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지구 기온이 올라 종국에 찾아올 기후 파국은, 이제 설명이 어렵지 않게 됐다. 이미 우리 모두가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지독했던 2018년의 폭염과 제주도를 찾은 예멘 난민 논란, 지난해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7개, 남한 면적보다 더 넓은 땅을 태운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산불, 제대로 된 눈 구경 한번 하지 못하고 지나간 사상 가장 따뜻했던 겨울 그리고 급기야 코로나19의 팬데믹까지. 기후 파국은 이런 이례적 상황이 더욱 압축적으로, 몇 배나 더 강하게 우리의 일상을 침범해오는 것 그 이상이다. 식량 공급마저 위태롭게 할 생태계 붕괴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전세계 주요 도시들의 수몰, 국제적 혼란과 무정부 상태는 조만간 겪게 될, 닥쳐올 재난이다.
보다 못한 청소년들이 나섰다.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함에도, 필요한 최소한의 조처를 하지 않는 대한민국 정부와 어른들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스웨덴 국적의 청소년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17)처럼, 지난해부터 결석시위 등을 통해 정부의 적극적 기후 대응을 촉구해온 청소년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은 13일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들은 변호사들과 함께 헌법소원 제기 이유와 계획을 밝힌 뒤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청소년 원고 19명은 “우리 정부의 감축 목표로는 지구 기온 상승을 2도 이하, 더 나아가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체결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지킬 수 없다. 헌법에서 보장한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정상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환경권 등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본격적 산업혁명이 이뤄진 지난 150년 동안 지구의 평균기온은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약 1.1도 올랐다.
기후소송은 세계적으로 확산 중이고, 실효성 있는 판결을 얻어냈다. 유럽에선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대법원이 “정부가 예정한 온실가스 배출량 하한선을 올려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네덜란드 환경단체 ‘위르헨다’가 900여명의 시민과 함께 정부의 소홀한 기후변화 대응이 국민의 건강권과 인권을 침해한다며 2013년 제기한 소송의 결과다. 이 하급심의 2015년 판결은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책임을 인정한 세계 첫 판결이었다.
위르헨다에 따르면 벨기에, 콜롬비아, 유럽연합, 뉴질랜드, 스위스, 프랑스 등지에서 비슷한 소송이 국가와 화석연료 기업을 상대로 진행 중이다. 콜롬비아에서는 25살 이하 청소년들이 “아마존 열대우림을 보존할 것을 정부에 명령해달라”고 소송을 내 최종 승소했고, 뉴질랜드에서도 로스쿨 학생들이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스위스에선 농부들이, 유럽연합에선 어린이들이 포함된 열 가족이 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 소송을 제기했다. 벨기에에서는 시민 6만여명이, 프랑스에서는 시민 200만명이 기후소송에 참여해 화제가 됐다.
<한겨레>는 청소년기후행동에서 활동 중인 김도현(17)양과 이병주·윤세종 변호사를 지난 11일 서울 대치동 이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2년 전 여름 폭염을 “차원이 다른 문제”로 느꼈다는 김양은 얼마 전 청소년기후행동과 함께 간 제주도 견학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바다 생물종이 죽어가고 있다”는 해녀의 이야기를 들었고, 집단 고사 중인 한라산의 구상나무 군락을 둘러봤다. 말을 잇지 못하고 우는 친구도 있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어른들보다 기후가 변화한 지구에서 더 오래 머문다. 김양은 “청소년이 느끼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하다”며 “(살아가는 동안) 지금 알고 있는 세계와 사회가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슬프고 두렵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크게 3개의 헌재 결정을 구하는 것이다. 정부가 아무런 기준이나 조건 없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할 수 있게 한 법률(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42조 1항 1호)과, 2016년에 정부가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아무 반성 없이 폐기하고 2030년 목표를 새로 설정한 행위, 그리고 지난해 다시 수정한 2030년 목표(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 제25조 1항)가 모두 헌법 위반이라는 것. 이것들이 왜 문제인 걸까.
우리 사회의 낮은 관심과 달리, 기후변화 위험에 관한 기초 사실은 이미 과학적, 국제적 합의가 이뤄진 지 오래다. 기온 상승이 2도를 넘기면 지구는 인류의 노력과 관계없이 스스로 온난화를 가속화한다. 태양열을 반사하던 극지방의 빙하가 사라지고, 영구동토에 묻혀 있던 메탄이 대기로 방출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기후로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최악의 경우(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8.5시나리오) 그 시점이 2040년 즈음이 될 수도 있다. 막으려면 최대 2도 이하로, 나아가 1.5도 이하로 지구 기온 상승폭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아이피시시)로 대표되는 전세계 기후과학계와, 한국 정부를 포함한 195개국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통해 합의한 바다. 한국 정부는 협정 체결 이듬해인 2016년 이를 비준했지만, 지금까지 협정이 정한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를 지키기 위한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파리협정 비준하고 아무 조처 없는 한국
심지어 지난해 김양이 만난 환경부 공무원은 “지금의 정부 목표대로 가면 1.5도는 고사하고 2도, 3도 오르는 건 뻔하다”고 했다. 아이피시시가 2018년 채택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엔 지금의 국가별 감축 목표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2100년께 약 3도의 지구온난화를 초래한다고 쓰여 있다. 유엔환경계획의 2018년 보고서는 “21세기 말 3.2도 상승이 확실시된다”고 내다봤다. 김양은 “절망적이었다. 정부가 모든 걸 알고, 아이피시시와 파리협정에 다 참여해놓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거다. 공허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파리협정은 (선진국만 감축 의무가 있던 교토의정서 체제와 달리) 모든 나라에 의무를 지우고 있다.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배출량 5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다.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에서 정한 2020년 목표는 5억4300만t(이산화탄소 환산량)이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별도의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전망치에서 30%를 줄이기로 해 나온 수치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해마다 지켜야 할 감축 경로도 설정했다. 하지만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은 첫해인 2010년 6억5740만t을 기록하며 이 경로를 2.3% 초과했고, 2012년 4.5%, 2014년 4.9%, 2016년엔 11.5%로 차이를 벌려갔다. 2017년엔 7억910만t을 배출해 무려 15.4%를 초과했다. 이 기간 중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은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전망치를 오히려 웃돌거나(2010~2013년) 따라갔다.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셈이다.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지키지 못할 2020년 목표를 그냥 폐지하고, 2030년 목표를 이보다 700만t 낮춘 5억3600만t으로 설정했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시행령을 개정했지만 이 목표값은 그대로 뒀다. 청소년기후행동의 변호인들은 헌법소원 심판청구서에서 이를 두고 “국민의 생명과 환경권과 관련한 ‘10년의 시간’을 소멸시켜 버린 것”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목표를 지키려는 노력도 전혀 없었고, 왜 이전의 목표가 달성이 안 됐는지 설명도 없었다. 거의 같은 목표를 10년 뒤로 미뤄놓고는 그래도 되는지 물어보는 절차도 없었다. 또다시 이런 변경이나 폐지가 있어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이런 일을 방지할 방법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지금의 목표는 파리협정이 정한 ‘2도 이하’를 지켜내지 못하는, 턱없이 부실한 목표다. 유엔환경계획이 지난해 낸 보고서를 보면, 각 국가가 보고한 2030년의 자발적 목표 배출량은 모두 합해 560억t이다. 아이피시시 계산으로는, 2도 이하 목표를 달성하려면 2030년의 전세계 배출량이 410억t보다 적어야 한다. 전세계 모든 국가가 각자 목표로 정한 2030년 배출량을 지금보다 27%씩 줄여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의 2030년 목표 배출량은 3억9100만t이 된다. 현재 목표에서 1억4500만t, 배출량(2017년 기준)에선 3억1810만t을 줄여야 한다. 그만큼 지금 한국 정부가 설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도 이하’에 한참이나 못 미친다는 얘기다. 청소년들은 정부가 파리협정을 비준해 국내법적 효력을 갖게 해놓고는, 배출량 목표는 협정에 어긋나게 잡아놓은 이 ‘위법 상황’을 바로잡아달라며 소송을 낸 것이다.
기후변화로 초래되는 기후 재난은 세대 간 불평등 문제도 낳는다. 재난적 수준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남은 온실가스 양을 ‘탄소예산’이라 한다. 이 예산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지금의 어른 세대가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지연하고 더 많은 예산을 써버리면 기후 재난을 막을 사회적 부담은 오롯이 다음 세대에게 넘어간다. 실제 지금의 청소년 세대는 그 조부모 세대와 견줘 6분의 1밖에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못한다. 윤세종 변호사는 “기후위기 문제만큼 세대 간 불평등이 강하게 나타난 이슈가 있었느냐고 묻고 싶다. 청소년들은 지금의 어른들보다 기후 재난으로 인해 더 많은 피해를 받을 것이고, 기후변화 대응의 책임을 방기한 건 어른들인데도 그 결과를 지독하게 감수해야 한다. 원인 행위 주체와 결과 감수 주체 간의 불평등이 초래된다”고 말했다. 청소년기후행동 이름으로 제출된 심판청구서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는 것”을 헌법의 목적으로 다짐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인용했다.
환경단체 등으로 꾸려진 연대기구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만 기후위기라는 실존적 위협에 아무런 책임도 지고 있지 않다. 청소년들의 헌법소원을 적극 지지하고 환영한다.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갈 헌법적 권리는 청소년뿐 아니라 모든 세대와 계층이 보장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