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 거리가 짧은 로컬푸드만 먹기, 전기나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탈것 이용하지 않기,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기, 쓰레기 만들어내지 않기, 전기 사용하지 않기. 미국 뉴욕에 사는 콜린 베번이라는 한 작가의 가족이 여러 해 전 지구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살기 위해 선택한 방법들이다. <노 임팩트 맨>이라는 책과 영화로 국내에도 꽤 알려진 이 가족의 이야기는 그러나 1년으로 기한을 설정하고 진행한 일종의 ‘실험’이었다.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의 작은 아파트에서 한 살 위 남편과 사는 김월금(68) 주부에게는 콜린 베번이 1년간 했던 실험 항목 가운데 일부가 ‘실험’이 아니라 10년 이상 몸에 밴 ‘생활’이다.
비닐봉지 안 쓰고 물 재활용하고…지구 폐 안 끼치는 생활 몸에 배 껍질째 먹을 수 없는 과일 안 사고껍질 있는 야채는 그대로 요리그래도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화분 속 지렁이가 특급 도우미지렁이 못 먹는 육류·생선 멀리해화장실엔 좀 두꺼운 흰 수건 2장볼일을 보고 뒷물 할 때 사용정토회에서 봉사자로 일하며통일·환경운동에 5만원씩 기부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못한 욕구는가난 때문에 제대로 못한 공부 그것도 ‘척’ 하고 싶은 것 같아다음 생에 채우기로지렁이 먹이 줄 게 없어 고민할 때도
11일 오후 아파트에서 만난 김씨는 7년 전 지금 집으로 이사 올 때 산 2ℓ들이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봉투 두 개 가운데 한 개가 아직 남아 있다고 했다. 지난달 김장을 하면서 나온 배추꼭지를 담아 내놓은 한 개가 김씨 집에서 지난 10여년 동안 사용한 전부다. 이런 생활이 어떻게 가능할까?
배출량 ‘제로’에 가까운 김씨의 음식물 쓰레기 없애기는 재료를 구입하고 조리할 때부터 출발한다. 오렌지와 같이 껍질째 먹을 수 없는 과일은 사지 않고, 감자나 고구마와 같이 껍질 있는 야채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요리해 먹는 식이다. 음식물이 남지 않도록 부족한 듯 만들고, 어쩔 수 없이 남게 되는 음식물은 다른 요리에 재활용하는 것도 기본이다.
김씨 집 작은 거실 베란다에는 지렁이들이 담긴 항아리 형태의 화분 6개가 있다. 이 속에 사는 지렁이들은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불가피하게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담당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야채 재배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분변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2002년 한 개로 시작한 지렁이 화분은 한때 10개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10개 화분의 지렁이를 먹여 살릴 만큼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러다 보니 지렁이에게 먹이로 줄 것이 없어 고민할 때도 있었다”며 웃었다.
장볼 땐 비닐 벗기고 담아와
지렁이는 생선과 육류 등 동물성 단백질류는 처리해주지 않는다. 김씨는 이런 지렁이의 식성을 고려해 식단을 짰다. “지렁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과 우리가 먹는 것을 맞췄지요. 하지만 지금은 나이 든 남편을 위해 이따금 생선이나 육류도 사기 때문에 전에 잘 안 나오던 생선뼈나 닭뼈 같은 쓰레기도 조금씩 나오기는 해요.” 일부 음식 쓰레기는 옥상에 있는 화분들에 나눠 묻어 퇴비화해 채소를 키우는 데 쓰기도 하고, 퇴비화도 안 되는 뼈 같은 것들은 잘 말려 모아뒀다 일반 쓰레기로 처리한다. 이런 일반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사용하는 종량제봉투도 1년에 20ℓ짜리 두세 장이 전부다.
비닐을 포함한 포장용기 종류와 종이 등은 재활용품으로 분리 수거돼 가정의 종량제봉투에 담기는 쓰레기는 대부분 휴지 종류인데, 김씨 집에서는 휴지가 나올 일이 거의 없다. 그의 집 화장실에는 화장지 외에 좀 두꺼운 손수건 같은 흰 수건이 두 장 걸려 있다. 화장지는 손님용, 작은 수건 두 장은 김씨와 남편이 볼일을 보고 뒷물을 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남편은 처음에 꺼려했는데, 이젠 뒷물을 해서 깨끗하게 씻지 않으면 오히려 불편하다고 해요. 모든 게 습관 붙이기 나름인 거지요.” 화장지 쓸 일이 없다 보니 김씨 집에는 7년 전 이사 왔을 때 누군가 선물로 사다준 화장지 꾸러미가 아직 남아 있을 정도다.
비닐봉지 사용하지 않기, 종이컵과 같은 일회용품 안 쓰기, 물을 아끼기 위해 버리는 물 재활용하기 등도 김씨가 10년 이상 습관처럼 철저하게 지켜오고 있는 친환경 실천 생활방식들이다. 제일 어려운 것은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일이다.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비닐 포장이 되지 않은 채 팔리는 물건이 더 줄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집에 비닐봉지를 들이지 않으려고 김씨는 장을 볼 때 플라스틱통이나 그물망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며 비닐을 벗겨 달라고 해 넣어 온다.
옷은 손빨래하기 쉬운 것으로
“이렇게 쓰레기를 안 만들고 사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에요. 우리는 식구가 없고, 식성도 조건이 맞아서 하는 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힘들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해보니 하려고 마음만 굳게 먹으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쓰레기 줄이기 외에 에너지 절약과 물 아껴쓰기도 김씨가 특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김씨가 입을 옷을 고를 때는 손빨래하기가 얼마나 쉬운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이유다.
화장실에 놓여있는 작은 세탁기는 헹굼과 탈수에 주로 사용하고 있다. 헹굼 단계에서 나온 물은 여러 개의 대야에 받아 걸레를 빨아 방과 베란다 등을 청소하는 데 사용한다.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이런 생활 방식을 실천하기는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이렇게 하는 데는 시간이 걸려 바쁘게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이 실천하긴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습관만 들이면 할 수 있는 것도 적지 않아요. 라면 하나를 끓이더라도 물을 적당하게 잡아서 버리는 국물이 최대한 적게 나오게 해 수질 오염을 덜어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아파트 경비 일을 하는 김씨의 남편과 정토회에서 봉사자로 일하는 김씨 부부가 고양동의 21평짜리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한 달 생활비는 80만원이다.
많다고 할 수 없는 이 돈으로 통일운동과 환경운동 등에 한 달에 모두 5만원씩의 기부금까지 내면서 크게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이 살아간다.
“사실 난 약간 부족하다는 느낌이 좋아요. 냉장고도 뭔가 꽉 차 있을 때는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워요. 그래서 집도 앞으로 더 작은 임대아파트 같은 데로 갈까 생각 중이에요.”
환경을 생각하며 부족함을 즐기며 사는 삶을 통해 그는 전에 갖지 못했던 행복감을 얻었다. “쓰레기를 만들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모두 인간의 욕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조금씩 욕구를 내려놓으며 살다 보니 부족해도 감사하게 되고 크게 부러운 것이 없어요. 이렇게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면 많이 가지고 쓰며 사는 삶을 부러워하며 스스로도 위축돼 지금처럼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아요.”
내려놓고 비우니 꽉 차는 행복
많은 것을 내려놓았지만 가장 마지막까지 그에게 매달려 있던 욕구는 배움이었다. 경남 김해 한 농가의 9남매 중 여덟번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다.
남편과 같이하던 가구점을 접으면서 일에서 풀려난 그는 만학과 봉사활동을 놓고 고민하다 봉사에 더 전념하는 것을 선택했다.
“배움에 대한 욕구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불편한 부분이 있어 하려는 것도 있지만 많은 지식을 쌓아 좀더 아는 척하고 싶은 이유도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욕구도 다음 생에서 채우기로 하고 내려놓았지요. 저 속의 지렁이처럼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환경을 지켜주는 삶을 살고 싶은 게 내 꿈”이라며 베란다에 놓여 있는 지렁이 화분을 가리키며 웃는 그의 얼굴이 어린 소녀처럼 해맑았다.
고양/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