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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 농성장에서 펼침막을 편 채 시위 중인 허상원씨.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 제공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 농성장에서 펼침막을 편 채 시위 중인 허상원씨.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 제공

경북 구미에서 밤마다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는 허상원(54)씨의 삶은 9년 전 받은 한 통의 문자메시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근로계약을 종료한다는 회사의 통첩이었다. 허씨가 일하던 ‘지티에스’는 원청인 일본계 기업 ‘아사히글라스’(현재 에이지씨화인테크노한국)의 사내하청업체로, 원청업체와 도급 계약이 갑자기 끝나 지티에스도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사히글라스는 텔레비전 등 디스플레이 유리를 만들어 엘지(LG)디스플레이 등 대기업에 납품했다. 허씨를 포함해 하청노동자 178명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매일 출퇴근하던 아사히글라스 공장에서 문자메시지를 받은 뒤 바로 공장 출입을 금지당하고 일자리를 잃었다.

2015년 6월30일. 허씨가 2012년 여름 입사해 아사히글라스 공장에서 납품 규격에 맞춰 기계로 유리를 자르고 씻고 쌓는 작업을 3년째 하던 때였다. 느닷없는 해고 통보 한달 전 허씨와 동료들은 노조(현 전국금속노동조합 아사히글라스지회)를 결성했다. 공장 안 차별에서 벗어나고 무너진 노동인권을 되찾고 싶은 욕구가 컸다. 당시 원청 정규직은 마음껏 쓸 수 있는 유리 작업용 장갑을 하청 비정규직엔 한달에 두 켤레만 지급했다. 정규직이 쓰다 버린 장갑을 빨아 쓰기도 했다. 정규직과는 달리 작업 중 실수를 한 하청노동자는 징벌의 의미로 한달 동안 붉은 조끼를 입고 작업을 해야 했다. 이런 차별을 만들고, 하청노동자들에게 업무를 지시한 것은 원청이었다. 허씨는 10일 한겨레에 “샘플 작업 땐 아사히글라스 직원이 와서 우리한테 직접 작업지시를 하고 유리 원판 이물질 제거 작업은 함께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해고 노동자들의 지난한 싸움이 시작됐다. 자신들의 노동을 사실상 지휘·감독한 아사히글라스와 지티에스의 해고가 부당해고이고, 노조 활동에 지배·개입하려는 목적의 부당노동행위임을 인정해달라는 구제신청에 중앙노동위원회는 “아사히글라스는 지티에스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을 행사해 노조의 정당한 노조활동이 위축 또는 침해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며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어진 행정소송 1심과 2심은 이를 뒤집어 회사 쪽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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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글라스가 사실상 하청업체인 지티에스 노동자들을 지휘·감독했으므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위반한 ‘불법파견’에 해당해, 지티에스 노동자들이 아사히글라스 노동자임을 인정해달라는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은 대구지법 김천지원과 대구고법이 잇달아 해고자들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지티에스 법인과 대표, 아사히글라스 법인은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라노 타케시 전 아사히글라스 대표는 1심에서 받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에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엇갈린 2심 판결 속에 대법원은 11일 오전 11시에 9년을 기다린 해고자 22명 관련 행정·민사·형사 세 사건에 대한 상고심 선고를 한다. 허씨는 “싸움이 이렇게까지 오래갈 줄은 몰랐다”며 “대법원 판결로 우리의 싸움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