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어 2부가 방송됩니다.’ 지상파 티브이(TV) 시청자들에게 이미 익숙한 방송 자막이다. 드라마 <달이 뜨는 강>(K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SBS) 등 인기 프로그램 곳곳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이 사실상 중간광고를 해온 가운데, 최근 ‘지상파 중간광고, 48년 만에 허용’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진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난달 31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중간광고 및 광고시간 총량 제한 규제를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종편) 등 유료방송에 똑같이 적용하는 내용 등을 담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아직 법제처 심사와 차관·국무회의 의결 절차가 남아 있지만, 1973년 정부가 지상파 중간광고를 금지한 뒤로 주무기관의 최종 의결까지 이른 것은 처음이다. 2000년대 초부터 20여년을 끌어온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논란’이 종착점을 코앞에 둔 셈이다.

지상파, 5년 전부터 ‘유사 중간광고’ 도입

지상파는 광고시장에서 케이블·온라인 매체 비율이 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부터 중간광고·광고총량제 허용 등 규제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정부도 규제 완화를 수차례 시도했지만, “시청권 침해 및 매체 균형 발전을 해친다”는 이유로 시민단체·신문이 반발해 매번 무산됐다. 지상파는 2010년대 중반부터 시청점유율이 50%대 안팎으로 떨어지고 광고시장에서 유료방송·종편 등에 밀리자 규제 완화 요구·주장에 그치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2~3부로 쪼개서 편성한 뒤, 그 사이에 광고를 끼워넣는 ‘분리 편성 광고’, 일명 피시엠(PCM·프리미엄 광고)을 고안한 것이다. 인기 예능·드라마에서 시작한 피시엠은 시사교양은 물론 간판 뉴스 프로그램에까지 확대됐다. 피시엠을 두고 시청자·언론단체는 ‘꼼수·편법 중간광고’라고 거세게 비판했지만, 규제기구인 방통위는 “현행법을 위반한 건 아니”라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에스비에스>가 ‘2부 쪼개기’로 시작한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시청률이 오르자, 방영 중간에 ‘3부 쪼개기’로 바꾸고 평균 21분마다 광고를 내보내면서 시청자 민원이 급증했다. 그제야 ‘집중 모니터링’에 나선 방통위가 현황을 파악해보니, 지상파는 물론이고 중간광고가 ‘합법’인 <티브이조선> <채널에이> <티브이엔>(tvN)조차 피시엠을 도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예컨대 티브이조선은 <내일은 미스터트롯>을 2부로 쪼개고 중간광고 3회와 별도로 피시엠을 180초 내보냈다. 중간광고는 ‘1회에 60초 이내’라는 규제가 있지만, 피시엠은 법적 규제가 없다는 틈을 노린 것이다. 방통위는 지난달 의결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규제 사각지대’에 놓였던 피시엠을 중간광고 규제 틀로 흡수했다.

광고 총량도 늘어…후속 대책 논의 시급

지상파 중간광고가 정식으로 허용되더라도 이미 유사 중간광고를 해왔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선 ‘현상 유지’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 지상파의 광고시간 규제도 완화됐기 때문이다. 기존에 하나의 프로그램 편성시간당 광고시간을 최대 100분의 15(시간당 9분)를 넘지 않도록 한 규제는 최대 100분의 20(시간당 12분)으로, 하루 동안 방송되는 모든 프로그램의 편성시간당 광고시간이 시간당 평균 100분의 15(시간당 9분)를 넘지 않도록 한 규제는 100분의 17(시간당 10분12초)로 완화됐다. 이는 기존에 종편 등 유료방송에 적용되던 규제를 지상파에도 똑같이 적용한 것이다. 가상·간접광고도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동일하게 방송 프로그램 시간의 100분의 7만큼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시청자가 프로그램 안팎으로 봐야 하는 광고가 전체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시청자·언론시민단체 등은 방통위의 ‘사후 규제’ 방침을 비판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한석현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간사는 “방통위는 시청자 보호 의무가 있는데도, 규제를 일단 풀고 반년 이상 지난 뒤 ‘시청자 영향 평가’를 한다고 한다. 규제의 허점을 노린 피시엠 사례를 겪고도 미리 시청권 침해를 최소화할 조치를 마련하지 않고서 사업자 자율에만 기대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적어도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이나 뉴스 등에 대한 장르 규제는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기존에 시행된 중간광고, 피시엠과 관련한 시청자 의견을 청취하고 대비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고

한편으론 지상파·종편·케이블 등 방송사업자가 광고와 관련한 ‘투명성’을 자율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대학 교수는 “정부 중심의 규제 체계는 이제 한계에 달했다”며 “방송사가 스스로 광고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세우되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방송뿐 아니라 온라인 영역까지 포괄하는 광고 규제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유튜브·넷플릭스 등 국내외 새로운 시청각미디어서비스 사업자들이 등장하면서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라이브 커머스’(실시간 인터넷 쇼핑 방송)가 뜨니까 티브이 홈쇼핑 사업자들도 규제 완화를 요구할 텐데, 기존 방송사업자뿐 아니라 디지털 영역을 포괄하는 광고 규제 체계 전반을 하루빨리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