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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

학교에선 우리가 ‘루저’다

등록 :2009-11-29 20:42수정 :2009-11-29 20:42

학교에선 우리가 ‘루저’다.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수업중 싸우고 던지고” 학생은 무시
“교과 상의 한마디 없어” 동료는 방치
“한국어 배울 과정 적어” 정부 무관심
“마약중독자 아니에요” 사회는 편견
“40명 데리고 수업되나” 환경은 열악
원어민 교사들의 ‘솔직한 토크’

“싸우고, 뭔가를 던지고, 책상을 칼로 긁는 학생들.” “책도 없고 필기구도 없이 앉아 있는 학생들.” “수업을 시작해도 자리에 앉지 않고 수업을 마치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학생들.” 지난해 9월부터 우리나라 고교에서 원어민 보조교사로 일하는 로라(26·미국)의 ‘한국 제자’들이다. 그는 “감히 말하지만 나는 매일 한국 학생들한테 무시당한다”고 말했다. 조자룡 전국영어교사모임 사무총장은 “원어민들은 체벌을 하거나 점수를 깎는다는 위협으로 학생들을 통제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데 학생들이 이 점을 악용하기도 한다”며 “게다가 원어민의 수업은 대개 내신 성적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업은 하지만 교사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원어민의 초라한 현실이다.

학교에선 우리가 ‘루저’다.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학교에선 우리가 ‘루저’다.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의 하나로 원어민 보조교사가 크게 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를 보면 전국의 원어민 보조교사는 2007년에 3808명이었던 것이 2008년에 5553명, 2009년(4월30일 기준)에 7088명으로 늘었다. 이러한 원어민 보조교사의 양적 확대가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할지는 미지수다. 한국 학교에서 제구실을 못하는 원어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원인으로 ‘원어민의 자질 부족’을 꼽는 시각이 많았던 게 사실이지만 학교가 그들의 교육 활동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원어민들은 특히 한국 교사와 함께 하는 협력수업(co-teaching)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원어민은 반드시 한국 교사와 함께 수업해야 한다. 교사자격증이 없기 때문이다. ‘원어민 교사’가 아니라 ‘원어민 보조교사’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협력수업 체제에서는 원어민의 강점과 한국 교사들의 강점이 상승 효과를 낼 수 있다. 원어민이 말하기와 듣기 영역을, 한국 교사가 읽기와 쓰기 영역을 분담하는 식이다. 여기에 한국 교사는 수업 태도가 불량한 학생들의 지도를 맡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교사들은 수업에서 원어민을 배제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고교에서 일하는 스티브(캐나다)는 “한국 교사들이 수업에 대해 나랑 의논하지 않는 점은 내가 겪는 가장 심각한 문제”라며 “그들은 수업 시작 5분 전에 나타나서 수업 자료를 보여주며 ‘오늘 이걸 할 건데 어떠냐’고 통보한다”고 말했다. 캐서린(29·캐나다)은 “직전에 나를 맡았던 교사는 방과후 보충수업이 계획된 하루 전날 통보하면서 참고자료라고 두툼한 서류 뭉치만 떠안겼다”며 “지금은 운 좋게도 내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교과서에서 내가 맡을 부분은 어딘지를 미리 상의하는 한국 교사들과 일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교사들과 원어민의 ‘팀워크’는 수업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한국 학교가 원어민과 수업할 ‘협력 교사’(co-teacher)를 배정할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교에서 일하는 베스(24·미국)는 “우리를 맡는 한국 교사는 재수가 없어서 가욋일을 떠맡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인다”며 “진짜 원하는 한국 교사들한테 일을 맡기고 또 우리의 학교 적응과 수업 역량을 키우는 것을 도울 수 있도록 한국 교사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여론은 자꾸 ‘무자격’ 원어민을 문제 삼지만 진짜 문제는 고급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한국 학교의 ‘무대책’이라는 사실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의 한 여고에서 일하는 사라(25·미국)는 “나는 매주 한 번, 50분씩 모두 540명의 학생들을 만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의 말하기 능력을 키우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1시간30분 정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테솔(TESOL·영어를 쓰지 않는 학습자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법) 과정 석사 학위를 따고 유학생들한테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전문가’다. 서울 ㄱ여고 용아무개 교사는 “우리 학교는 한 반을 두 반으로 나눠서 2명의 원어민 교사가 수업을 하는데 실제로 학생들한테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며 “학급당 인원수가 35~40명 되는 교육 환경에서는 한국 교사들도 수업을 제대로 못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원어민이 교실 수업을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원을 하지 않는 학교도 많다. 교육청은 원어민이 학교에 배치된 뒤 3~5일 동안 수업 참관 등의 오리엔테이션을 하도록 권고하지만 이를 이행하는 학교는 드물다는 게 현장 교사들의 말이다. 인천의 한 고교 영어 교사는 “원어민이 온 날 별도의 오리엔테이션 없이 바로 수업을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존(캐나다)은 “원어민들은 적절한 훈련이나 고용주인 학교로부터 어떤 가이드라인도 받지 않고 그냥 교실에 내던져지는 경우가 많다”며 “원어민 교사한테 교실 수업에 대한 더 많은 훈련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교사자격증이 없는 교사들한테 수업 지원은 필수적이다.

교사자격증이 없는 원어민을 채용한 학교가 교수법이나 학생지도법을 교육하지 않고서 원어민의 ‘무자격’을 문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1996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일한 토미(미국)는 “영어를 쓰지 않는 학생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법에 대한 훈련을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학교는 교육적 지원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인색하다. 로라는 “한국 교사들이 원어민 교사들도 감정과 생각이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우리는 학교 분위기를 흐리는 불순한 존재들이 아니고, 여기 단지 돈을 목적으로 왔거나 여행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로라는 “동료로, 교사로 인정받고 싶다”고 덧붙였다. 중학교에서 일하는 칼(영국)은 “지난 2년 동안 한국의 언론은 원어민들을 마약 중독자, 범죄자 등으로 묘사해왔다”며 “대개의 원어민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교육을 하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부는 원어민들이 한국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배우려고 하는 원어민조차도 마땅한 교육기관을 찾지 못하는 게 더 문제다. 서울의 한 고교에서 일하는 데이브(28·영국)는 “교육청에서 한국말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집과 교육청이 너무 멀어서 참여하기가 힘들다”며 “일주일에 두 번씩 한글 과외를 받으려고 선생님을 구하고 있는데 아직 못 구했다”고 했다.

(기사에 나오는 원어민 교사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김한별 박소현 윤정희 이산 이원경 진혜란 최유빈 아하!한겨레 2기 학생수습기자

한주형 1기 학생기자,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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