 밀쳐서 앉히는 등 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선임병 2명은 폭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MAGE2%%]정 일병은 피해사실을 지휘관에게 보고했지만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 일병은 3월16일 함장에게 카카오톡 메신저를 이용해 선임병 폭행과 폭언을 신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함장은 정 일병의 승조원실을 옮기고, 보직을 갑판병에서 시피오(CPO·상급 부사관) 당번병으로 변경하기만 했다. 정 일병은 한 번 나가면 수십일씩 이어지는 해상 근무 탓에 한정된 공간에서 가해자들과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3월26일 밤 정 일병은 자해시도를 하던 중 함장에게 연락해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함장은 3월27일 새벽 1시께 정 일병에게 ‘가해 병사를 불러 사과받는 자리를 갖게 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한 뒤, 가해자를 불러 서로 대화를 하게 했다고 한다. 군인권센터는 “피해자와 선임인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고 화해시킨다는 이유로 한 자리에 부른 것은 2차 가해로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강감찬함 지휘부는 4월1일에야 가해 병사에게 경위서를 쓰게 한 뒤 군기지도위원회에 회부하는 선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군기지도위원회는 군기훈련이나 벌점을 주는 곳으로 실질적인 징계, 수사와의 연계는 이뤄지지 않는다. 군인권센터는 “가해 병사를 하선시켜 수사하지 않고 군기지도위원회에 회부하고 마무리 지어 사건을 덮었다”고 주장했다. 정 일병이 자해를 시도하고 공황장애를 호소했지만, 함장은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난 4월6일에야 정 일병을 하선시켜 민간병원에 위탁 진료를 보냈다. 결국 정신과에 입원한 정 일병은 6월8일 퇴원하고 열흘 뒤 휴가 중이던 집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정 일병의 극단적 선택 뒤 군 수사가 시작됐지만, 진상 규명을 위한 군사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현재 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병사 1명은 입건됐지만, 함장 등 간부들은 아프리카 인근에 있는 청해부대(문무대왕함)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로 7월20일 긴급 파견을 간 상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진술이 오염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군사 경찰은 배가 돌아오면 함장 등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할 뿐이다. 작전이 계획됐다고 하더라도 가혹행위에 의한 사망사건이라면 (가해자들을) 인사조처를 해야하는게 원칙이다. 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구타·가혹행위 가해자를 빼돌렸다는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청해부대로 파견 나간 관련자들은 조만간 국내로 돌아올 예정이다. 해군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이 됐는데 긴급파견부대 임무로 잠시 중단됐다. 이들이 복귀하면 조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승욱 김지은 기자 seugwook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