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전염병처럼 번져 지금은 경영학의 기본처럼 여겨지는 ‘노동 유연화’는 사실 ‘불안정 노동’의 다른 이름이다. 노동 유연화는 경기 변동에 따른 생산물량 변화에 맞춰 노동자의 고용과 해고를 손쉽게 하려는 기업의 시각이 짙게 밴 말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노동자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해고는 정규직보다 훨씬 수월하다. 정규직 노동자를 자르려면 회사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의해 집단적인 정리해고를 하거나 해당 노동자가 취업규칙을 위반해 징계해고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 반면 원청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파견업체 또는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의 해고는 원청이 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기만 하면 된다. 언제나 ‘갑’인 원청은 ‘을’인 파견업체나 사내하청업체에 이런 통고를 할 수 있다. 이는 곧 해당 업체가 폐업하거나 정리해고하는 결정적 근거가 되기 때문에 원청은 별다른 법적 논란 없이 간접고용 노동자를 자신의 사업장에서 쫓아낼 수 있다.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이 불안한 이유는 자신이 속한 하청업체의 경영이 대부분 원청업체의 사정에 종속된 탓이 크다. 최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판결에서 확인된 것처럼 사내하청업체 대부분은 별도의 기술력이나 자본을 갖추기보다 보유한 노동자를 원청에 공급하는 구실에 그친다. 일거리가 떨어지면 더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만성적인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근본 배경이다.
그 결과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언제든 잘리고 직장을 옮겨야 하는 ‘부평초’ 같은 신세가 됐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올해 3월 현재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8년2개월인데 파견 노동자는 3년5개월, 용역 노동자는 2년10개월로 그보다 훨씬 짧다. 사내하청을 많이 쓰는 업종으로 좁히면 차이가 더 벌어진다. 2010년 고용노동부가 벌인 사내하도급 실태조사에서 조선업체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16년1개월인 반면 하청 노동의 경우엔 2년4개월에 그쳤다. 자동차업체도 원청 노동자(15년4개월)와 하청 노동자(3년8개월)의 근속연수 차이가 크다.
전문가들은 간접고용을 쓸 수 있는 요건을 매우 까다롭게 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라고 지적한다. 함부로 남의 노동자를 자기 사업장에 데려다 쓸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기업의 상시적인 업무는 반드시 사업주가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쓰도록 하고, 비상시적인 업무나 육아휴직 등 일시적 사유가 발생한 직무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으로 대체해 쓰도록 규제하지 않는 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