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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구원…‘저상버스 쏘댕기기’ 하고픈 인권 활동가입니다

등록 :2021-04-12 19:53수정 :2021-04-13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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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장애인 인권 활동가 이구원씨

인권단체 활동가 이구원씨는 팔다리 대신 입으로 자판을 하나 하나 눌러 ‘장애인 인권 교안’을 쓰고 있다. 오윤주 기자
인권단체 활동가 이구원씨는 팔다리 대신 입으로 자판을 하나 하나 눌러 ‘장애인 인권 교안’을 쓰고 있다. 오윤주 기자

“내 목소리가 세상에서 작은 울림이 될 수 있으면 해요. 장애와 인권 등 내가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세상을 위해, 그리고 사람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팔다리 없는 장애로 태어나 선교사가 된 이구원(31)씨의 바람이다. 초등학생 무렵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씨는 <오체불만족>을 쓴 일본의 오토다케 히로타다와 비교되면서 ‘한국의 오토다케’로 불렸다. 그는 늘 자신을 따라다니는 ‘오토다케’가 마뜩잖다. 그는 “신체조건 때문에 어렸을 때 방송 등 언론에서 ‘희망의 아이콘’ 정도로 비쳐졌는데 그땐 너무 어려서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좀 아닌 것 같다. 방송에선 자극적으로 비교하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다. 장애를 대하는 인식이 조금 달라졌으면 한다”고 했다.

그뒤 대중의 관심에서 조금 멀어져 있던 그가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지난 8일 충북 청주시 용암로 인권연대 숨 사무실에서 이씨를 만났다. 붉은 셔츠를 입은 그는 하얀 사무실에서 환하게 맞았다. 웃으면 눈이 사라지는 아이 때의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선천성 지체장애로 선교원에서 성장
초등시절 ‘한국의 오토다케’ 불리기도
가톨릭신학대 나와 내내 선교사 활동
최근 인권연대 숨 ‘삼고초려’ 특별채용

항공기내 이동·저상버스 등 현장조사
“보고서 펴내 조금씩이라도 개선 기대”

인권연대 숨의 활동가로 특별채용된 이구원씨는 주 4일 출근해 ‘일꾼’으로 활동중이다. 오윤주 기자
인권연대 숨의 활동가로 특별채용된 이구원씨는 주 4일 출근해 ‘일꾼’으로 활동중이다. 오윤주 기자

인권연대 ‘숨’은 2012년 3월 창립한 인권 시민단체로, 찾아가는 인권 교육·인권 강독회·평화 기행 등을 통해 인권 공동체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창립 9돌을 맞은 숨은 최근 이씨를 활동가로 특별채용했다. 이은규 숨 대표일꾼은 “숨 소식지에 틈틈이 기고한 글에 공감해 삼고초려 끝에 활동가로 모셨다. 장애와 인권에 관한 그의 경험과 지혜는 세상에 큰 울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이구원 일꾼’으로 불린다. 그는 노트북·휴대전화 등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장애에 관한 사회적 인식, 사회 곳곳에 남은 불편·부당 등을 바로 잡는 일을 하려고 활동가의 삶을 택했어요. 장애인 이동권·접근권·자립·인권에 관심이 많아요. 잘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인권단체 활동가로 인생 2막을 연 그는 요즘 눈부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일 인권연대 숨에 출근해 장애 인권 관련 교안을 쓰고 있다. 그는 책·인터넷 등 뒤져 정보를 탐색한 뒤 입에 문 막대를 이용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다. 교안이 완성되면 인권 교육도 할 참이다. “독수리 타법이라 좀 느리지만 책도 쓰고, 글도 쓰고 있어요. 전엔 1분에 100타 정도 쳤는데 지금은 모르겠네요. 머지 않아 장애 인권 관련 보고서를 만들어 여럿과 공유하고 싶어요.”

그는 또 장애인 교통 불편 개선을 위한 현장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최근 제주 4·3 사건 현장 탐사를 겸해 항공기 안 장애인 이동·접근 불편 등을 살폈다. 연중 기획으로 청주시의 저상버스 장애인 불편 등을 현장 체험하는 ‘저상버스 쏘댕기기’도 준비하고 있다. “지금껏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뿐 아니라 현장에 뛰어들어 장애인·노약자 등이 겪는 불편을 세상에 알리고, 개선하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하루 아침에 나아지지 않겠지만 조금씩, 천천히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이구원(왼쪽)씨는 1990년 백일되기 전에 청주에서 미혼모의 집인 자모원을 세워 운영하던 ‘황석두 루카 외방선교회’의 김동일(오른쪽) 신부에게 입양됐다. 루카선교원 제공
이구원(왼쪽)씨는 1990년 백일되기 전에 청주에서 미혼모의 집인 자모원을 세워 운영하던 ‘황석두 루카 외방선교회’의 김동일(오른쪽) 신부에게 입양됐다. 루카선교원 제공

그는 선교사의 길을 가다 활동가로 방향을 틀었다. 1990년 태어난 그는 곧바로 서울 성가정입양원에 맡겨졌다가 100일도 채 안돼 루카 선교원 식구가 됐다. 장애아 특수학교 청주혜화학교 등을 거쳐 대전가톨릭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이후 선교사로 활동했다. “제가 선택했다기보다 운명적으로 신학을 공부했고, 선교사로 지냈어요. 내 몸이 달랐으니 다른 삶은 꿈꾸지 못했던 시기였죠.”

지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을 때 그는 음성꽃동네에서 교황을 맞았고, 세계가 주목했다. “그때 한국에 와 주셔서 고맙다고 했고, 교황님도 내게 힘이 되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근엄한 교황님이라기보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이 푸근한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나도 그렇게 이웃과 편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그는 선교사로 살면서도 2016년부터 자립을 꿈꿨다. 인터넷 강의 학점 은행을 통해 사회복지학을 공부했고, 충북고용인권네트워크 등에서 일하기도 했다. “평소 사회 참여·역사·심리학 등에도 관심이 많았고, 다른 삶을 살아보려는 노력도 꾸준히 했던 것 같아요. 신체적 한계가 있어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람들과 연대·소통하면서 살고 싶어요.”

세상은 그와 거리를 뒀지만 그는 언제나 세상과 닿아 있었다. 그는 지난 2018년 세월호 사건의 아픔 등을 이야기한 시집 <대화>(대한출판)를 내놓기도 했다. 시집에는 자신의 삶·신앙·사회·자연 등을 읊은 시 67편이 담겨있다. 세월호 사건을 담은 시 ‘그후 3년’에선 “탐욕과 아집,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검은 의혹들이 수백의 영혼들을 하늘로 떠나보내게 한 지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는 아프다. 그때는 3주기였는데 지금은 7주기다. 하지만 진상규명, 유족 문제 등은 크게 달라지지도, 나아지지도 않은듯해 씁쓸하다. 작은 내 힘이라도 보태 세월호의 아픔을 치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활동가의 삶을 시작한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길이 내 길인지 알 수 없지만 요즘 참 재미있고, 보람있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어요. 나로 인해 세상이 달라질 수 있게 나도 꾸준히 좋은 모습으로 달라져야죠.”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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