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위원을 동시에 임명함으로써 5인 상임위원의 합의제 독립기관인 방통위는 다시 대통령 추천 몫 ‘2인 체제’가 됐다. 이들 두 사람은 극우적 성향의 친윤 인사로 분류되는 만큼, 윤석열 정부의 ‘방송 장악’ 논란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31일 방통위 안팎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진숙 방통위’ 체제 앞에 놓인 최대 현안은 한국방송(KBS)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등 공영방송 이사 선임이다. 앞서 방통위는 이 위원장 임명 전 이미 한국방송·방문진 이사 공모와 국민 의견수렴 절차를 마치고 선임안 의결만 남겨둔 상태다. 방통위는 ‘방통위 회의운영 규칙’에 따라 안건 상정 2일 전 각 위원에게 이를 통지해야 하는데,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를 둘 수 있다. 따라서 방통위는 이날 이후 언제라도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을 처리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이 후보자도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와 방통위의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방문진 등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꼽은 바 있다.
만약 이 위원장이 야당 등 국회 추천 상임위원 없이 공영방송, 특히 문화방송(MBC)의 대주주 방문진 이사 선임안 의결을 시도할 경우 방송 장악 논란을 빚고 탄핵 위기에 몰린 전임 방통위원장의 전철을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이동관 전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와이티엔(YTN) 최대주주 변경승인 심사 기본계획 의결을 강행한 뒤 야당이 탄핵을 추진하자 자진 사퇴했고, 그 후임인 김홍일 전 위원장은 지난달 공영방송 3사 이사 선임계획 의결 직후 같은 수순을 밟았다. 그 대신 이 전 위원장은 여당 추천 김효재 직무대행 체제에서 추진한 한국방송 이사진 교체 작업을 매듭지었고, 김 전 위원장은 이동관 방통위가 밑돌을 깐 와이티엔 민영화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진숙 방통위가 김홍일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 선임계획을 이어받아 문화방송 방문진 이사 교체까지 끝내면, 결과적으로 세 명의 방통위원장이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공영방송 세 곳의 경영진을 순차적으로 뒤바꿔 놓는 꼴이 된다.
윤 대통령이 이진숙·김태규 상임위원 임명과 2인 체제 방통위를 통해 공영방송 지배구조·소유구조의 일방적 개편 의지를 굽히지 않자, 언론·시민단체와 야당은 곧바로 규탄 기자회견을 예고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이 위원장이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 등 주요 안건 의결을 시도하면 곧바로 탄핵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야당이 실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더라도 본회의 표결까지는 최소 24시간이 필요해, 탄핵 카드로는 이 위원장의 공영방송 이사 선임 강행을 막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