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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료·건강

항암보다 아찔했던 ‘한 방’…비로소 내가 가진 것이 보였다

등록 :2021-09-25 10:43수정 :2021-10-06 11:32

[한겨레S] 양선아의 암&앎
수술방식이 결정되다

암과 항암치료는 빨리 인정했지만
한동안 가슴절제 공포에 사로잡혀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삶은 예측불가능하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나는 내가 암에 걸리고, 항암을 하고, 가슴 한쪽을 잘라낼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모든 일은 천둥 치듯 별안간 일어났고, 나는 내 인생에 갑자기 내린 이 소낙비에 내 방식대로 대처해야 했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편인 나는 비교적 빨리 암에 걸린 일을 수용했고, 항암 치료라는 난관도 무사히 통과했다. 그러나 8번의 항암 끝에 왼쪽 가슴을 전절제해야 한다는 사실, 그 느닷없는 삶의 ‘펀치’를 맞고 나는 한동안 공포에 질려 있었다. 공포나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감각을 마비시켜 비합리적인 사고를 확대시킨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어 ‘지금 삶’마저 엉망으로 만든다.

전절제 결정 때문에 한편으로는 슬픈 마음 한편으로는 원망하는 마음을 안고, 어느 일요일 교회를 갔다. 그날의 설교 제목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범사 감사는 감사의 일상화’였다. 목사님은 “무엇이든 당연하게 생각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에게는 자꾸 감사할 일이 생기고 행복의 선순환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원망하는 마음이 컸던 나를 돌아보게 됐지만, 무작정 ‘감사하다’라는 마음이 발현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대장암을 극복한 권사님을 만나 함께 길을 걷게 됐다. 자연스럽게 ‘감사’라는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민지 엄마, 민지 엄마는 그래도 얼마나 행복해. 주사 맞으러 갈 때마다 친정엄마나 남편이 함께했잖아. 진짜 그것도 복이다 복. 나는 그때 얼마나 서러웠는지 몰라. 수술 잘 받고 회복 잘하면 될 거야. 수술할 수 있는 것도 얼마나 복인지 몰라. 5년 전에 내가 요양병원 있을 때 요양병원에서 함께 있었던 언니가 있어. 그런데 그 언니는 지금도 항암 중이야. 다른 곳에 전이가 돼 수술이 불가능한 거지. 그러니 수술할 수 있는 것도 감사, 항암할 수 있는 것도 감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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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희로애락을 느낀 7개월

권사님은 암 투병하면서 8번 항암 주사 맞으러 갈 때 모두 혼자 가셨다고 했다. 권사님의 큰아들은 외국에 있었고, 작은아들은 지방에서 일하면서 생계 꾸리느라 바빴다. 남편은 맞벌이 부부였던 큰 며느리가 일터에 나간 동안 손녀들을 돌보는 역할을 담당했다. 주변에 아무도 병원에 가줄 사람이 없어 혼자 항암하러 다녔다고 했다. 요양병원에 있다가 혼자서 주사를 맞고 다시 돌아가면서 같은 방 쓰는 분들에게 “내 밥 좀 받아줘” 부탁해서 항암 뒤 저녁밥을 혼자 먹었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왔다며 권사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 서러움이 느껴지며 나도 눈물이 나올 뻔했다. 권사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비로소 내가 가진 것들이 보였다. 컵에 물이 반 컵 채워져 있을 때, 그것을 반밖에 안 남았다고 볼지, 반이나 남았다고 볼지는 결국 내가 결정한다. 전절제에 초점을 맞출지, 수술할 수 있다에 초점을 맞출지는 내 선택이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삶을 어떻게 살지 선택하고 있었다. 그런 인식이 생기자 자연스럽게 나는 내 인생의 컵에 얼마나 많은 물이 담겨 있는지 살펴보게 됐다. 힘들고 두려운 항암 주사 맞으러 갈 때마다 함께 해주고 부작용으로 힘들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응원해준 가족, 친구, 동료, 지인들, 비록 전절제지만 수술 할 수 있다는 사실, 대지 위를 걸을 수 있는 고마운 두 발과 떠오르는 태양과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두 눈, 그리고 여전히 남은 내 한쪽 가슴까지….

관점을 바꾸니 감사한 일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6월22일은 마지막 8차 항암하는 날이었다. 5시간 반에 걸쳐 주사를 맞고 항암낮병동 앞에서 엄마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쨌든 막항(마지막 항암)이네, 와~~~ 너무 좋아~~~ 안녕! 낮병동! 다시는 만나지 말자. 그동안 우리 엄마가 제일 고생 많았어요. 엄마 고마워요!”

“그래~~ 끝이다~~~ 엄마가 뭐가 고생해. 네가 제일 고생했지~. 수술하고 얼른 회복해라~ 그리고 다시는 아프지 마~”

도세탁셀 마지막 주사를 맞을 때 주사 바늘을 하나도 아프지 않게 꽂아주는 간호사님께 “감사해요. 정말. 8차 항암하면서 한 번도 주사 바늘 아프지 않게 꽂아주셔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5살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간호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항암이시네요. 꼭 완치하세요. 그리고 환자분 혈관이 도와준 것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간호사의 따뜻한 말과 친절한 미소가 향긋하게 느껴졌고, 독한 항암제를 잘 견뎌준 내 혈관에게도 고마웠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7개월이라는 시간이 7년처럼 느껴졌고, 짧은 시간 안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진하게 맛본 느낌이었다. 항암주사 한 번씩 맞을 때마다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으로 지나왔는데, 끝이라고 하니 얼마나 시원하던지! 어쨌든 8차 항암을 잘 끝낼 수 있어 감사한 날이었다.

남편은 항암 종료한 날 행운목을 사들고 들어왔다. 물만 주면 잘 키울 수 있고 미세먼지 등도 흡수한다고 했다. ‘양선아 항암종료 기념 행운목’이라는 작은 팻말을 꽂은 행운목을 손에 드니 또 감사한 마음이 샘솟았다. 그때 선물 받은 행운목은 일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며, 새순도 여러 개 돋아 풍성하다. 행운목을 볼 때마다 그때 그 마음이 떠오르며 미소가 지어진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전절제 결정이 나니 이제 복원 방법을 골라야 했다. 아예 복원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양쪽 가슴의 균형이 맞지 않아 척추가 틀어지거나 어깨가 쳐지는 등의 일을 예방하고 싶었다. 또 움푹 패인 한쪽 가슴으로 인한 콤플렉스도 갖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인조 유방을 착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매번 인조 유방을 챙기며 사는 일도 귀찮고 힘들 것 같았다.

복원 방법에는 보형물(실리콘 인공 삽입물) 복원과 복부 복원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보형물 복원은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가슴 모양의 인공 삽입물을 넣어 복원하는 것이고, 복부 복원은 복부에서 자신의 피부와 지방, 근육을 한 덩어리로 옮겨 유방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유방암 관련 책들을 보면, 유방의 크기가 적당하고 많이 처지지 않은 경우나 복부 조직이 모자라거나 유방이 작은 경우에 보형물 복원이 적당하다고 설명한다. 수술 시간도 2~3시간으로 짧아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 다만, 미국 엘레간사가 만든 거친 표면 보형물이 희귀암을 발생시킨 사건 등에서 보듯 보형물의 안전성에 대한 잠재적인 우려가 있을 수 있고, 보형물 삽입 뒤 ‘구형구축’이나 ‘리플링 현상’이라는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도 있었다. 구형구축은 체내에 삽입된 보형물을 피막이 감싸면서 피막이 단단하게 굳어 보형물의 변형이나 통증을 유발하는 것을 말하고, ‘리플링 현상’이란 몸을 앞으로 숙였을 때 보형물의 접힌 부분이 물결처럼 보이고 만져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래도 내게 남은 것 새삼 깨달아
전절제와 복원, 수술 단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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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여정 향한 주사위가 던져졌다

복부 복원은 자신의 복부 조직을 이용하기 때문에 보형물 복원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고 만졌을 때의 느낌도 좋지만 아랫배에 일자로 큰 흉터가 남을 뿐만 아니라 수술 시간이 7~8시간으로 큰 수술이었다. 미세 현미경 수술로 혈관을 이어주는데 간혹 피부가 괴사되어 재수술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당시 나는 아무리 책을 읽고 설명을 들어도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 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이미 복원 수술을 한 지인들과 항상 조언을 구하던 의학전문기자 선배의 의견까지 듣고 보형물 복원을 결심하게 됐다.

수술 후 입원한 병실에서 복부 복원한 환우들을 만났는데, 그 수술을 감당한 분들을 존경하게 됐다. 수술 시간만 7~8시간일 뿐만 아니라, 수술 후에 브이자 형태로 몸을 고정한 침대에서 1~2일 동안 금식하고 꼼짝도 못하는 그들을 보며 ‘인간 승리’라는 생각을 했다. 수술 후 고작 6시간 물 마시지 못하는 것도 힘든 나 같은 사람에겐 보형물 복원이 적합하다. 마지막 항암, 전절제와 보형물 복원이라는 결정까지 마치고 이제 수술할 차례가 돌아왔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다음 여정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

사회정책부 기자

2020년 연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완치 판정을 받은 ‘암 유병자’가 2018년 기준 2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다수가 자신 또는 가족이 암 환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2019년 말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한겨레> 사회정책팀 양선아 기자(anmadang96@kakao.com)의 체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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