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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먹이활동 중인 비둘기 떼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먹이활동 중인 비둘기 떼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여기는 광주시의 한 근린공원입니다. 비둘기가 떼죽음을 당했어요.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비둘기 독극물 살해 사건’을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사이보그 비둘기를 만들어 팔 거라고 합니다.” - 제보자 PJ(☞22회에서 이어짐)

코스타 교수의 피전블로그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어요. 대기오염 측정장치를 착용한 비둘기들이 세 차례에 걸쳐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를 날아다니며 실시간으로 오염 정보를 전달했지요. 수많은 미디어와 시민의 주목을 받았죠.

하지만 피전블로그는 일회적인 예술과학 퍼포먼스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비둘기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참여한 비둘기들도 길거리를 날아다니는 개체가 아닌 소수의 비둘기 애호가들이 소유한 경주용 비둘기였죠. 게다가 어렸을 적부터 암을 앓던 코스타 교수는 몇 년 뒤에 저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피전블로그 프로젝트는 잊혔죠.

한땐 서울시청 최고급 맨션서 살던 비둘기

그런데, 비둘기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모여 서울에서 회의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일부 길거리 비둘기들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있었던 것처럼 대기오염 측정장치가 든 배낭을 메고 블로그를 쓰겠다고 나선 거예요.

엉망진창 행성조사반은 비둘기 회의가 열린다는 옛 남산식물원 터로 곧장 달려갔어요. 남산식물원은 과거 ‘비둘기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비둘기와 모이 주는 사람으로 북적였지만, 2006년 남산의 경관을 해치는 ‘부적격 잠식시설’로 분류돼 철거됐죠.

비둘기 수천 마리가 모였어요. 마침, 피전블로그 찬성파로 보이는 하얀 비둘기가 연설 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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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 할머니는 이승만 대통령이 주는 모이를 먹었습니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는 서울시청 옥상의 최고급 맨션에서 살았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이 우리에게 손수 집을 지어준 걸 아십니까? 남산시민공원, 어린이대공원, 서울대공원 등 공원마다 비둘기집이 있었습니다. 우아한 비행으로 이름 높았던 할머니는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취임식 때 비행단으로 차출되어 국회에서 에어쇼를 벌였고요. 우리는 한때 평화의 상징이었어요.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같은 중요한 행사를 기원할 때마다 인간은 우리를 날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전국의 비둘기집은 철거되었고, 우리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음식을 구걸하는 신세입니다. 꾀죄죄하고 더러운 모습만 봐온 요즈음 아이들은 우리를 ‘닭둘기’라고 놀리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우리를 잡아 시내 포장마차에 ‘닭꼬치’로 속여 파는 사냥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얀 비둘기는 날개를 퍼덕거린 뒤 청중을 천천히 둘러본 뒤 다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마치 ‘당신도 닭꼬치로 잡혀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무언의 경고 같았죠. 그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인간이 비둘기를 존중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인간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피전블로그가 바로 그런 기회입니다. 우리가 서울 시내를 날아다니며 대기오염 정보를 전송한다면, 인간은 비둘기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옛날처럼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러자, 반대편에 있는 검은색 비둘기가 말했습니다.

“닭꼬치 이야기는 도시 아이들이 지어낸 풍문일 뿐이오. 잠잠하던 독극물 살포자들이 최근 들어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들이야말로 그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거겠지. 거추장스러운 비둘기들은 다 죽이고, 소수 정예 요원만 남겨 인간의 사이보그로 만들려고 하는 것 말입니다.”

그가 날개를 두어 차례 힘껏 저어 연단에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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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전블로그에 반대합니다. 인간의 계략이에요. 피전블로그에 참여했다간 우리 비둘기 종은 ‘잃을 것은 무거운 배낭밖에 없는 노동자로 전락하고 말 거요. 우리는 지금 행복합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이 도시를 날아다니고 있잖소! 물론 허약한 비둘기는 벌레 사냥이나 음식물 수색에 뒤처질 수 있소.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건 모든 동물에게 적용되는 삶의 법칙입니다. 여기 우리들을 후원하는 동물단체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에서 나왔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봅시다.”

비둘기 한 쌍이 지하철 2호선 강변역 환기구 안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은 모습(왼쪽)과 그 비둘기들을 쫓기 위해 이내 마대 자루로 막아버린 조처(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비둘기 한 쌍이 지하철 2호선 강변역 환기구 안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은 모습(왼쪽)과 그 비둘기들을 쫓기 위해 이내 마대 자루로 막아버린 조처(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수수한 옷차림의 젊은 여성을 주변으로 비둘기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신사숙녀 비둘기 여러분. 불철주야 인간의 핍박 속에서 살아가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우리 단체는 모든 종류의 동물 사용에 반대합니다. 돼지를 길러 고기로 먹는 것, 신약 개발을 위해 마우스에 암세포를 집어넣는 것, 동물원에 동물을 가두는 것,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멧돼지를 사냥하는 것 등 모두입니다. 왜냐하면,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물은 감정이 있고, 공포를 느끼며, 취향을 가졌으며, 미래를 계획하는 ‘삶의 주체’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동물의 내재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도덕적입니다.”

비둘기들이 일제히 ‘구구구’ 하고 환호했습니다. 콘크리트 바닥에 작은 흙먼지가 일었죠. 이번에는 찬성파에서 젊은 남성이 나섰습니다.

비둘기는 야생동물 아냐...도시의 시민

“저도 인간-동물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페타가 주장하는 방향에 동감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런 사회가 가능할까요? 당신은 부모와 친구에게 설득할 자신이 있습니까? 저는 오히려 피전블로그야말로 인간과 비둘기가 맺는 관계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뜻깊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 최고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 박사도 피전블로그에 대해 격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가 뭐라고 했는데요?”

검은 비둘기가 물었습니다.

“먼저 알아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해러웨이 박사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전면적으로 회복되는 것에 대해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동물을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행위가 중단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그래서 그는 ‘부분적인 회복 그리고 함께 잘 지내기를 위한 평범한 가능성에 온 마음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바뀌는 게 있습니까? 하나 마나 한 소리인 거 같은데요?”

“해러웨이 박사는 말합니다. 지금은 없는 코스타 교수가 대기오염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협력을 촉발하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종차별주의자들이나 종차별주의자들은 도시의 흑인 아이들과 길거리 비둘기들 모두 통제하기 어렵고 첨단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더러운 야생의 존재로 비하했습니다. 하지만 흑인 아이나 비둘기는 야생동물이 아닙니다. 두 존재 모두 도시를 살아가는 주체이자 객체 그리고 시민이죠. 해러웨이 박사는 대기오염 측정 임무를 띠고 도시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둘기를 보면서, 아이들이 바뀔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비둘기에 야유하거나 학대하고 어떻게 대하고 존중해야 할지 몰랐던 아이들이 비둘기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옹호하는 아이들로 변할 거라는 거죠.”

해가 저물었습니다. 비둘기들은 둥지로 돌아가지 않고 밤늦게까지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길거리 비둘기와 인간과 함께 사는 경주용 비둘기의 의견이 달랐습니다. 도시의 숲을 힘차게 헤치며 사냥하는 비둘기와 사람이 주는 모이로 끼니를 때우는 공원 비둘기의 입장도 달랐지요. 비둘기에게 종의 운명을 건 결정이었습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