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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노동

내 야근의 가치는 태평양에 잉크 한방울?…삼성맨 분노한 사연

등록 :2021-06-27 08:41수정 :2021-06-27 13:33

[뉴스AS]
삼성전자, 퇴직자 퇴직금 소송에서
“성과급은 근로의 양과 질과 무관
경기·경영성과 등 외부요인 좌우”

직원들 언론통해 회사 소송논리 접해
게시판·블라인드 등에서 ‘부글부글’
<한겨레> 자료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회사가 큰 이익을 내어 성과급을 주기까지 직원이 흘린 땀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만약 회사가 ‘직원이 얼마나 많이 일했고, 좋은 성과를 냈는지는 별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면 직원들은 어떤 표정이 될까.

이런 질문에 답이 될 만한 상황이 최근 삼성전자에서 벌어졌다. 프린터 사업부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난 퇴직자 957명이 지난 2019년 퇴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는데, 회사 쪽이 재판에서 어떤 주장을 했는지가 삼성전자 재직자들에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재판의 쟁점은 퇴직금 산정의 토대가 되는 평균임금에 이른바 성과인센티브(PS)와 목표인센티브(PI)가 포함되는지를 두고 다투는 것이었다.

27일 삼성전자 법률대리인이 재판부에 제출한 준비서면을 보면, 회사 쪽은 “인센티브는 원고(퇴직자)들이 제공한 근로의 양이나 질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했다. 외려 경기 변동, 산업·통상정책, 경쟁사 실적, 업계 동향, 경영자 판단 등 외부요인에 의해 좌우되기에, 인센티브는 노동의 대가인 임금으로 보아선 안 된다고 했다.

원래 삼성전자는 6개월마다 각 사업부의 재무성과와 ‘시이오(CEO)미션’이라 불리는 사업부별 전략 과제를 평가해서 A~D 등급으로 나눈 뒤 기본급의 0~100%를 직원들에게 목표인센티브로 지급한다. 또 전년도에 각 사업부가 창출한 경제적 부가가치(세후영업 이익에서 자본비용을 뺀 금액·EVA)의 20%도 이듬해 초에 성과인센티브로 지급한다.

회사 쪽은 준비서면에서 “원고들이(퇴직자들이) 아무리 평균 수준보다 많은 근로를 제공하고 높은 성과를 냈다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목표인센티브와 성과인센티브가 지급되었을 것은 아니고, 반대로 성과가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외부 변수 또는 결과가 충족된다면 원고들에게 목표인센티브와 성과인센티브는 지급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인센티브는) 직원들이 통제할 수 없고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도 없는 경영성과 등 ‘외부의 변수와 결과’에 따라 지급 여부와 지급액이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재판장 이기선)는 지난 17일 “인센티브는 원고가 제공한 근로의 양과 질에 관련이 있다”면서, 퇴직자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직원들 “야근한 게 허탈”…노조원, 대표이사에 항의 메일

삼성전자의 소송논리를 언론을 통해 접한 직원들은 회사 내부 게시판에 “이제까지 야근한 게 허탈하다”, “회사가 직원을 뭐로 보는 거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한 조합원은 김기남·고동진·김현석 삼성전자 대표이사에게 공식적으로 해명을 요구하는 전자우편을 보내기도 했다. 삼성전자 내 또다른 노조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회사의 성과 달성에 직원들의 기여분이 거의 없다는 의미로 여겨져 직원들이 회사 게시판 등에 허탈감과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앱에서도 날 선 불만들이 오갔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정말 기운 빠지게 하는 회사”라며 “내가 일하든 말든 우리 PS(성과인센티브)는 정해져 있고 경제적 부가가치를 발생시키지 못하니까 이제부터 그냥 눕자”고 언급했다. 또다른 직원도 “우리 회사가 잘 되는 건 다 좋은 환경 덕이라고 법원 속기록에 써 있을 걸 생각하니 웃기다”라고 말했다.

사실 삼성전자의 이런 주장은 다른 퇴직금 소송에서 법원이 회사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릴 때 제시한 논리와 맞닿아 있다. 지난 2019년 또다른 소송에서 수원지방법원은 “사업부문과 사업부 평가 결과는 개별 근로자의 근로의 양이나 질보다는 세계·국내 경제 상황과 경영진의 경영판단 등 개별 근로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며, 퇴직금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 17일 재판에서 서울중앙지법이 “각각의 인센티브는 근로자들이 집단으로 제공한 협업 근로가 피고(삼성전자)의 경영성과에 기여한 가치를 평가해 근로자들에게 그 몫을 지급하는 것이므로 근로의 양이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시한 것과는 엇갈리는 판결이다.

한편, 삼성전자 경영진에 항의성 전자우편을 보냈던 노조 조합원은 회사 쪽 답변을 받아서 사내 게시판에 내용을 공개했다. 이 답변에서 삼성은 “(인센티브가) 외부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는 건 사실이나 전적으로 좌우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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