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뒤 ‘제주 두달 살이’를 하던 중 올랐던 한라산 선작지왓. 김다현 제공
은퇴한 뒤 ‘제주 두달 살이’를 하던 중 올랐던 한라산 선작지왓. 김다현 제공

조금 이른 은퇴를 한 우리를 보고 사람들은 두 종류의 반응을 보인다.

“우와, 부럽다. 나도 은퇴하고 싶다.”

그들은 더 이상 회사에 얽매여 살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삶을 부러워했다. 그리고 어떻게 은퇴를 할 수 있었는지 우리의 은퇴 방법에 대해 궁금해했다. 사람들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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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있는 생활에 대한 욕심만 버리면 가능해.”

이른 은퇴를 보는 두가지 시선

은퇴를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다. 매달 월급만큼의 돈을 쓸 수 있도록 큰돈을 모으고 여유 있는 은퇴를 한다면 좋겠지만, 직장인이 큰돈을 모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은퇴 후에는 돈을 아낄 수밖에 없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갖고 싶어서 샀던 물건들. 맛보다는 분위기 때문에 찾았던 비싼 레스토랑. 여행지의 호화로운 숙소. 이런 것들을 마음 편히 누리기는 어렵다. 이런 얘기를 하면 다음 질문은 대체로 이렇다.

“그렇게 계속 살면 힘들지 않겠어?”

그래서 우리는 미리 소비습관을 바꾸는 연습을 했다. 다행히 돈으로 얻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즐기는 것들은 돈보다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회사에 가지 않으니 자연스레 물욕도 사라졌다. 그래도 사람들은 은퇴 이후의 불안함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난 사람들의 불안을 안심시켜주며 오히려 내 마음이 더 편안해짐을 느꼈다.

부럽다고 말은 하지만 대다수는 은퇴를 선택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대신 그들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포기하고, 은퇴를 선택한 것에 용기 있는 결정이라며 응원을 보내준다.

‘마흔이면 한창인데 벌써 은퇴를 해?’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벌써 은퇴하냐고 한다. 그 좋은 직장을 도대체 왜 그만두는 거냐고, 다들 그렇게 사는데 너만 왜 그러냐고 한다.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고, 은퇴 후 살아갈 비용은 이미 모았다고 이야기하면 ‘갑자기 아플 수도 있고, 큰 사고도 생길 수 있어. 그럼 모은 돈 순식간이야’라고 말한다.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회사에 다녀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걱정해주는 것은 너무나도 고맙지만, 미리 고민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다 판단해서 결정한 은퇴다.

처음에는 은퇴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준비했어’라고 설명하려 했었다. 몇달이 지나자 깨달았다. 그들은 나의 설명을 듣고 싶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본인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할 뿐이었다. 충동적으로 하루, 이틀 만에 결정한 은퇴가 아니다. 오랫동안 남편과 긴 대화를 나누면서 단단하게 만들어온 계획이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마흔이 넘으면 자기 삶의 철학적 기반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간혹 사람들은 자신만의 관점에서 내가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상대방을 질타하곤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한 길로 가지 않으면,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인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조금 더 삶의 다양성을 인정해주면 좋지 않을까. 이른 은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에 가끔 힘들어질 때가 있다.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을 선택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면 나를 이해시키는 데 노력이 필요했다. 은퇴 후 좀 더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꼭 이해시킬 필요가 있느냐고. 그냥 넘기면 되는 일이다. 내가 선택한 이유를 꼭 이해받을 필요는 없다. 나도 모르게 나의 정당성을 상대를 통해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힘들어하지 않기로 했다. 은퇴 후 계획한 대로 잘 살면 되는 일이다. 서로를 이해하는 남편이 있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훨씬 행복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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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직해온 꿈을 향한 공부

어린 시절을 경주에서 보냈다. 내가 친구들과 뛰놀던 장소들은 대부분 신라의 유적지였다. 지금은 올라갈 수 없는 대릉원 위에서 포대 자루로 미끄럼을 탔다. 할머니 산소가 경주 남산에 있어서, 할머니를 찾아뵐 때면 바위에 새겨진 신라시대 불상들을 마주했다. 어린 시절 난, 산에 있는 큰 바위에는 당연히 불상이 있는 건 줄 알았다. 여름방학은 불국사 어린이 학교를 다녔고, 경주박물관을 놀이터 삼았다. 집에는 <어린이 삼국유사> 책이 있었다. 삼국유사는 몇번을 다시 봐도 재밌었다. 어릴 때 달달 외울 정도로 읽어서인지 삼국시대 역사는 아직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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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땅만 파면 유적이 나오는 곳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초, 환경미화를 할 때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다들 집에 신라시대 유물 하나씩은 있죠? 우리 교실을 미니 박물관으로 꾸며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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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집에 없으면, 경주는 땅만 파면 기와 조각 하나라도 나오니 꼭 하나씩 가져와요.”

“네!”

신라시대 유물을 가져오라는데, 다들 별문제 없다는 듯 대답했다. 정말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에서 유물 하나씩을 가져왔다. 신라시대 기와 조각, 술잔과 같은 것들은 경주에서 정말 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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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환경이 그러했기에 자연스레 역사를 좋아했다. 역사 수업 시간은 재밌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단점이 있었다. 수업 시간은 그 어느 과목보다 재밌었으나, 시험은 그렇지 않았다. 역사 시험 단골 출제 방식은 시대순 나열이다. 굵직한 사건의 나열이면 어렵지 않겠으나, 기억하기 어려운 사건을 시간순으로 배열하라고 하면 머리가 아프다. 그나마 그때는 객관식이었으니 대략 찍으면 어느 정도 점수는 나왔다.

대학교 학부 1학년 때 사학과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역사를 좋아해서 사학과 전공을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도 어느 정도 있었다. 사학과 수업은 한층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수업 시간이 늘 기다려졌다. 하지만 역시, 시험은 달랐다. 사학과 전공 시험은 주제 하나를 정해주고 논술하라는 거였다. 시험지 한장을 앞뒤로 꽉꽉 채워 적고는 이만하면 됐겠지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머리를 숙인 채 두번째 시험지를 채우고 있었다. 고개 숙인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시험지를 제출했다. 그래도 내용은 알차게 적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성적은 나빴다. 사학과는 나와 맞지 않는구나 생각하며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

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딱히 노는 학생도 아니었지만,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다. 다만, 책을 좋아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책은 많이 읽었다. 집에서 엄마는 늘 책을 읽었다. 집에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을 때는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난 어린 시절, 티브이(TV)보다 책을 더 재밌어하던 학생이었다.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쇼핑지원금으로 책을 잔뜩 샀다. 시험을 목적으로 하는 공부와 내가 재밌어서 하는 공부는 달랐다. 사회탐구 영역 중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경제였는데, 스스로 경제 서적을 사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재테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경제 흐름을 모르고 무턱대고 하면 안 될 것 같아 구매한 책이다. 내 용돈만 가지고 주식을 할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은퇴 후 생활비를 가지고 투자를 하려니 실패가 두려워졌다.

역사 공부가 하고 싶어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을 정리한 책도 샀다. 학생 때 배운 역사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전반적인 흐름 파악을 위한 책을 사고 싶어 골랐는데, 아직 다 읽지 못해 잘 산 건지 알 수 없다. 좋은 책을 고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쌓인 책 중 아직 시작도 못 한 것들이 많다. 책이 쌓여 있으니 마음이 급해진다. 저걸 언제 다 읽지? 여유 있게 한권씩 보면 되는데, 여전히 난 성급하다. 책상 옆에 책을 쌓아두고 그때의 기분에 따라 조금씩 읽고 있다. 책 욕심은 아직 버리지 못했다. 공부를 위한 것이니 괜찮다. 괜찮다.

꿈꾸던 일을 떠올리며 학생 때도 안 하던 공부를 이제야 시작했다. 육십, 칠십이 넘으면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될까?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막힘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성급해하지 않고 공부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자고 다짐해본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놀던 장소들은 대부분 신라의 유적지였다. 지금은 올라갈 수 없는 대릉원 위에서 포대 자루로 미끄럼을 탔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요즘, 그 시절이 가끔 떠오른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놀던 장소들은 대부분 신라의 유적지였다. 지금은 올라갈 수 없는 대릉원 위에서 포대 자루로 미끄럼을 탔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요즘, 그 시절이 가끔 떠오른다. 게티이미지뱅크
‘마흔에 은퇴’ 이야기의 마지막

16년 동안을 기획자로 살아오면서 난 회사에 최적화된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원래 그다지 계획적인 인간은 아니었는데, 16년의 시간은 나를 계획적인 인간으로 바꾸어놓았다. 은퇴 준비도 그랬다. 마흔에 은퇴하자는 목표가 수립되자, 난 은퇴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나의 은퇴는 스프레드시트와 함께했다. 가계부를 쓰고, 은퇴에 맞추어 소비와 지출 계획을 수립하고, 자산 파악과 저축 계획까지 스프레드시트에 기획하고 그에 따라 하나씩 수행해나갔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불안할 때마다 스프레드시트를 들여다보면서 계획을 보완했다. 은퇴 기획은 남편과 함께였다. 내가 계획을 세우고, 남편이 검증을 담당했다. 남편은 내 기획서에 구멍이 없는지 날카롭게 파악했다. 그는 개발자의 입장에서 기획서를 검토하고 피드백을 남겼다. 우리는 그렇게 은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은퇴 이후의 삶은 예측하기 어려웠다. 내 기획에 구멍이 있을까 봐 매번 불안했지만 남편이 있어 그 불안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내 걱정은 아직 닥친 일이 아니며, 만약 문제가 생긴다 해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고 말이다. 닥치지 않은 일로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현실을 해치지 말라 했다. 우리는 함께였기에 은퇴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모두가 원하는 삶이라 부를 수 있는 정의는 없다. 개인이 원하는 삶은 다양하다. 치열하게 일해서 얻은 성과로 보람을 얻거나, 금전적인 여유로 누리는 풍족한 삶을 원할 수도 있다. 내 인생은 회사원으로 끝날 줄 알았었다. 난 그게 정답이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대해 잊고 살아왔다. 은퇴했다고 해서 그런 일들이 바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난 한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요즘은 한번에 하나씩만 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제는 하루에 한가지만 해도 괜히 뿌듯해진다. 책 한권을 다 읽거나, 집안일 하나만 처리해도 보람 있는 하루를 보낸 기분이다. 회사에서는 하루에 수많은 회의와 결재, 메일 수십통을 처리했는데, 하루에 하나만 하는 것이 너무 게으른 건 아닌가 자책할 때가 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하루에 한가지만 해도 1년이면 365가지를 하는 거야.”

이렇게 보낸 하루하루가 쌓여서 회사원이 아닌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다현 작가

<끝> ※필자님과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