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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권·복지

기생이 위안부 원류? 이영훈 전 교수는 춘향전을 거꾸로 읽었다

등록 :2019-08-24 10:33수정 :2019-08-25 09:49

[토요판] 이슈
‘위안부 원류는 기생’ 주장의 오류

‘반일 종족주의’ 책 저자 이영훈
“기생이 일제 위안부 원류” 주장
기생제에 대한 무지와 왜곡 바탕

기생과의 간음은 불법으로 처벌돼
‘춘향전’ 결말은 기생제 인정 아닌
사또도 기생의 성 유린 안 된다는 것

자부하는 학문적 실증성은 허약
우리 역사 향한 혐오만 두드러져

▶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최근 책 <반일 종족주의>와 극우 유튜브 방송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관련해 “위안부의 원류는 조선시대의 기생”이라며 “우리가 위안부를 비판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선시대를 전공하는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이 전 교수의 이런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닌 왜곡이라고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다.

2004년 9월6일 이영훈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토론 프로그램에서 “위안소는 사실상 공창 형태 성매매업소”라고 한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그는 최근 낸 <반일 종족주의>에서 위안부를 성노예로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광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04년 9월6일 이영훈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토론 프로그램에서 “위안소는 사실상 공창 형태 성매매업소”라고 한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그는 최근 낸 <반일 종족주의>에서 위안부를 성노예로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광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반일 종족주의>가 몰고 온 논란은 주로 한국 근현대사를 둘러싼 것이지만 일본군 ‘위안부’ 등에 대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주장은 조선시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 위에 서 있다. 그는 최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공권력의 보호’를 받은 존재였음을 강조하는 반면, 뜬금없이 조선시대 기생제야말로 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원류였다고 주장하고 나섰다(<이승만TV>). 필자는 이 교수의 세종에 관한 저서(<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중 기생제 부분을 검토함으로써 그의 조선시대사 인식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그가 자부해 마지않는 ‘학문적 실증성’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조선시대 기생제에 대한 이 교수의 주요 견해는 다음과 같다. “기생은 정부와 관아의 명을 받아 관리와 귀한 손님의 침실에 들어 성적 위안을 제공하였다. 어느 국가가 특정 부류의 여인에게 성 접대의 역을 강요하고 세습시킨 예를 세계사의 다른 문명사회에서 찾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또 신분을 세습하는 기생제를 창출한 인물은 세종이었으며, ‘관리와 군사에게 성적 위안을 제공하는 기생제’는 ‘누구도 그 도덕적 근거를 의심하지 않은’ 조선 고유의 풍속으로 정착되어갔다고 한다. 정력이 왕성한 청장년의 관리가 처의 간섭을 받지 않는 곳으로 부임했을 때 그들이 관내 기생의 성을 향유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는 것이다. 가냘픈 여인의 성을 아무렇게나 누리는 것이 임금의 이름으로 선포된 국가 질서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선시대만이 위선적이었나

이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심각한 오류와 과장이다. 첫째, 이 전 교수는 조선시대 제도를 잘못 보았다. 조선시대에 관리는 기생과 동침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형법으로 채택된 <대명률>도 그렇고, <속대전>을 비롯한 최고 법전도 기생을 간음한 수령은 모두 적발하여 파직한다고 규정하였다. 관리가 다른 사람에게 기생을 보내 동침하게 하는 행위도 세종이 금지하였다. 정부에서는 관리의 기생 동침을 금지하는 법을 되풀이 강조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는 기생을 간음한 관리를 처벌한 기사가 수없이 많다. 기생제가 군 위안부의 원류였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그런데도 이 교수는 <대명률> 이후 “조선왕조가 군현의 수령과 관내 기생의 성적 관계를 공인한 적은 없었다. 상황에 따라 그것은 처벌의 대상으로 거론되었다”고 설명했다. ‘항상’, 그리고 ‘명백히’ 금지하고 처벌하도록 한 것을 두고 ‘공인한 적이 없고’ ‘상황에 따라’ 처벌 대상으로 거론했다고 교묘하게 왜곡했다. 그리고 이런 왜곡에서 더 나아가, 처의 간섭만 아니라면 관리가 기생의 성을 향유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고 누구도 그 도덕적 근거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둘째, 이 교수는 사회의 부분과 전체를 구분하지 않았다. 세습 노비제는 조선시대 역사의 급소라 할 만한 어두운 부분이었다. 유의할 점은 농민이 과거를 거쳐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사회를 지향했던 15세기 조선의 선진성만을 부각하는 것이 잘못인 것처럼, 노비제만을 떼어내 조선시대 사회 성격을 단정하는 것 또한 타당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노비제를 조선의 본질로 보았다. 세종이 함경도에 기생을 두어 군사를 접대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 뒤 비록 평안도와 함경도의 변경에 홀몸으로 파견된 장교들에게 한정되었지만 개인별로 기생을 배정하여 시중들게 한 것은 조선시대의 가장 야만적인 면모였다. 하지만 그것이 군 위안부의 원류라고 한다면 그러한 원류는 세계사에 셀 수 없이 넘쳐날 것이다. 함경도와 평안도 변경에 파견된 장교에 대한 특수한 경우를, 관리가 기생과 동침하는 것을 한결같이 금지했던 기생제 일반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이 교수는 변경 일부의 특수한 경우를 기생제의 전체이자 본질인 것처럼 과장, 왜곡했다.

셋째, 이 교수는 현실의 불법을 제도와 혼동하였다. 그는 조선왕조가 기생제로 인해 위선의 체제로 영위되었다고 하고, 기생에 대한 참혹한 폭력 사례를 낱낱이 나열하면서 개탄해 마지않았다. 기생의 원래 임무는 가무와 악기 연주였지만 그들이 신분 세습의 굴레 속에서 성폭력에 시달리던 현실을 누구라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교수가 거론한 사례들은 기생제의 아주 특수한 면모를 제외하면 현실에서 발생한 불법일 따름이지 제도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줄곧 제도로서의 기생을 논했다. 성을 둘러싼 폭력과 위선의 현실을 평가하려면 시야를 훨씬 넓혀야 한다. 크리스트교가 지배하던 서유럽 세계, 근대를 이루었다고 하는 자본주의 초기에 횡행하던 성폭력과 위선은 어떠했던가. 우리가 목도하는 오늘날의 사정은 또 어떤가. 그런데도 이 교수는 제도가 아닌 현실의 불법을 기생제라고 잘못 설명하고, 세계사의 다양하고 처참한 현실은 돌아보지 않은 채 조선시대의 위선만이 인간사회의 기이한 일인 것처럼 과장하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기림일(8월14일)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 앞마당에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김학순(1924~1997) 할머니와 피해 할머니 열한분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광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기림일(8월14일)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 앞마당에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김학순(1924~1997) 할머니와 피해 할머니 열한분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광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춘향전’의 저항성엔 눈길도 안 줘

이 교수는 <춘향전>을 설명하면서 조선시대 기생제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했다. 위의 오류들이 자연스럽게 거기 모였다. 이 교수는 춘향의 꿈은 기생제 폐지가 아니라 첩이라도 좋으니 서울 사는 양반이 되는 것이며, 기생제는 서민 대중의 생활문화에서도 오히려 내면의 가치로서 집요하게 추구되었다고 평했다. 그는 춘향전을 소설이 아니라 정치 팸플릿 분석하듯 독해했다는 점에서 자신이 비판하는 선행 연구와 동일한 오류에 빠졌다. 통속소설이자 대중소설인 춘향전에서 기생제 폐지와 같은 사회 개혁을 직접 찾는 것은 무리다. 춘향전은 지금도 문학은 물론 음악, 발레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식으로 재창작되고 있다. 이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오늘날 사람들도 조선시대 기생제를 내면적 가치로 추구한다고 할 것인가.

설령 춘향전을 정치 선언문으로 읽는다고 해도 이 교수의 평가는 잘못되었다. 춘향전의 작자와 독자들에게 춘향에 대한 사또의 수청 강요는 명백한 불법이었다. 춘향은 부당한 권력에 항거했으며, 그것이 법적으로 정당했고 국가의 표창을 받았다. 춘향전의 논리적 결말은 이 교수가 주장하듯 기생제 추구가 아니라, 사또가 기생 춘향의 성을 유린할 수 없다는 법질서의 재천명이다.

그러나 춘향전의 의미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소설 춘향전이 독자들에게 펼쳐 보이는 사회적 메시지는 논리나 이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춘향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춘향은 사회 최하층 나이 어린 여자의 몸으로 남원 고을 관아 마당에서 최고 권력자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인격 모독을 감내하지 않고, 협박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한마디 말도 밀리지 않고, 유혈이 낭자하고 생명이 가물거리는 가운데 사납고 거칠게 저항했다. 작품 속 남원 민중과 독자들은 그런 춘향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춘향전에서는 논리가 아닌 그 장면 자체가 조선 체제의 종말을 고했다. 그 처절하고도 찬란한 저항의 현장에 이 교수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춘향전을 잘못 읽었다.

이영훈 교수는 최근 연구들만 성실히 검토했어도 위와 같은 오류를 피할 수 있었다. 그 주장의 실증성은 신뢰하기 힘들며 그에게서 두드러지는 것은 한국 역사에 대한 학문적 비판이 아닌 혐오다. 그 오류와 혐오가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 해방 후 기지촌의 참혹함이란, 그지없이 충성스러운 일본군 장교로서 해방을 맞이했던 인물, 민주주의를 말살하려 한 인물들이 대통령으로 통치하던 사회에서, 친일파와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가운데 벌어진, 일본군에게서 보고 배운 식민지 경험의 업보였다. 이 교수가 그 참혹함을 되뇌며 그것이 군 위안부를 공권력으로 보호한 일본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역설하는 대목에 이르러, 이영훈 교수가 군 위안부제의 역사적 원류가 조선시대 기생제였다고 주장하는 대목에 이르러, 필자는 학문에 대한 회의를 피할 길 없다.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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