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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노동

합의금 2천만원…회사는 엄마의 죽음을 지우자 했다

등록 :2021-05-19 17:39수정 :2021-05-20 02:44

아들 치료비 부치던 중국동포 끼임사
합의금 2천만원 종용 속 쓸쓸한 장례식

50대 강선화씨 세척기에 목이 끼는 참혹한 사고
치료 한달 만에 사망…유족들 경위파악도 어려워
중국동포·이주노동자 많은 소규모 부품업체
중대재해법 사각지대…회사엔 별반 제재 없어
지난달 16일 산업재해로 숨진 고 강선화(왼쪽)씨가 10여년 전 중국 허룽시의 사진관에서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강씨 유족 제공.
지난달 16일 산업재해로 숨진 고 강선화(왼쪽)씨가 10여년 전 중국 허룽시의 사진관에서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강씨 유족 제공.

장결핵을 앓는 중국의 아들에게 치료비를 부치던 50대 중국동포 여성 노동자가 자동차 부품업체 세척기계에 목이 끼여 사경을 헤맨 지 20여일 만에 숨졌다. 어머니를 보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아들은 입국 뒤 자가격리를 하다가 끝내 임종을 하지 못했다. “회사 책임은 20~30%”라는 일방적인 주장과 함께 2천만원의 목숨값 합의를 종용받던 유족들은 부검 등으로 한 달여간 미뤘던 장례를 20일 치른다.

반복된 산재사고에도 안전장치는 미흡

10년 전 한국에 처음 온 강선화(55)씨는 대부분의 기간을 자동차 부품업체인 ㅈ사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일했다. 이곳은 경기도 화성시에 공장을 둔 연매출 50억원에 직원 수 43명 규모의 회사로, 중국동포나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일한다. 강씨는 2017년부터는 초음파 세척기로 납품할 자동차 부품 표면을 매끈하게 처리하는 일을 맡았다.

강씨는 지난 3월23일 밤 회사 기숙사를 나서 공장으로 향했다. 주·야간 2교대로 저녁 8시부터 이튿날 아침 8시까지 밤을 꼬박 새우는 근무 일정이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날 밤 출근한 그는 결국 퇴근하지 못했다. 밤 10시께 초음파 세척기계 설비에 목이 끼는 참혹한 사고를 당했고, 병원 후송 24일 만인 지난달 16일 숨졌다.

현장에서 그가 겪은 사고 과정을 정확히 목격한 이는 없다. 동료 작업자는 반대 방향으로 등진 채 작업을 했고, 귀마개를 할 정도로 기계소음이 심한 현장이었다. 동료 작업자가 우연히 뒤를 돌아 강씨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사고가 발생한 뒤였다.

19일 ㅈ사·고용노동부·강씨 유족들 등의 말을 종합하면, 강씨가 사고 당일 밤에 다뤘던 부품 세척기의 실린더는 작동할 때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구조다. 강씨는 실린더가 아래쪽에 있을 때, 세척기 뒷면을 통해 점검·수리 등의 목적으로 상체를 넣어 기계 내부 확인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실린더가 상승으로 바뀌면서 강씨는 기계에 목 부위가 끼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얘기다.

“언니가 가족들에게 제품 불량이 많이 나서 힘들다고 했어요. 웬만한 불량은 관리자를 안 부르고 알아서 조금씩 보완 작업을 한다고도 했고요.” 지난 18일 고인의 사촌동생인 김민경(45)씨가 전했다. 그는 “수년 전 다른 기기에서 사고가 나서 언니 왼팔의 뼈가 부러졌다. 당시에도 두 달간 치료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세척기 자체엔 안전설비가 미흡했다. 기계를 덮는 방호덮개 등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또한 비상정지 장치도 강씨가 끼임사고를 겪은 기계 뒷면에는 없었다. 위험 장소인 세척기 뒷면으로 진입을 통제하는 조처도 없었다. 주 60시간의 장시간 근무에 잦은 야간 노동을 하던 강씨는 이런 현장의 안전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었던 셈이다. 회사는 사고 이후 노동부의 시정조치를 받고서야 뒤늦게 안전장치를 설치했다. 노동부는 회사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고 강선화(55)씨가 지난 3월23일 경기도 화성의 부품공장에서 목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던 초음파 세척기계의 모습. 강씨 유족 제공.
고 강선화(55)씨가 지난 3월23일 경기도 화성의 부품공장에서 목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던 초음파 세척기계의 모습. 강씨 유족 제공.

중대재해법 사각지대…회사 “20%만 책임…2천만원에 합의하자”

노동자 사망을 부른 심각한 끼임사고가 발생했지만 회사는 아직까지 사업장 운영에 별반 제재를 받은 게 없다. 일단 ㅈ사는 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을 받지 않았다. 강씨의 사고가 즉시 ‘중대재해’로 규정되지 않은 탓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중대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2명 이상이 석달 넘게 치료가 필요한 부상재해 발생 △부상자나 직업성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노동부는 이런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산업재해가 다시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으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린다. 이번 끼임사고는 강씨가 20여일 지나 사망한 뒤에야 중대재해로 규정된 탓에 회사가 작업중지 명령을 피해갔다. 노동부 경기지청 관계자는 “노동자 사망 시점엔 사업장이 시정조치를 이행해서 위험 요인이 해소된 상태이다 보니 작업중지 명령이 생략됐다”고 말했다.

게다가 ㅈ사는 43명이 일하는 소규모 사업장으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앞으로 3년 이상 유예된 사각지대에 속한다. 회사 대표자에게 안전보건 의무를 지게 하고, 산재가 발생하면 강한 처벌을 하자는 이 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2025년에야 적용된다. 지난해 산재사고 사망자 882명 중 81%인 714명이 강씨처럼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다.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은 “소규모 사업장이 산재 사망을 책임지지 않는 중대재해법의 법적 한계가 강씨 사고에서도 드러났다”며 “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은 노동자의 사망 여부가 아니라 안전 상황에 따라 나와야 한다”고 짚었다.

중국동포 노동자의 유족들은 진실을 규명하고, 회사에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과정도 너무나 험난했다고 전했다. 유족들은 “사고 다음날 현장에 갔는데, 출입통제선도 없고 사고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면서, 수사당국이나 회사로부터 사고 경위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듣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ㅈ사는 사고 경위와 관련해 ‘노동자 탓’을 하고 있다. ㅈ사 관계자는 유족과 <한겨레>에 “거기는 사고가 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분이 왜 그 기계에 들어갔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방호장치를 하지 않은 것은 과실이지만, 책임의 20~30% 정도라고 생각한다”면서, 2천만원의 합의금을 유족들에 제시했다. 사촌동생인 김민경씨는 “회사는 위로와 사과도 없었다. 회사 사람들이 ‘언니가 일부러 기계에 끼였다’는 식으로 몰아가니, 밤에 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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