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서 7년간 설비엔지니어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2005년 세상을 떠난 황민웅씨의 부인 정애정씨가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패소하자 눈물을 흘리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법원, 2명엔 “백혈병 원인물질인
벤젠·전리방사선 노출” 인정
3명엔 “취급 화학물질과
발병 연관성 없다” 불인정
반올림 “입증곤란 고려안해” 비판
삼성 “조속히 해결 노력하겠다”
벤젠·전리방사선 노출” 인정
3명엔 “취급 화학물질과
발병 연관성 없다” 불인정
반올림 “입증곤란 고려안해” 비판
삼성 “조속히 해결 노력하겠다”
법원이 거듭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일부 노동자의 백혈병을 산업재해(산재)로 인정했다. 노동자들이 백혈병 등과 관련이 있는 벤젠 등 유해물질에 노출됐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가 작업장 환경과 백혈병의 인과관계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연거푸 이와 상반되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번 판결이 삼성전자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의 교섭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서울고등법원 행정9부(재판장 이종석)는 21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이숙영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산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함께 소송을 제기한 황민웅씨의 유족 등 3명에 대해서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 모두 1심과 같은 결론이다.
재판부는 황유미씨와 이숙영씨가 백혈병 원인 물질로 알려진 벤젠과 전리방사선에 노출됐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세척 작업에 전달된 웨이퍼(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얇은 원판) 중에는 벤젠이 포함된 감광제가 제거되지 않은 웨이퍼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수시로 다른 베이(작업장)까지 왕복하는 과정에서 전리방사선에 노출되었을 개연성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심과 달리 가스 누출을 알리는 검지기가 작동된 점에 비춰 고농도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고, 3교대 근무제가 불러온 과로나 스트레스도 백혈병 발병과 연관성이 있다고 봤다. 반면 1심과 달리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가 일반국민보다 백혈병 등으로 인한 사망 비율이 더 높다’는 2008년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 황민웅씨 등 3명에 대해서도 “유해물질에 일부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새롭게 인정하면서도 “직접 취급한 화학물질과 백혈병 발병의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반올림은 판결 뒤 성명서를 내어 “삼성반도체 공장에서만 백혈병 등 중증 림프조혈계 질환이 발병한 사람이 70여명에 이르는 만큼, 이번 판결로 다른 피해자들도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반올림은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3명과 관련해 “재판부가 수백종의 유해 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반도체 공정의 특수성 및 피해를 입증하기 곤란한 상황·경위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산재 입증 책임을 노동자 쪽에 둔 법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반올림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삼성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전망이다. 이종란 노무사는 “노동자들이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됐음이 재확인됐다”며 “삼성은 공장 작업환경과 백혈병의 업무 연관성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 공개 요구도 강화할 계획이다. 피해자 보상 범위를 둘러싼 양쪽의 이견은 평행선을 달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협상에 참여한 8명 우선 보상을, 반올림은 산재신청으로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 전부에 대한 보상을 주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회사는 이미 아픔을 겪는 가족에 대한 사과, 보상, 예방 노력을 약속한 만큼 협상을 통해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민경 이정애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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