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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전국일반

“꿈에 나오는 뱀, 이제 무섭지 않아요”

등록 :2013-04-03 22:08

5·18 시민군 박천만씨
트라우마센터에서 마음의 병 극복
자살 시도 과거 털고 새로운 삶
국내 첫 국가폭력 상처 치유 성과
“잠자리에 눕는 것이 무서웠어요. 잠을 자면 무엇이 딱 와서 목을 짚어요. 악을 쓰려고 하는데 소리도 안 나오고….”

1980년 ‘5·18 시민군’이었던 박천만(53)씨는 3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트라우마, 치유의 첫발을 내딛다’란 주제의 발표회에서 내면의 상처를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이날 발표회는 박씨 등 5·18 민중항쟁 관련자 7명의 치유 과정을 풀어내는 자리였다. 집단 상담을 통해 국가폭력 생존자 등의 치유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5·18 당시 제과점에서 일하던 박씨는 만삭의 아내(당시 22살) 몰래 광주 시내로 나가 총을 들었다. 계엄군 진입을 앞둔 80년 5월26일 밤 그는 ‘어차피 누군가는 광주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남도청에 남았다. 그를 향해 총을 쏘아대던 계엄군 가운데 누군가 “사격 중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살게 됐다. “도청 건물 2층까지 쭉 뻗은 나무를 타고 내려왔어요. 나무는 화창한데, 동료들은 시체로 있더라고요.”

그는 군부대 영창으로 끌려가 구타와 고문을 당해 한쪽 청력을 잃었다. 살았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살충제를 마시고 자살도 시도했다. “죽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려고 옛 전남도청에 가서 그때 그 나무한테 물어보기도 했어요. ‘네가 그때 본 장면을 한번 말해봐라’ 하고요. 그런데 나무는 아무 말이 없더라고요.”

그동안 박씨는 80년 5월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왔다. “광주 사람들조차도 우리를 욕하는 것 같아서” 자신의 세 남매한테도 숨겼다. 5·18이 민주화운동이 됐지만 보상금 타서 밀린 병원비와 빚을 갚고 나니 아무것도 없었다.

날품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리던 그는 지난해 광주트라우마센터를 만났다. 보건복지부와 광주광역시는 지난해 10월 전국 최초로 국가폭력 피해자와 생존자, 가족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유하는 트라우마센터를 설립했다. 박씨는 동료들과 지난해 11월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정신과 전문의)를 만나 지난 1월까지 10차례 집단 상담을 받았다. 고혜경 박사(신화학)한테도 2월부터 꿈 치료를 받기 시작해 오는 9일 마지막 8회째가 진행된다.

박씨는 “한두번 함께 만나면서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트라우마센터에 가는 날엔 꼭 면도를 한다. 처음으로 2만원 주고 깨끗한 운동화도 샀다. “생전 처음으로 나를 인정해주는 분들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점차 ‘나를 사랑하자’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엊그제 꿈에 무덤에서 나오는 은색 뱀을 만났지만, 무섭지 않았어요.”

강용주(51)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80년 5월에 멈춰버린 이들의 기억을 함께 나누고 서로에게 치유자가 된 자리였다”고 말했다. 트라우마센터는 10일부터 다음달 29일까지 5·18 관련자 8명에게 2기 집단 상담(8차례)을 시작한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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