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각 정당이 앞다퉈 중앙당 차원의 ‘기후공약’을 발표하고 ‘기후인재 영입’을 발표했지만, 정작 투표일이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2일까지 기후 의제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거대 양당이 ‘정권 심판’ 대 ‘거야 견제’란 구도로 선거전에 올인하면서 관련 논의가 실종되는 모양새다. 기후위기 대응 공약을 정당 홍보용으로만 반짝 쓰고 마는 ‘그린워싱’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여야 정당들은 선거전 초반 저마다 ‘기후위기 대응 적임 정당’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각 당 공천 결과를 보면, 녹색정의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당에서 ‘기후 후보’라고 할 만한 후보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경우, 지난 2월 ‘기후 미래 택배’ 공약을 발표하고 4명의 ‘기후인재’를 대대적으로 영입했지만,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출신인 김소희 후보 등 2명만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후보로 공천했다. 이 가운데 김 후보는 비례 순번 7번을 받았지만, 정혜림 에스케이(SK)경영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당선권 밖으로 꼽히는 25번에 배치된 상황이다. 김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중심으로 야당의 에너지 정책을 비판하는 논평을 간간이 내고 있을 뿐이다. 30대 초반인 정 후보는 조국혁신당 후보 자녀의 병역 문제 등을 비판하는 등 기후 문제보다는 ‘청년’들의 관심 사안에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은 ‘기후위기 대처와 재생에너지 전환’을 10대 핵심과제 중 하나(여섯번째)로 제시하고, 기후운동단체 플랜1.5 출신인 박지혜 변호사를 경기 의정부갑에 공천했다. 박 후보의 경우, 캠프 이름을 ‘지속가능한 캠프’로 짓고 지역구 내 옛 미군 기지 캠프레드클라우드 터를 ‘미래 에너지 클러스터’로 만들겠단 공약을 내걸었다. 기후후보이긴 해도 정치 신인인 탓에 정작 선거운동 때는 “의정부 지역 현안과 정책에 주로 집중하게 된다”고 했다. 민주당엔 박 후보 말고도 21대 총선 당시 기후후보였던 이소영 후보(경기 의왕·과천), 21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정호 후보(경남 김해) 등이 있지만, 당 차원의 유기적인 연합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을 공론화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당 차원의 선거 슬로건에 아예 ‘기후를 살립니다’란 내용을 포함한 녹색정의당이 그나마 기후위기 대응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는 모양새다. 녹색정의당에선 1호 영입인재인 대기과학자 조천호 후보(비례 8번)를 비롯해, 공공교통 운동을 해온 허승규 후보(비례 2번), 제주 여성농민 김옥임 후보(비례 5번), 21대 국회 기후특위 위원을 지낸 장혜영 후보(서울 마포을) 등 다수가 기후공약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선거 유세 때도 전기자전거나 태양광 패널을 단 전기트럭을 사용하고, 버려지는 수많은 선거공보물을 온라인으로 볼 수 있도록 선거법도 개정하겠다고 적극 나서고 있다. 다만 녹색정의당의 이런 움직임은 심판론 경쟁 속에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허승규 후보는 “국민의힘은 올해 기후대응기금 예산을 삭감해놓고 총선 공약으로는 기후대응기금을 2배로 늘리겠다고 공약했고, 민주당도 가덕도·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옹호하는 등 기후정치를 교란해왔다”며 “한국 정치를 독점한 양당이 기후위기를 후순위로 만들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실제로 사단법인 로컬에너지랩은 지난달 25일 서울 지역구 출마자들 공약을 정리하며, 원내 모든 정당이 기후공약을 제시했지만 정작 지역 공약은 철도 지하화와 재개발·재건축 같은 ‘개발’에 치중돼 있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생태축 복원이나 재자연화,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망 재편 같은 친환경 공약을 내건 이들은 마포와 은평에 출마한 녹색정의당 후보들 정도였고, 거대 양당 후보 중에선 송파, 관악에 출마한 일부가 생태하천 복원을 공약했을 뿐이다. 김상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특별위원장은 “녹색정의당을 제외하면 기존 환경 공약을 기후공약으로 이름만 바꾼 것”이라며 “정치권이 기후공약으로 그린워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로 “한국 사회에선 기후 의제가 (민생·경제 의제만큼) 유권자들이 생각하는 위계에서 아직 주요 이슈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짚으면서도 “미국 퓨리서치센터를 비롯한 각종 대규모 국제조사에서 한국 시민들은 기후위기 심각성 인식, 행동 의향에서 일관되게 매우 높은 순위가 나오는 것 등을 볼 때 적절한 계기가 주어지면 분출할 잠재성이 상당히 축적된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대선에서 젠더 이슈가 그랬던 것처럼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음 대선에서라도 기후위기가 두드러진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로컬에너지랩 등 기후환경단체들이 속한 기후정치바람은 오는 4일 지역구 후보 698명의 기후(혹은 막개발) 공약을 전수조사해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며, 선거 막판까지 기후위기 대응 의제 이슈화에 나선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