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위원장 반기문)는 지난 23일 정부에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중장기 정책을 제안했다. 석탄 발전과 휘발유·경유차량 퇴출 시점 등 미세먼지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주요 정책이 포함됐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여러 언론은 ‘2035년부터 내연차 국내 판매 중단 제안’ 등을 제목으로 정책 발표 소식을 전했다.
같은 정책을 두고 일부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다른 내용을 주요하게 전했다. <조선일보>(‘대통령 직속 기후회의 “탈원전 고정불변이면 탄소 중립 어렵다”), <한국경제>(대통령 자문기구 “원전정책 고정불변으론 2050년 탄소중립 어렵다”), <서울경제>(대통령 직속위 “탈탄소, 원전도 대안”)가 대표적이다. 정부 내부의 ‘탈원전 어깃장’을 비중있게 다룬 것이다.
정부 추진 정책의 적절성을 검토하고 감시하는 것은 언론의 주요 기능이다. 같은 정책을 두고도 언론마다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조선일보> <한국경제> <서울경제>는 정부와 환경단체의 탈원전 기조에 시종일관 부정적 태도를 보여왔다. 그런데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이들 언론의 보도가 나온 24일 오전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자료를 냈다.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정책 제안 발표 전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석탄 발전 퇴출 부분에 원자력이 언급돼있다.
정책 제안 발표 뒤 이뤄진 기자간담회에서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하되,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보완적으로 활용’한다는 제안을 두고 “(모든 원전 수명이 끝나는) 2079년 이후에도 원전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냐”는 취재진 질문이 나왔다. 안병옥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이 답변을 시작했다.
“(석탄 발전의 빈 자리를) 천연가스, 원자력, 재생에너지 중에서 대체할 수밖에 없는데 시기별로 각 에너지원의 발전단가, 사회적 수용성 등 여러가지를 검토해야 한다.”
<한겨레>가 당시 발언 내용 전체를 확인한 결과, 안 운영위원장은 이 발언에 이어 <조선일보> 등이 제목으로 뽑은 발언을 했다.
“원전 문제를, 지금 정부 정책이 있습니다만, 고정불변의 것으로 놓고 2050년 탄소 중립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발언을 두고 <조선일보>는 “대통령 직속 기구가 정부의 기존 ‘탈원전 정책’과는 다른 시각을 보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원전 활용 필요성을 제안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기사에 썼다. <한국경제>는 아예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가 사실상 원전 정책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기사를 썼다.
이들은 안 운영위원장이 “정책이 고정불변이면 탄소 중립은 어렵다”는 말 바로 뒤에 한 다음의 발언은 기사에 줄여서 담거나 쓰지 않았다.
“원전이 이때도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원전도 대안 중 하나로 검토할 수 있는 것인데, 다만 우리가 석탄 발전을 대체하는 것은 곧 원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린수소, 재생에너지, 석탄발전소에 장착할 수 있는 탄소·포집 저장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
<조선일보> 등은 통으로 이뤄진 전체 발언 중에서 ‘입맛’에 맞는 앞부분만 잘라서 크게 쓰고 나머지 발언은 축소하거나 아예 쓰지 않는 ‘고전적 방식’을 사용한 셈이다.
안 운영위원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유지될 경우에도 2038년에는 14기의 원전이 가동중이다. 이를 전제로 원전도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원전 정책이 고정불변의 것이라면 2050년 탄소 중립은 어렵다’고 말하긴 했지만 전체 맥락에서는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고 했다. 다른 언론사가 보도한 당시 질의응답에는 이런 맥락이 잘 드러나 있다.
2019년 기준 한국의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은 석탄 40%, 원자력 25%, 액화천연가스 25%, 재생에너지 6.5% 정도다. 석탄 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릴 때 찬반 갈등이 첨예한 원전은 어떻게 할 것인지 늘 질문하게 된다.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은 원자력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진보언론은 원전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며 대립각을 세워왔다.
보수언론과 경제신문 등이 원자력 발전의 긍정적 면을 주로 보도하는 데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다는 비판이 여러 차례 나왔다. 2017년 공개된 한국수력원자력 광고비 집행 내역(1~7월)을 보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및 그 계열사에 가장 많은 광고비가 집행됐다.
다만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원전 반대 목소리를 내는 시민사회뿐 아니라 산업계 목소리도 함께 수렴해 대안을 고민해 왔다는 점에서, 안 운영위원장 발언이 탈원전 정책에 부정적인 언론에 빌미를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영희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공동대표는 “원전 수명을 전제로 한 발언이라지만 원전이 미래 전력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