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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환경

2015년 시작된 ‘역사 청산’…온실가스를 법정에 세우다

등록 :2022-07-31 15:12수정 :2022-08-01 12:37

[세계는 기후소송 중]
기후소송의 간략한 역사
2015년 네덜란드 1심 승소 이후 1천건 이상 제기
아일랜드, 프랑스 거쳐 독일로 ‘승전보’ 이어져
기업으로 확산…‘페루 농부 vs 독일 RWE’ 주목
미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자신의 미래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켈시 줄리아나(가운데)가 2019년 6월4일 청소년들과 손뼉을 맞추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자신의 미래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켈시 줄리아나(가운데)가 2019년 6월4일 청소년들과 손뼉을 맞추고 있다. AP/연합뉴스

총 2002건. 2020년 이후로는 475건.

영국의 런던정경대 그래덤 기후변화∙환경연구소가 지난 5월 기준으로 세계에서 벌어진 기후소송 건수를 취합한 결과다. 이 가운데 2020년 이후 개시된 소송이 24%에 이른다. 2015년 이후에 제기된 소송의 비율은 절반이 넘는다. 왜 2020년부터 기후소송이 갑자기 폭증했을까? 2019년 네덜란드에서 내려진 ‘역사적 판결’에서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위르헨다 판결’에서 얻은 자신감

기후변화 소송은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다. 선진국이 아닌 나라에서 승소한 사례가 일부 있었으나, 선진국에서 굵직한 소송의 승소는 네덜란드가 처음이었다.

2013년 네덜란드 시민단체인 위르헨다 재단은 886명의 시민과 함께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당시 정부는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14~17%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고 있었다. 위르헨다 재단은 기후위기의 시급성에 견줘 이런 목표는 불충분하다며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5~40%의 감축 정책을 이행하라”고 주장했다. 또한 정부는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는 ‘주의 의무’를 어겼으며, 유럽인권협약 제2조(생명권)와 8조(가족 및 사생활의 권리)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2015년 6월 헤이그지방법원이 첫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네덜란드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최소 25%를 감축하라고 명령했다. 위르헨다 재단의 완전한 승리였다. 1심 판결은 2018년 헤이그 항소법원을 거쳐 2019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대법원은 적극적인 감축을 주문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유럽인권협약 위반을 들었다.

배연재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기후변화 소송의 확산 배경에는 2015년 6월 1심이 선고된 위르헨다 사건에서 정부의 책임이 인정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국제법학회논총’ 2022년 6월) 박시원 강원대 교수(법학)도 “서구 국가에서 최초로 인권침해라는 법리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해 승소한 매우 이례적인 소송”이라고 평가했다.(‘환경법과 정책’ 2019년 9월)

아일랜드, 프랑스 거쳐 독일로 이어진 승전보

아일랜드 법원도 환경단체 ‘환경의 벗’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환경의 벗은 2017년 마련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기후변화법, 헌법, 유럽인권협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부는 ‘정책의 일부분으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맞섰다. 2020년 아일랜드 대법원은 정부의 재량권을 인정한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고,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으므로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프랑스는 ‘1유로 소송’으로 유명하다. 2019년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가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액으로 상징적인 ‘1유로’를 청구했다. 지난해 2월 프랑스 파리행정법원은 환경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피해 배상과 함께 추가 조사를 명령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지난해 4월 연방기후보호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 특히 밑줄 쳐야 할 곳은 우리에게 남겨진 ‘탄소예산’과 이에 따른 ‘미래세대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부분이다. 연방헌법재판소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하는 정부 정책’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결정했다. 이유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미 2030년 목표를 거의 달성한 상태에서 2030년 이후의 감축 계획을 마련하지 않는 것은 다음 세대의 자유를 침해한다.” 정부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탄소예산이라는 개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탄소예산은 앞으로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말한다. 이를테면, 각 나라는 파리협약에서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지구 기온 상승치를 2도 이내로 잡아두자고 약속했는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앞으로 남은 온실가스 배출량은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탄소예산은 세대에 따라 불공평하게 분배된다. 기성 세대는 이미 많은 탄소를 써왔고, 갈수록 적어지는 탄소예산에서 미래 세대의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진행 중인 네 건의 기후소송도 탄소예산이 핵심 쟁점이다.

지난 1월28일 미국 알래스카주 대법원의 크레이그 스토어즈 판사가 주 정부의 화석연료 정책이 청소년들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다며 청소년들이 2019년 낸 소송에서 의견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월28일 미국 알래스카주 대법원의 크레이그 스토어즈 판사가 주 정부의 화석연료 정책이 청소년들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다며 청소년들이 2019년 낸 소송에서 의견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기업 대상 기후소송, 새 지평 열까?

전통적으로 기후변화 소송은 ‘정부’를 타깃으로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온실가스 배출원은 ‘기업’이다. 그래서 기업에 대한 소송은 기후위기를 일으킨 ‘역사를 청산하고’ ‘기후정의를 세우자’는 관점이 배어 있다. 국경도 시효도 없다.

첫 번째 승전보는 역시 네덜란드에서 울렸다. 네덜란드 ‘지구의 벗’ 등이 시민 1만7천명과 함께 2019년 다국적 에너지기업 로열더치셸에게 소송을 냈다. 이 기업은 2019년 매출액 380조원의 어마어마한 회사다. 로열더치셸은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탄소 배출량 20% 감축, 2035년 45% 감축, 2050년에는 제로로 만든다. 이걸로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1심인 헤이그 지방법원은 지구의 벗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5월 법원은 “2019년 대비 2030년에 탄소 45%를 감축하라”면서 “항소심 판결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즉각 이행할 것”을 주문했다.

지난 5월27일 독일의 함 지방법원 조사단이 페루 후아라즈를 방문했다. 독일 에너지 기업 아르베에(RWE)를 상대로 홍수예방비용을 부담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이 지역 농부 사울 루치아노 리우야(가운데)가 후아라즈 시내에서 이날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DPA/연합뉴스
지난 5월27일 독일의 함 지방법원 조사단이 페루 후아라즈를 방문했다. 독일 에너지 기업 아르베에(RWE)를 상대로 홍수예방비용을 부담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이 지역 농부 사울 루치아노 리우야(가운데)가 후아라즈 시내에서 이날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DPA/연합뉴스

최근 주목되는 건 페루 안데스산맥 인근 도시에 사는 농부 사울 루치아노 리우야(41)가 독일의 에너지기업 아르베에(RWE) 그룹에게 낸 소송이다. 리우야가 사는 곳은 빙하 아래의 소도시다. 1941년 빙하 아래 호수를 둘러싼 둑이 터지면서 홍수가 났던 곳이다. 그는 기후변화로 빙하가 많이 녹고 있고 홍수의 위험성이 커졌다고 주장하며, 독일 환경단체 ‘저먼워치’와 함께 아르베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왜 아르베에일까? 기후변화는 미세먼지처럼 자신이 배출한 곳에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수명은 최대 200년이다. 빙하 감소와 기상 이변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기후소송에는 국경은 없다. 재밌는 건 아르베에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산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홍수 배수시설과 홍수 경보시스템 등을 만드는 홍수 예방비용의 0.47%인 2만 유로를 배상액으로 청구했다. 0.47%는 거대 온실가스 배출원 가운데 아르베에의 배출량을 토대로 산정했다.

2016년 독일 에센지방법원은 리우야의 소송을 기각했으나, 2심인 함고등법원은 이 사건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현장조사단을 이례적으로 페루에 파견해, 리우야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들었다. 이 소송이 리우야의 승소로 끝나면, 기후소송의 새 지평이 열린다. 이를테면, 한국의 시민도 산업혁명 이후부터 활동한 미국, 영국의 기업에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도 승소는 극히 일부다

물론 승소의 사례는 극소수다. 대다수 원고는 아직 법원에서 정부나 기업의 ‘주의 의무, 국제협약 위반’ 등의 판결을 끌어내지 못했다. 미국의 켈시 줄리아나 등 청소년 21명이 미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자신들의 미래를 훼손한다며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020년 1월 연방항소법원은 기후변화 대응은 사법부가 판단할 수 없는 ‘정치적 사안’이라는 이유로 각하했다. 각하는 재판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법원이 판단했을 때 청구인의 주장을 판단하지 않고 재판을 마치는 결정이다. 위르헨다 판결 이후 스웨덴에서도 비슷한 소송이 진행됐지만, 스웨덴 1∙2심 법원은 유럽인권협약 제2조 및 제8조의 권리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향적인 판결이 잇따라 나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폭주하는 종 인간과 절벽 앞에 선 지구의 자연사를, 과연 법은 막을 수 있을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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