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주 국제코리아재단 상임의장은 10여차례 쿠바 현지 답사를 통해 최근 <쿠바한민족사 그 가슴시린 100년의 실록>도 펴냈다. 사진 김종철 선임기자
이창주 국제코리아재단 상임의장은 10여차례 쿠바 현지 답사를 통해 최근 <쿠바한민족사 그 가슴시린 100년의 실록>도 펴냈다. 사진 김종철 선임기자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이 세계 각국에 많이 흩어져 있지만, 쿠바 한인들인 ‘코리안 쿠바노’만큼 조국과 민족으로부터 잊혀진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요. 어떤 면에서는 쿠바 한인들은 조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들의 존재도 뒤늦게 알려졌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관심을 그다지 보이지 않고 있잖아요.”

지난 6일 서울 광화문의 국제코리아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창주(76) 상임의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제코리아재단은 12월 하순 쿠바 현지에서 한인 후손들과 함께 하는 심포지움과 경제포럼, 문화행사 등을 개최할 계획이다.

한인후손회관이 있는 아바나뿐만 아니라 최초 정착지인 마탄사스의 엘볼로 마을 등 한인들의 흔적과 숨결이 담긴 곳을 직접 찾아서 기념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또, 체게바라시라는 별명을 가진 산타클라라, 카스트로의 도시인 산티아고 데 쿠바, 쿠바 현대사의 아픔이 배어 있는 관타나모 등도 방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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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사장은 “원래는 한인들이 100년 전 쿠바에 첫발을 내디딘 3월 25일에 맞춰 기념행사를 할 계획이었는데 코로나 사태 때문에 계속 미뤄져왔다”면서 “그러나, 쿠바 한민족 디아스포라 100주년인 올해를 이대로 넘길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애초 100명의 방문단을 계획했으나 코로나 사태 등을 감안해 절반 이상 축소해서 간소하되 알차게 행사를 치를 예정이다. 이왕이면 각계각층이 참여할 수 있도록 아직 방문단 문호를 닫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쿠바 전역에는 현재 1천여 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다. 1921년 쿠바 마나티항에 처음 도착한 한인 노동자 300여명의 후손들이다. 쿠바에 도착한 첫 이주민들은 1900년대초 멕시코로 돈벌러 갔던 에네켄(선박용 밧줄 원료) 농장의 노동자들 중 일부였다. 에네켄 농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을 찾아갔지만,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경기침체로 인한 설탕가격 폭락으로 이들은 다시 쿠바의 에네켄 농장에서 일해야 했다. 쿠바 한인들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대한인국민회의를 결성(1923년)해 독립운동에 나섰으며, 상하이 임시정부 등에 독립자금을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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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한인들은 쿠바 태생이 아닌 외국인들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 헌법 개정(1940년),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혁명(1959년) 등으로 빠르게 현지에 동화됐다. 특히 쿠바 혁명 이후에는 한국이나 미국과의 교류가 단절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잊혔다가 1980년대 후반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부터 차츰 교류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사장은 2013년께 처음 쿠바를 방문한 뒤 한인들의 뿌리를 찾아 지금까지 모두 16번이나 현지를 찾았다. 그는 “쿠바 한인들의 역사를 알면 알수록 초기 이민자들이 겪어야 했던 처절한 생존 투쟁과 그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헌신 등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면서 “이제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고 기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02)730-7530.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