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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견뎌낼 수 없었어”…시간강사의 죽음, 그 이후

등록 :2019-05-25 05:00수정 :2019-05-25 09:21

‘교수 논문 대필 폭로’ 서정민 9주기
강의 줄여 1학기 1만4천명 실직
초단시간 규정 퇴직금 안 주기도
경북대 등 비정규교수노조 농성
“정부, 법 취지 맞게 단호 대처를”
24일 국회 앞 대학강사노조 농성장 앞에 고 서정민 박사가 쓴 유서 패널이 놓여 있다.  김영곤 전국대학강사노조 대표 제공
24일 국회 앞 대학강사노조 농성장 앞에 고 서정민 박사가 쓴 유서 패널이 놓여 있다. 김영곤 전국대학강사노조 대표 제공
“사랑해, 더 이상 내 힘으로는 이 현실을 견뎌낼 수가 없었어.”

고 서정민 박사는 2010년 5월25일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서에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유서에서 그는 대학교수와 강사 간 갑을관계에서 벌어진 논문 대필 관행도 폭로했다. 고인은 자신이 쓴 논문이 교수와 공동 저자로 올라가는 등 논문 대필 건수가 54편 정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대학교수 자리를 두고 암암리에 매관매직이 이뤄지는 행태도 폭로했다. “세상이 밉습니다. 한국의 대학 사회가 증오스럽습니다!”

조선대 시간강사로 재직하다가 논문 대필 관행 등을 고발하며 자결한 서정민 박사 9돌 추모 학술행사가 24일 오후 4시 전남대 1학생회관 소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공익재정연구소, 평등노동자회 광주위원회, 전남대 철학동아리 우는씨알 등이 공동으로 주관한다. 25일엔 추모 행사도 이어진다.

서 박사의 논문들은 아직 저작권이 회복되지 않았다. 조선대 연구윤리위원회가 2010년 진상조사위원회 조사에서 연구 부정이 아니라는 결론을 낸 탓이다. 2015년 광주고법은 강요가 아니라는 이유로 유족들이 대학과 해당 교수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하면서도 광범위한 논문 대필은 인정했다. 이에 유족들은 교육부에 논문 저자 표기를 수정할 것을 요청했지만, 조선대 연구윤리위원회에서 아직 이를 재심의하지 않고 있다.

논문 대필 관행 등을 고발하고 자결한 서정민 박사.
논문 대필 관행 등을 고발하고 자결한 서정민 박사.
서 박사가 숨진 뒤 시간강사를 보호하는 내용의 정부 대책이 나왔다. 2011년 시간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는 고등교육법(강사법)이 개정됐지만, 시행이 유예됐다가 오는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 강사법엔 임용 기간을 1년 이상 법적으로 보장하고, 방학 중 임금을 지급하며 4대 보험을 적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김영곤 전국대학강사노조 대표는 “강사들이 교원 지위를 갖게 돼 앞으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제는 이렇게 강사법이 개정됐는데도 대학들이 강사와 강사들의 강의를 줄이는 등 꼼수를 쓴다는 점이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의 말을 종합하면, 대학강사는 2018년 7만6164명이었으나, 강사법 예비 시행 단계였던 1학기에 1만4천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김용섭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대학 강의의 30% 이상을 담당하는 강사들의 강사비는 전체 대학 지출의 2~3%밖에 되지 않는데도 대학들이 죽는소리만 하고 있다”며 “2학기부터 대학마다 강사가 얼마나 줄어들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대학강사 노조 조합원들은 반발하고 있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경북대분회는 지난 23일 “강사법의 운영 매뉴얼을 보면, 시간강사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근로자로 규정해 퇴직금과 건강보험도 적용받을 수 없게 하는 등 입법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며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7일 천막농성을 시작한 부산대 비정규교수노조는 14일부터 대학 쪽과 2학기 시간강사 채용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교육부는 강사법의 취지에 맞게 처우 개선을 위한 재정지원뿐 아니라 사립대학들의 강사 축소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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