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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설향 vs 장희·레드펄…딸기밭 ‘한-일 10년 전쟁’을 아시나요

등록 :2013-12-01 20:04수정 :2013-12-01 21:02

일본 도입종을 밀어내고 시장 판도를 뒤집은 품종 딸기 '설향'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논산 딸기시험장 제공
일본 도입종을 밀어내고 시장 판도를 뒤집은 품종 딸기 '설향'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논산 딸기시험장 제공
하루 1000개씩 먹어가며 ‘논산 딸기 시험장’서 품종 연구
맛과 신선도 뛰어난 ‘매향’, 재배까지 쉬워진 ‘설향’ 개발
10여년 전엔 일본 품종이 90%…올핸 우리 품종이 78%나
“차세대 주자 ‘숙향’ 개발, 가공·재배시설 경쟁력도 키울 것”
“일본 품종이 대세이던 시절부터 얘기를 할까요?”

하얀 딸기꽃 같은 함박눈이 쏟아지던 11월27일 충남 논산시 부적면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에서 만난 김태일(54) 논산딸기시험장장은 일본 품종 딸기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70년대 통일벼를 개발해서 배고픔을 해결한 게 녹색혁명이라면, 그 뒤로 국산 품종이 전국적으로 퍼진 건 딸기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자생종이 없어 외국 품종들이 경쟁하던 딸기 시장에서 김 시험장장은 ‘품종 국산화’를 이끈 선두주자다.

■ ‘딸기 한-일전’ 승자는 누구? 90 대 1.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2002년 국내 딸기농가 재배면적의 90%를 차지한 절대강자는 일본 도입종이었다. 국내 육성종은 1%를 간신히 턱걸이하는 수준이었다. 과일이 많이 달리는 장희(章姬·아키히메), 병에 강하고 과육이 단단한 게 강점이던 레드펄, 둘 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들여온 품종이다. 김 시험장장이 같은 해 1월 ‘매향’이란 국내 육성종을 개발·보급했지만, 맛이 뛰어나고 신선도가 오래가는 데 견줘 병충해에 약하고 재배가 까다로운 탓에 일본 품종이 싹쓸이하던 판도를 바꾸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거기다 우리나라가 ‘국제 식물 신품종 보호동맹’(UPOV)에 가입하면서 품종 사용료(로열티) 문제까지 불거졌다. “일본 정부는 장희·레드펄 개발 육종가들을 위해 변호인단까지 지원하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했어요. 해마다 30억~60억원에 이르는 사용료가 일본으로 건너갈 판이었죠.” 딸기를 둘러싼 한-일전은 일본의 완승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2005년 한국 축구의 박지성 선수에 비견될 ‘설향’ 품종이 눈꽃처럼 빛나면서 등장했다. 김 시험장장이 1995년 딸기 품종 육성에 뛰어든 지 10년 만이었다. 장희와 레드펄의 교배로 태어난 설향은 둘의 장점을 고루 갖춰 병충해에 강하고 과즙이 많아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땅에 묘목을 꽂아놓기만 해도 딸기 농사가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재배가 손쉬웠어요.” 농사짓기가 까다로워 재배 기술에 따라 수확량이 천차만별인 딸기 농업에서 설향의 장점은 돋보였다.

설향은 국내 농가에 보급된 뒤 해마다 일본 도입종들을 10%포인트 넘게 밀어내면서 재배면적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3년 만인 2008년에는 단일 품종으로는 일본의 레드펄을 제치고 딸기 재배면적 기준으로 국내 1위 품종에 올라섰고 올해는 무려 75.4%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농가들의 딸기 생산량도 설향과 더불어 동반상승했다. 2002년 5726억원이던 국내 딸기 생산액은 올해 갑절 넘게 뛰어올라 1조1188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에 재배면적이 7816㏊에서 6435㏊로 감소한 것을 보면 큰 성과다. “우리나라 원예작물 가운데 1년 생산액이 1조원을 넘기는 작물은 고추를 빼고는 딸기밖에 없을 거예요.” 딸기 온실 660㎡를 기준으로 이전에는 온실 하나에 매출액 1000만원이면 농사를 잘 지었다고 했지만 지금은 2000만원어치를 생산해도 잘된 농사라는 말이 안 나올 정도다. 설향보다 먼저 개발된 매향은 과육이 단단한데다 설향보다 맛이 뛰어난 점을 장점 삼아 수출길을 계속 넓히고 있다. 홍콩·싱가포르에서 고급 딸기로 각광받는 매향은 국내 수출량의 90%를 차지하며, 해마다 2000만달러어치씩 수출된다.

사정이 이렇자 일본에서 경계와 의심도 심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딸기 품종을 만들 능력이 되느냐’며 매향 품종의 연구자료를 요구하고 유전자 검사까지 했다. “결국 자기들 품종이 아니니까 아무 소리 못 하더라고요.” 품종 연구에 도움을 얻으려고 일본에 출장을 갔을 때는 재배 온실 앞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이 오면 온실을 닫아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우리 같은 연구원들이 가면 일본 쪽에서 온실 바깥에서만 보고 가라고 하고 그랬죠.”
11월27일 충남 논산시 부적면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에서 김태일 논산딸기시험장장(맨 뒤쪽)과 연구원들이 2005년 개발한 국산 품종 딸기 ‘설향’을 들어 보이고 있다. 논산/전진식 기자
11월27일 충남 논산시 부적면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에서 김태일 논산딸기시험장장(맨 뒤쪽)과 연구원들이 2005년 개발한 국산 품종 딸기 ‘설향’을 들어 보이고 있다. 논산/전진식 기자

■ ‘원톱 스트라이커’ 설향을 제쳐라 국내 딸기 시장의 중원을 마음껏 휘젓는 설향도 개발 초기에는 눈 속에 파묻혀 잊혀질 뻔했다. “논산3호(설향의 개발 초기 이름)를 따보니까 과육이 좀 물러요. 과육이 단단하지 못하면 유통 과정에서 상품성이 떨어져 버립니다.” 논산과 다른 지역들 농가에 설향 종묘를 주고 재배를 권유했는데, 한결같이 “물러서 못쓰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절망적이었다. 그러던 때에 도중엽 당시 논산딸기연구회장이 논산3호를 심은 뒤 물도 좀 적게 주면서 관리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자신감이 생겨 농가들에 ‘이 딸기는 물 많이 주든가 영양제 많이 뿌리면 버리게 된다’고 강력히 얘기하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정식으로 품종 등록을 하기까지 2년 동안 이런 시험재배가 이어진 뒤 설향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대전이 고향인 김 시험장장은 논산딸기시험장이 만들어진 1994년 농업연구사로 공직사회에 첫발을 뗐고 첫 발령지가 바로 시험장이었다. 시험장 개청과 함께 우연히 품종 육성을 맡게 됐다. 당시 국내에서 딸기 품종 육성을 맡은 담당자는 김 시험장장과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부산시험장 직원 1명뿐이었다고 한다.

충남대 원예학과 대학원에서 잔디학을 공부하던 그는 딸기 공부를 하면서 종묘를 뿌렸다. 시험장 온 지 두달 만에 대전에서 보따리를 싸서 논산으로 아예 이사를 했다. 시험장과 10분 거리 집에서 그는 휴일에도 시험장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처음에 1만그루를 심은 뒤 시험을 거쳐 1000그루로 줄이는 식의 고된 육종 작업이 이어졌다. 재배 온실에서 좋은 것들이 눈에 띄면 하룻밤 자고 나서 ‘오늘은 어떻게 변했을까’ 확인하는 게 일과였다. 하루에 딸기 1000개를 맛보는 것은 예사였다. 기대하던 차에 열매가 달렸는데 정작 맛이 없으면 실망하던 때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연구원의 노력으로 좋은 품종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육종은 운이 절반을 차지해요. 제 눈에 띄지 않으면 사장되고 마는 거죠.” 19년 전 시험장 한구석 330㎡에서 시작된 품종 육성 끝에 얻은 설향은 지금 14만배가 넘는 4800만㎡에서 농민들이 재배하고 있다.
농민들이 설향을 수확한 뒤 가지런히 포장하는 모습 /논산 딸기시험장 제공
농민들이 설향을 수확한 뒤 가지런히 포장하는 모습 /논산 딸기시험장 제공

제철 딸기가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요즘 김 시험장장은 불안하다. 매향·설향은 이미 대한민국 우수품종상의 국무총리상과 대통령상을 거머쥐면서 국내 육종 현장에서 최고 자리를 차지했다. 자신도 대한민국 농업과학기술 대상(근정포장)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았다. 하지만 설향의 독주를 마냥 웃고 즐길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아직 국내외에서 설향을 능가하는 품종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한방에 국내 딸기 시장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다양한 경로로 여러 품종을 만들어 경쟁력을 갖춰야 해요.”

지난해 시험장에서는 일본 레드펄을 겨냥해 수확기가 늦으면서 과육이 단단한 숙향을 개발했다. 레드펄보다 과일이 10% 더 달릴 만큼 우수하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현재 1000㎡에 수량 3.8t, 당도 10브릭스, 신선도 유지 기간 2일 수준인 품종들을 2019년까지 수량 5t, 당도 12브릭스, 신선도 유지 기간 6일로 향상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지금까지는 품종 육성을 비롯해 재배 기술에 집중했지만 재배 시설이나 에너지 활용, 딸기 가공까지 폭을 넓히고 싶은 욕심도 있다. 산업계와 학계, 연구기관을 아우른 산학연 연구체계를 만드는 것도 꿈이다. 생과일뿐 아니라 종묘까지 수출하는 일도 미룰 수 없다.

“시험장에서 3년만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결국 못 가고 20년 가까이 지났네요.” 지금도 국내에서 오로지 딸기만을 전문적으로 연구·시험하는 곳은 논산딸기시험장이 유일하다.

논산/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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