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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

가요·국악·클래식…우린 연주하며 배워요

등록 :2021-10-11 18:57수정 :2021-10-12 11:24

예술가들이 초등학교를 찾아간 이유는

‘1학교 1음악단’ 키우는 마포 초등학교들
춤·연극 예술가들과 체험하는 음악 교육
뮤지션들이 사물놀이·밴드 동아리 육성
“전문가들 연주 듣고 배우는 귀한 기회”
하늘초등학교 학생이 ‘더 빅밴드 라온’ 뮤지션에게서 드럼을 배우고 있다.
하늘초등학교 학생이 ‘더 빅밴드 라온’ 뮤지션에게서 드럼을 배우고 있다.

# “이번에 새로 연주할 곡은 모모랜드의 ‘뿜뿜’입니다. 각자 연주하고 싶은 파트로 나눠서 배우고 연습해요.”

지난 6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하늘초등학교 강당. 밴드 활동을 하기 위해 모인 4학년 학생 33명은 출석 점검을 한 뒤 악보를 받아 들고 건반, 현악기, 타악기 세 교실로 흩어졌다.

현악기 교실에 모인 7명은 회의를 거쳐 베이스 2명, 일렉트로닉(전자) 기타 2명, 우쿨렐레 3명으로 담당을 정했다. 강사가 파트별로 돌면서 찬찬히 연주법을 지도해줬다. 타악기 교실에서는 드럼, 팀발레스, 봉고, 콩가 4파트로 나뉜 아이들이 일대일로 ‘뿜뿜’의 연주법을 배웠다. 건반 교실은 멜로디, 반주, 스트링으로 나뉘어 악보를 연구하고 배웠다.

이들을 지도하는 강사 네 사람은 재즈오케스트라인 ‘더 빅밴드 라온’의 뮤지션들이었다. 2015년 대중음악 및 방송음악계 연주자들이 모여 창단한 더 빅밴드 라온은 국내외에서 재즈, 팝, 가요 등으로 공연을 하는 빅밴드다. 초등학교에 세트 드럼, 일렉트로닉 기타, 베이스 기타, 팀발레스 등의 악기들이 갖춰져 있는 것도, 뮤지션들이 초등학교를 찾아와서 가르치는 것도, 아이들이 세밀하게 파트를 나눠 일대일로 배우는 것도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아이들은 지난 석달간 연습 끝에 윤도현의 ‘나는 나비’ 합주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이날 새로운 곡 ‘뿜뿜’을 배우기 시작했다. 김석록 더 빅밴드 라온 단장은 “일렉트로닉 기타나 베이스, 드럼 등을 접해본 아이들이 아무도 없어서 몇달 배워서 합주에 성공할 수 있을지 고개가 갸웃거려졌는데, 아이들이 성인과 달리 스펀지처럼 흡수하면서 배우니까 성장 속도가 너무 놀랍다”고 말했다.

신석초등학교 아이들이 노름마치예술단 단원들에게서 장구를 배우고 있다.
신석초등학교 아이들이 노름마치예술단 단원들에게서 장구를 배우고 있다.

# “일단 구음으로 익혀볼게요. 덩덩궁따궁 덩덩궁따궁 따궁궁따궁…”

지난달 30일 오후 1시20분. 서울 마포구 신석초등학교 음악실 바닥에 5학년 학생 16명이 장구를 가지고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칠판에 쓰인 휘모리 가락을 따라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 찬찬히 읽던 아이들이 점점 흥이 붙자 랩을 하듯이 신나게 리듬을 탔다. “이제 장구로 쳐보자”는 강사의 말에 아이들은 장구채를 잡았다. 아이들은 긴 악보를 잘 따라갔다. 강사가 “그럼 우리 이제 악보 없이도 할 수 있을까?”라고 묻자 아이들은 “네!” 하고 목청을 높였다. ‘과연 악보 없이도 이걸 다 외워서 할 수 있을까?’ 하는 표정이 강사의 얼굴에 스쳤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강사는 악보를 치웠고, 아이들은 더 신나고 흥겹게 장구에 몸을 맡겼다. 연주가 끝났는데도 몇몇 아이들은 너무 몰입해서 장구를 멈추질 못했다. 강사는 아이들을 달래 멈추게 해야 했다.

이날 장구를 가르친 강사 세 사람은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노름마치예술단의 단원들이었다. 1993년 창단한 유서 깊은 노름마치예술단은 국외 65개국에서 공연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악 예술단이다. 이호원 노름마치예술단장은 “서양음악과 달리 전통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아이들이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시큰둥해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하고 재미있어할 뿐만 아니라 재능까지 드러내는 아이들이 많아서 가르치는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아현초등학교 아이들이 서울윈드오케스트라 단원에게서 클라리넷을 배우고 있다.
아현초등학교 아이들이 서울윈드오케스트라 단원에게서 클라리넷을 배우고 있다.

# 지난 6일 오전 9시 서울 마포구 아현초등학교 시청각 교실. 스크린에서 한 오보에 연주자가 영화 <미션>의 주제곡인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하고 있었다. 아름답고 감미로운 선율에 3학년 1반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이어서 잉글리시호른 연주자의 ‘신세계 교향곡’(드보르자크) 연주와 알토색소폰 연주자의 ‘헤이 주드’(비틀스) 연주, 테너색소폰 연주자의 영화 <알라딘> 주제곡 연주 등 다양한 목관악기들의 연주가 각 악기의 특징 설명과 함께 이어졌다.

동영상 시청이 끝나자 강사가 아이들에게 눈을 감게 했다. “자, 이제 연주 소리만 듣고 어떤 악기 소리인지 맞혀보세요.” 이날 아이들은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등 다양한 악기 연주를 처음 들었지만, 집중해서 감상했기에 정답을 쏙쏙 맞혔다. 퀴즈 시간을 마치고 아이들은 이들 목관악기들을 직접 만져보는 체험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19 유행 시기라 모두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거리두기를 하며 줄을 서서 색소폰, 클라리넷, 플루트 등의 악기를 들어서 눌러보기도 하고 입 가까이 대며 연주하는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이날 수업을 지도한 강사들은 국내 정상의 관악단체인 서울윈드오케스트라 단원들이었다. 아이들은 “악기들이 생각보다 무거워서 놀랐다” “평소에 못 만져본 악기들을 만져보니 신기하고 좋은 경험이었다” 등의 수업 소감을 밝혔다.

창작예술그룹인 ‘정트리’가 자신만의 악보 만들기를 통해 음악 수업을 하고 있다.
창작예술그룹인 ‘정트리’가 자신만의 악보 만들기를 통해 음악 수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들이 초등학교들을 찾아가 음악을 가르치고 동아리를 키워내고 있는 것은 서울 마포구청 교육지원과와 마포문화재단의 ‘1학교 1음악단 인큐베이팅 사업’ 덕분이다. 마포구청은 마포에 사는 어린이라면 누구나 한강에서 조정을 배우고 생존수영을 익히며 악기 하나는 배워, 문화적 소양을 갖춘 문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경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학교 1음악단 인큐베이팅 사업’은 교육경비사업의 하나로, 아이들이 음악을 ‘인생의 반려자’로 삼아 즐기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선생님 없이도 스스로 굴러가는 음악단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에는 1년간 예술단원들이 정규 수업 시간에 들어가 음악을 가르치고 감상하게 하는 ‘통합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올해는 자원하는 아이들을 상대로 동아리를 만들어 악기 연주를 가르치고 있다.

통합 음악 프로그램은 음악가뿐만 아니라 무용·연극 예술가들이 함께 협업해, 아이들에게 음악을 체험하며 이해할 수 있게 개발한 특별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실험적인 예술창작그룹인 ‘정트리’는 신체활동과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이 자신만의 악보를 제작하게 함으로써 음계를 가르쳤다. 모던록 밴드인 ‘몬구밴드’는 태블릿 피시를 이용해 주변 소리를 수집·샘플링해서 악기를 만드는 수업을 했다. 탭댄스 그룹인 ‘요노컴퍼니’는 몸을 두드려 추는 춤인 스테핑을 통해 박자와 셈여림, 빠르기 개념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이렇게 몸으로 하는 활동과 체험으로 음악 이론을 배운 뒤 아이들은 공연과 연주를 감상하는 시간을 오래 가졌다. 신석초등학교에는 노름마치예술단이, 아현초등학교는 서울윈드오케스트라가, 하늘초등학교에는 더 빅밴드 라온이 찾아가서 라이브 교실음악회를 열어 아이들의 귀를 열어주었다.

전통문화예술단인 ‘사회적 협동조합 놀터’가 하늘초등학교에서 ‘찾아가는 교실음악회’를 열고 있다.
전통문화예술단인 ‘사회적 협동조합 놀터’가 하늘초등학교에서 ‘찾아가는 교실음악회’를 열고 있다.

이렇게 1년간 배움과 감상 시간을 가진 아이들 중에서 실제로 음악단으로 활동해보고 싶다는 사람의 자원을 받아서 올해는 동아리 형식으로 연주를 가르치고 있다. 하늘초 아이들은 11월 중으로 모모랜드의 ‘뿜뿜’ 합주 공연을 올릴 예정이다. 신석초 아이들은 11월 중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사물놀이 실력을 뽐낼 계획이다.

예술가들이 이렇게 정규 수업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동아리를 키워내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김석록 단장은 “한국 초등학교에 오케스트라는 굉장히 많지만, 가요와 재즈를 연주하는 빅밴드는 하늘초등학교가 최초이지 않을까 한다”며 “어린이 빅밴드를 창단하고 싶은 오랜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을 이루게 되어 말로 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호원 단장은 “어렸을 적에 우리 뿌리인 전통음악을 접해보고 사회에 나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그간 방과후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쳐보면 아이들이 스스로 즐기게 하는 단계로 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정규 수업과 동아리 육성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만나니까 배움의 차원이 다른 거 같다”고 했다. 아현초등학교 신은경 예술업무 담당 교사는 “아이들이 평소 보기 어려운 악기들을 공연 전문가들이 직접 가져와서 연주도 해주고 가르쳐주니 아이들에게 너무나 귀한 기회인데, 아이들도 큰 흥미와 열정을 보이며 참여하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하늘초등학교 학생들이 ‘더 빅밴드 라온’ 뮤지션에게서 베이스 기타를 배우고 있다.
하늘초등학교 학생들이 ‘더 빅밴드 라온’ 뮤지션에게서 베이스 기타를 배우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장르의 음악과 악기를 만나고, 합주해보는 경험이 소중해 보였다. 하늘초 오연아양은 “원래 음악에 관심도 없었고 기타도 쳐본 적이 없었는데, 일렉트로닉 기타를 배워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중고교 때까지 계속 밴드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준영군은 “친구들과 맞춰서 합주를 하는 게 밴드 활동의 재미”라며 “지난번 ‘나는 나비’ 합주 공연은 100점 만점에 99점을 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사진 마포문화재단 제공

“아이들이 인생의 고비마다 음악에 기댈 수 있길”

‘1학교 1음악단’ 운영하는 박인재 마포문화재단 팀장

“예술가가 예술 강사가 아닌 온전히 예술가로 아이들을 만날 때, 가장 문화예술적인 교육이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1학교 1음악단 인큐베이팅 사업’을 책임 운영하고 있는 마포문화재단 박인재(사진) 문화정책팀장은 이 프로그램의 차별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술 강사는 학교의 교육적 필요에 맞춰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면,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고 나누는 사람이다. 박 팀장은 “예술가들이 어린이와 같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술가들과 어린이들은 잘 통한다”며 “예술가들은 아이들에게서 얻는 영감과 상상력이 있고, 아이들은 교사가 아닌 예술가와 만남에서 얻는 자유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차별성은 아이들에게 음악을 만지고 만들고 춤추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배우고 느낀 뒤, 악기 연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점이다. 많은 학교가 시행하고 있는 ‘1인 1악기 교육’은 의무적으로 악기를 하나씩 익히게 하는 반면, 이 프로그램은 먼저 음악을 즐기게 만든 다음에 원하는 아이들에 한해서 동아리를 구성해 연주 활동을 하도록 하는 게 특징이다. 박 팀장은 “아이들 인생의 고비마다 음악이 기댈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프로그램을 준비했다”며 “아이들에게 악기부터 쥐여주고 기능 중심의 교육만 하게 되면 오히려 음악으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음악이라는 예술을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데 방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예술가들이 1년간 정규 수업 시간에 음악을 가르치고 다음해에는 음악단을 키워내는 이 프로그램은 마포문화재단이 지난 10년간 축적해온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사업의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그대로 녹여낸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궁극적 목표는 “학교별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단이 만들어져서 협연도 하고 축제도 해서 마포의 대표적인 청소년 음악단 축제가 열리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음악단이 지역으로 나와서 지역 주민과 만날 때 아이들이 더 성장하고 발달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 출발점으로 내년에는 음악단이 있는 학교들이 예술단과 함께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을 초대해서 연주회를 여는 ‘스쿨 음악 캠프’를 준비하고 있다.

이외에도 마포문화재단은 내년에 ‘문화예술 동아리 다큐전’을 준비하고 있다. 마포에 있는 다양한 청소년·성인들의 문화예술 동아리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제출하면 그중 우수작을 선정해서 시상하는 행사다. “동아리들은 활동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고, 재단은 동아리들의 활동을 기록·보관할 수 있는 의미가 있다”고 박 팀장은 설명했다. 김아리 객원기자, 사진 마포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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