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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

“교복 위 패딩 안돼”…‘학생인권’ 관심 늘었지만 갈 길 멀어

등록 :2017-01-31 09:13수정 :2020-02-29 13:49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5주년
2012년 1월 주민 뜻 모아 발의
‘학생도 시민’ 사회에 알린 신호탄
조례 관련 동아리 만든 학교도 있어

홍보 부족 탓 ‘그게 뭐죠?’ 반응도
두발·복장 등 규제 심한 사례 여전
교육공동체 아우를 인권정책 고민해야
# 서울 ○고교 2학년 최승현군은 교복 위에 패딩 점퍼를 입고 등교하다가 ‘단속’에 걸려 옷을 뺏겼다. 교칙에 없는 복장이라는 게 이유였다. 점심시간에 무릎담요를 덮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이윤정양도 교사에게 불려가 벌점을 받았다. 담요 크기 제한에 걸렸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이하 조례)에 따르면 이 두 학생에 대한 단속이나 벌점 등은 사실상 모두 부당하다. 조례 제4절 12조 ‘개성을 실현할 권리’와 13조 ‘사생활의 자유’에 따르면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지며 소지품과 사적 기록물, 사적 공간 등 사생활의 자유 및 감시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올해는 조례 제정 5주년이 되는 해다. 2012년 1월26일 전국 최초로 서울시내 주민 8만5281명이 힘을 모아 발의한 조례는 청소년을 규율과 징벌의 대상으로만 보는 구시대적 시각에서 벗어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 및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학습에 관한 권리, 개성을 실현할 권리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인권의식이 높아지면 교권이 하락한다”, “학생들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통제가 필요하다”는 등 반대 의견을 뒤로하고 진통 끝에 공포돼 그 의미가 더욱 깊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조례를 제정한 지 4년 되는 날인 지난해 1월26일을 ‘서울 학생인권의 날’로 선포하고 올해 2회째 행사를 개최했다. 지난 23일 오후 2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행사에는 서울시교육청 조희연 교육감과 관내 교육지원청장, 윤명화 학생인권옹호관, 초·중·고 학생참여단 등이 참석해 조례의 의미,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곱씹었다.

지난 23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제2회 ‘학생인권의 날’ 행사에서 조희연 교육감과 학생들이 종이비행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지난 23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제2회 ‘학생인권의 날’ 행사에서 조희연 교육감과 학생들이 종이비행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조례가 교육 현장에서 잘 안착해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 사례도 있다. 서울 금옥여자고등학교에는 ‘금옥인권위원회’라는 이름의 동아리가 있다. 소속 35명의 학생들은 차별금지와 의사표현의 자유, 학습에 관한 권리 등 조례 속 정신을 녹여낸 6개의 소위원회에서 활동한다. 이민혁 담당교사는 “학생인권, 장애인권, 여성인권, 아동학대예방 등 학생들의 관심사에 따라 자발적인 소위원회를 꾸려가고 있다”며 “고등 교육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졸업 뒤 사회 구성원이 되어서도 조례로부터 시작한 관심을 지속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교사는 “학생인권소위원회의 경우 최저시급, 근로계약서 작성법 등 청소년노동권을 비롯해 ‘휴식권’(조례 10조)을 주제로 야간자율학습에 관한 토론을 진행했다”며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주목한 장애인권소위원회는 근처 중학교에서 ‘장애 이해교육’을 진행할 만큼 내실 있는 활동을 펼쳤다”고 말했다. “서울 남영동의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옛날 대공분실)를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권리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양심·종교의 자유 등 조례 내용을 마중물로 근현대사 교육까지 진행할 수 있었죠.”

인권동아리 단장으로 활동한 금옥여고 3학년 김조은양은 “보통 학생은 억압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데, 조례 제정을 씨앗으로 삼아 우리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며 “성별, 나이, 장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꾸게 됐고 조례 등 정책의 중요성도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조례를 통해 학교 문화를 민주적으로 바꾸는 사례도 있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2015년 11월27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장인홍 의원이 공개한 ‘(서울시교육청 관내) 중·고등학교 학교규칙 점검 결과’에 따르면, 중·고교 702곳 가운데 87%(609곳)는 여전히 교칙에 두발 길이·염색·파마 등에 관한 엄격한 규제를 두고 있다.

서울 강서구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아무개양은 “두발·용의복장 규제가 굉장히 심하다”며 “쇼트커트 금지 교칙이 있고, 이를 어겨 벌점을 받으면 선생님들이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에 불리하게 기록한다”고 말했다. “양말의 경우 동전보다 큰 무늬가 있으면 벌점을 받고, 이제는 회색 양말도 금지돼 흰 양말만 신어야 해요. 겉옷은 검은색과 남색만 입어야 하고요. 아무리 추워도 학교 평판을 생각해 여학생은 치마만 입어야 한다는 교칙도 이해할 수 없어요.”

행사 현장 청소년 자유발언 시간에도 학교에서 인권조례가 적용되지 않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익명 보장을 위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발언대에 선 한 학생은 “신발은 물론 벨트 색깔까지 규제하고 선생님마다 용의복장에 대한 기준과 잣대가 다르다”며 “두발제한에 걸려 부당한 벌점을 받은 친구는 수시모집으로 대학 갈 예정이라 ‘찍히기’ 싫어서 인권조례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자유발언 시간에 또 다른 학생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꿈인 친구의 화장품을 전부 압수해,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며 언어폭력을 가한 선생님도 있었다”며 “야간자율학습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 상을 준다. 이 상이 학생부에 기재되고 대입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학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친구들도 많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의 체벌 빈도는 감소했지만 교사로부터 이유 없는 구타를 당했다는 등의 문제는 여전했다. 학생참여단이 서울 청소년 18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내 체벌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79.1%가 ‘아니다’라고 답했지만, ‘어떤 상황에 체벌을 받는가’라는 물음에는 ‘선생님 심기를 거스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작위로 때린다’, ‘문제를 풀다가 질문해도 허벅지를 맞는다’, ‘따귀는 거의 예외 없이 때린다’ 등의 답변이 나왔다. 서울 서대문구 소재 고등학교에 다니는 정아무개군은 “선생님이 굵고 두꺼운 반지를 낀 채 주먹으로 친구들 머리를 때린다”며 “선생님들이 조례 내용을 무시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조례가 일선 학교 현장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점도 제정 5주년을 맞이한 지금 ‘넘어야 할 산’으로 남아 있다. 관악구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박아무개군은 “지난해 12월 교칙개정 학급회의에 참가한 뒤 조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며 “많은 친구들이 모르고 있고 학교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전했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 ‘학교에서 조례에 대해 알려준 사실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76.9%의 학생들이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활동가는 “교육청 차원에서 조례 내용을 강력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단순히 조례를 권고하는 게 아니라 상위법을 제정해 행정력을 강화하는 등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단계적인 접근도 필요합니다. 첫해에는 두발규제 등 용의복장 중심(12조), 다음해에는 체벌과 집단괴롭힘 등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6조)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실효성을 갖춰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 인권보호만이 아니라 교사 등 교육공동체 모두의 권리신장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다. 서울시교육청 윤명화 학생인권옹호관은 “조례 제정 5주년을 기점으로 이제는 ‘학교인권’으로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다”며 “교내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학생과 교사를 아우르는 인권정책을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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