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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편집국에서] 연평도는 삼전도가 될 수 있다 / 정의길

등록 :2010-12-22 20:28수정 :2010-12-23 09:31

정의길 오피니언넷부문 편집장
정의길 오피니언넷부문 편집장
병자호란 때 인조는 청 태종에게 세번 큰 절과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를 하며 삼전도에서 항복과 용서를 빌었다. 그 자리에는 ‘대청황제공덕비’, 이른바 삼전도비가 세워졌다. 잠실 롯데월드 석촌호숫가로, 현재 한국의 풍요와 환락을 상징하는 유흥촌이다.

우리의 처지도 그만큼 좋아진 것인가? 삼전도는 지배층의 완고한 이데올로기 집착과 그릇된 정세판단의 산물이다. 그때 동아시아의 격변하는 패권질서에 눈감고 허상의 명분에 집착한 재앙이다. 명과 청의 패권다툼에 속절없이 빨려들어간 참화이다. 그 삼전도가 연평도로 살아나고 있다.

연평도 역시 현재 동아시아 패권질서 격변의 산물이다. 단순히 남북한 관계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격돌하는 패권다툼의 최전선이다. 병자호란 때나 지금이나, 조선과 한국은 그 패권다툼에서 비켜서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패권다툼의 마당 구실을 자처하고 있다.

정묘·병자호란 때 화이론과 명에 대한 ‘부모지국’의 ‘재조지은’ 사대관계는 지금의 친미반북주의와 ‘한-미 혈맹’ 관계와 유사하다. 중화를 숭상하고 오랑캐와는 같은 하늘을 질 수 없다는 화이론, 부모의 나라 명이 임진왜란 때 파병해 조선을 거듭나게 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식자층들의 인식 앞에 조선의 국력, 명의 쇠락과 청의 굴기 등은 결국 아무 의미가 없었다.

조-청 관계는 ‘명의 재조지은을 배반하고 오랑캐와 화친한’ 광해군 타도를 명분으로 내건 인조반정 이후 파탄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이 ‘북한에 퍼주기를 하고, 한-미 동맹을 약화시켰다’며 들어선 이명박 정부 이후 한-북·중관계와 닮은꼴이다. 중국은 이명박 대통령 방중 때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한-미-일 군사동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향후 한국과의 관계를 시사했다.

정묘호란으로 명보다는 청과의 관계 구속성이 이미 커졌지만, 조선은 여전히 화이론과 재조지은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며 사신교환에서 의전문제 등으로 청과 사사건건 알력을 빚었다. 중국과 수교한 이후 한국은 이제 대중 수출액이 대미·대일 수출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경제에서는 미·일보다 관계 구속력이 더 크다. 천안함 사건 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방중하자, 한국 정부는 중국대사를 불러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외교적 대담성’을 보였다. 중국은 당연히 공개적인 강력한 반발로 되받았다.

조-청 관계는 명의 장수 공유덕과 경중명이 청으로 귀순하는 사건으로 파탄났다. 군선을 빌려달라는 청의 요구를 거절하던 조선은 이들을 추격하라는 명의 요구에 순응해 식량과 수군을 제공해 청과 전투까지 벌여, 병자호란으로 치닫는다. 천안함 사건 뒤 한국은 미국의 조지워싱턴 항모를 서해에 초치한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을 중국 코밑에서 감행했다. 남북한 관계를 미-중 패권다툼의 마당으로 제공한 계기였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 이래 순조롭던 중국 등 북방세력과의 관계는 이제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립구도로 바뀌었다. 남북한은 미·일 대 중·러라는 남방해양세력 대 북방대륙세력의 첨병 노릇을 한다. 연평도 포격훈련 재개를 놓고 러시아의 유엔 안보리 소집은 이런 구도에 도장을 찍었다. 서해에서 한-중 어로분쟁은 중-일의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을 방불케 하며 중국은 강경자세를 보인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연평도 포격훈련 재개를 놓고 “지금이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던 (19세기 말) 조선시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럼 현재 북한과의 전쟁불사론은 병자호란 전야 조정에서 드높던 척화론과 다른 것일까?

“내가 대국에 화호(和好)를 의탁한 지 10년인데 이제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내가 어둡고 미혹하기 때문에 스스로 천토(天討)를 재촉하여 만백성이 어육이 되게 한 것이니, 죄는 나 한 사람에게 있다.”(‘삼전도비’에서)

청의 강박이기는 했지만, 인조는 절절한 후회를 삼전도비에 남겼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이명박 대통령은 어육이 된 국민을 앞에 두고 어떤 비를 남길 것인가?

정의길 오피니언넷부문 편집장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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