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농업기술 발전과 남북의 농업협력에 열정을 쏟았던 농학자 김필주 박사 ( 지구촌 농업협력 및 식량 나누기 운동협회 회장 ) 가 지난 1 일 오전 별세했다 . 향년 87.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해방 직후 가족과 함께 월남해 고단한 실향민의 삶을 시작했다 . 한국전쟁의 참화와 가난을 견디면서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한 뒤 1962 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 농대를 나와 농촌지도원이 됐으나 농민들에게 씨앗 한 톨 , 비료 한 줌 지원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을 목도하고 좀 더 배워야겠다는 일념을 세웠다고 한다 . 미시시피주립대에서 종자학을 공부하고 코넬대에서 작물생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직장에서 옥수수 종자 생산기술을 보급하는 일을 하면서 북한과 인연을 맺었다. 개발도상국과 사회주의 국가를 드나들다 자연스레 북한에까지 발길이 닿았다. 1989 년 평양을 처음 방문한 이후 100여 차례 북한을 찾아 종자와 기술을 전수했다 . 이모작을 전파하고 목화를 보급하는 등 북한의 농업 생산력을 끌어올리는 데 힘을 보탰다.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던 어릴 적 꿈이 북한에서 열매를 맺은 셈이다. 재 미동포들과 함께 평양과학기술대학교 설립에 참여해 초대 농업생명과학기술대 학장으로 일했다.
최근에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남북 농업협력의 길을 찾느라 바쁜 시간을 쪼갰다. 남쪽의 농자재와 농업기술이 북쪽의 농토와 농민을 만나 이뤄지는 지속가능한 순환농업의 미래를 그렸다. 그는 지난 22 년 제 24 회 한겨레통일문화상을 받았을 때도 “기후위기가 깊어질수록 남북 농업협력을 진전시키고픈 간절함이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주우정 ( 조각가 )· 우일 (UC데이비스대 교수)씨와 딸 은지(SFMOMA 컨템포러리 아트 큐레이터)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5일 오전 10시30분이다.
유강문 논설위원 m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