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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화려했던 ‘긴기라기니’ 시대의 일본은 끝났다

등록 :2021-07-25 09:12수정 :2021-08-03 16:37

[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
곤도 마사히코

80~90년대 한국이 동경했던 일본
거품 꺼지며 한-일 사이 역전현상
젊은 세대 이미 ‘추월의 시대’ 살아
선망 아닌 파트너로 상대 바라봐야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1980년대의 초등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긴기라기니’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 시절 나는 경상남도 마산에 살았다. 부산도 그렇지만 일제강점기 때 항구로 성장한 마산 역시 일본 문화가 빠르게 전해지던 도시였다. 가라오케도 시내 곳곳에 생겨났다. 합법적으로 상륙한 것은 아니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일본 문화를 개방하기 전까지 일본에서 오는 모든 문화와 제품은 불법이었다. 사람들은 불법을 좋아하는 법이다. 80년대의 많은 초등학생은 보따리장수들이 수입한 코끼리 밥통을 들고 다녔다. ‘조지루시 마호빈’이 생산한 이 밥통을 한국인들은 코끼리 밥통이라 불렀다. 조지루시는 코끼리표라는 뜻이다. 나도 코끼리 밥통을 들고 다녔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열면 다들 감탄했다. 뜨거운 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코끼리 밥통은 가히 선진국의 유물 같은 것이었다.
1980~90년대 곤도 마사히코의 노래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는 다른 나라 젊은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던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였다. 지금 일본은 그의 노래 가사처럼 ‘화려했지만 자연스럽게’ 추월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1980~90년대 곤도 마사히코의 노래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는 다른 나라 젊은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던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였다. 지금 일본은 그의 노래 가사처럼 ‘화려했지만 자연스럽게’ 추월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한국은 일본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변방의 촌구석이었다. 1980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일본의 17분의 1가량에 불과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686달러였다. 일본은 1만달러에 가까웠다. 일본은 선진국이었고 한국은 막 가난을 벗어나기 시작한 개발도상국이었다. 문화도 당연히 차이가 났다. 불법으로 들어온 일본 문화는 초등학생의 눈으로 봐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선진적이었다. 무역선 선장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종종 일본 잡지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나는 일본어를 모르면서도 일본 잡지들을 집요하게 훑었다. 반질반질하고 선명한 컬러 페이지는 한국 잡지들과 너무 달랐다. 나는 일본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선망했다.

엄청난 소리 내며 거품 꺼진 일본

그리고 ‘긴기라기니’가 등장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유행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이 일본어로 된 노래를 제멋대로 부르기 시작했다. 틀리지 않고 부르는 대목은 ‘긴기라기니’뿐이었다. 나는 곧 그게 곤도 마사히코라는 일본 가수가 1981년에 발매한 앨범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첫째 사진)라는 걸 알게 됐다. ‘화려하지만 자연스럽게’라는 뜻이었다. 불법 카세트테이프에 담겨 있는 이 뽕끼 어린 댄스곡은 꽤나 중독적이어서 아무리 흥얼거려도 질리지가 않았다. 당시 한국 가요에는 댄스곡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나미의 ‘빙글빙글’이 1984년 나왔을 때에야 나는 한국에도 댄스곡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80년대의 초등학생에게 ‘긴기라기니’가 얼마나 거대한 문화 충격이었을지 한번 상상해보시라.

곤도 마사히코는 일본 버블(거품) 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돌이다. 한국 아이돌 기획사들이 모델로 삼았던 일본 아이돌 기획사 ‘자니스’가 1979년에 데뷔시킨 그는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를 히트시키며 국민적 아이돌이 됐다. 일본 남자들은 그의 헤어스타일을 따라 했다. 나이키 스니커즈 같은 아이템들을 일본에 유행시킨 것도 그였다. 자니스는 1962년에 창립한 기획사지만 현대적 아이돌 산업의 시작은 80년대였다. 그리고 그 시작은 곤도 마사히코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당시 한국에는 아이돌이라는 것이 없었다. 혜은이를 한국 아이돌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혜은이의 노래는 여전히 ‘어른들의 가요’ 속에 머물렀다.

80년대 내내 곤도 마사히코는 승승장구했다. 1987년에는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의 전성기는 만들어진 아이돌이 그렇듯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90년대가 오자 새로운 아이돌들이 신전에 올라섰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그룹 스마프(SMAP)의 기무라 다쿠야가 전성기를 맞이했던 90년대에 곤도 마사히코는 좀 낡은 존재가 됐다. “화려하지만 자연스럽게. 그게 나의 방식. 화려하지만 자연스럽게 살아갈 뿐이야”라고 삐딱하지만 자신감 넘치게 노래하던 시절은 가고 있었다. 도쿄의 부동산을 팔면 미국도 살 수 있다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었다. 1990년대를 지나며 버블은 꺼졌다. 엄청난 소리를 내며 꺼졌다. 잃어버린 10년이 곧 시작될 참이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1994년에 대학생이 된 나는 일본 드라마를 다운로드받아서 보고 또 봤다. 지금 기준으로야 불법이지만 당시에는 ‘냅스터’라는 음원 사이트가 세상의 모든 노래를 ‘합법적으로’ 공짜로 풀던 시절이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대 일본 최고의 스타였던 기무라 다쿠야가 주연한 <롱 베케이션>(1996)과 <러브 제너레이션>(1997)은 몰래 일본 문화를 좋아하던 대학생들에게는 바이블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에도 트렌디 드라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일본의 것과 비교하자면 여전히 좀 촌스러운 데가 있었다. 최근 ‘왓챠’라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두 작품이 올라왔으니 꼭 보시길 권한다. 버블이 꺼지기 전 세상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였던 도쿄의 빛나는 시절이 소행성 충돌을 미처 내다보지 못하고 죽은 공룡처럼 박제되어 있다.

나는 이 글을 심야 뉴스 채널을 보며 쓰는 중이다. 올림픽 뉴스들을 보면서 나는 한때 지구에서 가장 부유하고 질서 있고 세련되던 한 국가가 기우는 소리를 듣는다. 팬데믹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도쿄는 도무지 이 거대한 국제적 이벤트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일본은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올림픽은 일본의 재생을 상징하는 행사가 되었어야 한다. 국뽕의 파티가 되었어야 한다. 지금 국뽕은 오히려 한국의 것이다. 특히 나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을 이리 재고 저리 재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부터 어떤 불편함과 당황스러움을 읽었다. 일본을 따라 하려 애쓰던 옆 나라 촌놈이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기 시작한 것을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눈치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추월의 시대’ 도래한 한-일 관계

함께 일하던 전 직장 동료가 공저자로 참여한 <추월의 시대>를 읽었다. 나는 제목을 듣는 순간 얼얼할 정도로 무릎을 쳤다. ‘추월’이라는 단어를 누가 골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제대로 고른 단어라고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국은 추월의 시대에 돌입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이 기구의 회원국이 선진국으로 지위가 바뀐 건 1964년 기구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의 1인당 구매력이 일본을 넘어섰다는 뉴스도 있다. 40대인 나에게 일본은 어쩔 도리 없이 극복해야 하는 무언가다. 한국의 10대와 20대에게 일본은 그냥 한국과 비슷하게 사는데 길거리가 조금 더 강박적으로 깨끗한 나라일 따름이다. 누구도 일본 드라마를 보며 도쿄를 꿈꾸지 않는다. 중년 이상 한국인들은 여전히 일본에 대한 묘한 열등감을 갖고 있지만 새로운 세대에게 열등감은 없다. 그들은 이미 추월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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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도 종종 곤도 마사히코의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 무대를 유튜브로 보곤 한다. 여드름쟁이 시절을 갓 벗은 사내가 화려한 무대에서 댄서들과 춤을 추며 격정적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본다. 이제 그건 “화려하지만 자연스럽게” 황금기를 즐기던 한 시대의 지나간 상징처럼 보인다. 나는 이어서 방탄소년단(BTS)의 뮤직비디오를 본다. 황금기를 시작하는 한 시대의 새로운 상징이다. 어쩌면 한국과 일본은 이제서야 진정한 속내를 보여주며 서로를 동등한 파트너로 바라볼 수 있는 시기를 맞이했는지도 모른다. 일본을 선망하던 20세기 소년의 시대는 갔다. 21세기 친구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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