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1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1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에 사는 박영희(51)씨는 22일 갑작스러운 복통과 하혈 증상을 보인 어머니를 모시고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암 환자만 진료를 볼 수 있다”는 답에 인근 동신병원(약 200병상) 응급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박씨는 “전날 간 동네 병원에서 어머니 난소에 혹이 있고 배에 무엇인가 가득 차 있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 세브란스에 갔는데 진료를 보지 못했다”며 “평소엔 받아주는 (심각한) 증상이지만 지금은 의사 1명이 20~30명을 혼자 보고 있어 여건이 안 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동신병원 응급실에 발을 디뎠지만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만 가능하다고 했다. 박씨는 “종양이 발견돼도 (이를 제거하는 등) 필요한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2천명 확대 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무더기로 병원을 이탈하면서, 대형병원 응급실 진료 차질이 이어지고 있다.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보지 못한 환자들은 인근 종합병원(100병상 이상, 7개 또는 9개 이상 과목 진료) 등으로 향하고 있는데, 그동안 정부가 대형병원과 동네 병원 사이 허리급 종합병원이나 지방의료원 강화를 소홀히 한 탓에 의-정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환자 피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운영하는 응급의료포털을 22일 보면(오후 3시 기준), 전국 응급의료기관 409곳 중 114곳이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안과나 소아청소년과 일부 질환 등에 대해선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알림을 띄웠다. 이런 알림은 환자 이송을 맡은 119구급대 등에 전달된다. 응급실 진료 차질이 빚어지는 곳은 주로 대형병원인데, 의사 인력 중 전공의 비중이 높은 곳일수록 집단사직 여파가 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공의 사직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안과 응급수술, 응급 내시경, 영유아 장폐색 등 10개 질환에 대해 응급실 진료가 중단됐다. 경희대병원 역시 성형외과·소아청소년과·비뇨의학과 등 3개 진료과목 응급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돼 있다. 응급 환자를 볼 수 없는 사유는 대다수 ‘인력 부족’이다. 건국대병원은 “소아과 전공의 부재로 일부 중증 소아환자 수용이 곤란하다”며 “중증 호흡부전 등 환자 이송 땐 병원에 먼저 문의해달라”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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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정부 대형병원 의료 인력이 부족해질 경우 중증·응급 수술만 집중하도록 하고, 위급하지 않은 환자는 주변 병원으로 분산시킨다는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대형병원의 진료 차질이 지속될 경우 이런 대책만으론 의료 체계를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공의를 대신해 전임의(펠로)·교수 등이 대형병원 응급실 당직을 돌아가며 서고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피로가 쌓여 진료 차질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데다 종합병원·지방의료원 등에서는 대형병원이 보던 중증·응급 환자를 진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은 “대형병원으로 향하던 환자를 분산시키려면 종합병원이나 지방의료원이 암 같은 중증질환이나 외상을 제외한 분야에 기본적인 수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이들 병원 치료 역량은 갈수록 줄고 대형병원에만 더 많은 환자가 몰리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