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경희대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
“방송이 무서워요.”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의 말이다. “요즘 얼굴이 알려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실감해요. 지하철역에서 누군가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해요. 사인도 부탁하고요. 재밌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요.” 그는 케이블채널 <티브이엔>의 <알쓸신잡> 시즌 3편(14일 종영)에 나왔다. 방송에 힘입어 그가 쓴 책 판매고도 쑥쑥 올라갔다. 지난달 나온 <떨림과 울림>은 벌써 2만3천 권을 찍었고 재작년 나온 <김상욱의 양자 공부>는 2만 권가량 팔렸단다. 유시민 작가는 방송에서 “(학교에서) 김상욱에게 배웠다면 물리를 다정하게 대했을 텐데”라고 했다. 14일 신분당선 광교역 근처 카페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예를 끌어와 과학 이론을 푼다. 설명은 간결하고 조리가 있다. 이런 식이다. “집에 환기를 잘 안 시키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죠.” 왜? “세상 모든 게 다 원자로 이루어졌어요.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되어 있죠. 원자핵 변환 때 나오는 게 방사선이죠. 방사선이 사람 몸에 맞으면 디엔에이 변이를 일으킵니다. 암에 걸릴 확률이 커지죠.” 고대 그리스 철학자와 칸트, 괴테 등 인문 저술도 폭넓게 버무린다. 과학과 친하지 않아도 쉽게 읽히는 이유다.
올해로 15년 차 교수다. 서울 문일고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들어가 박사까지 마쳤다. 2004년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가 됐고, 올해 경희대로 옮겼다.
그를 교수로 만든 박사 논문 제목은 ‘상대론적 혼돈 및 혼돈계의 양자 국소화에 관한 연구’이다. 많이 어렵다. “둘 다 공통어가 혼돈(카오스)이죠. 앞은 고전역학인 상대성 이론의 혼돈입니다. 지도 교수가 권유한 문제를 푼 것이죠. 저는 양자역학의 카오스도 보고 싶어 별도로 연구해 둘을 합쳤어요.” 지금은 어떤 연구를? “양자 열역학 연구죠. 2008년부터 하고 있어요. 저의 오랜 연구 주제는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경계 탐구입니다. 고전역학은 거시적 세계를, 양자역학은 원자 이하의 미시적 세계를 다룹니다. 우주를 미시와 거시 둘로 나눠 본다는 게 물리학자 입장에선 기분 나빠요. 둘로 나눌 수 없는 것도 있고 중간 영역도 있을 수 있잖아요.” 자신의 연구 주제인 ‘양자 카오스’를 두고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 학자가 연구해 양자역학에선 카오스가 없는 거로 모두가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상해요. 저는 양자역학의 한 극단이 고전역학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고전역학에 있는 게 양자 세계에 없다는 게 불편해요.”
고2 때 과학에 빠졌으니 과학 입문이 빠른 편은 아니다. 아버지가 사 온 책 <4차원의 세계>(전파과학사)를 보면서다. 부친(김재현)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서울대 외교학과 동기로 아들보다 더한 독서광이란다. “책 중에 양자역학 부분이 너무 재미있어 교보문고를 가 양자역학책을 찾아봤어요. 딱 한권 있더군요. 일본학자가 쓴 <양자역학의 세계>였죠. 그 책을 수도 없이 봤어요.”
과학저술가로 나선 데는 이때의 경험도 영향을 미쳤단다. “학교 과학 수업은 재미가 없어요. 지금도 그래요. 입시 때문이죠. ‘쟤물포’란 말이 있어요. ‘쟤 때문에 물리 포기했어’란 뜻이죠. 쟤는 교사를 말해요. 학생들은 대부분 수업보다는 책이나 과학 잡지를 보고 과학에 흥미를 느껴요.” 대학 수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단다. “양자역학을 배우려고 카이스트에 갔는데, 3학년이 돼서야 배우더군요. 그런데 학교 수업이 생각보다 재미없었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알고 싶은 내용은 안 나오고 양자역학의 테크닉과 관련한 문제만 많이 풀었어요.” 그가 택한 돌파구는 스터디그룹이었다. “4명이 모여 (양자역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1932년 첫 저서 등 양자역학 원전 자료를 모아 공부했죠. 그때야 양자역학이 비로소 이해되더군요. 3학년 2학기 때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죠.” 같이 공부한 넷 가운데 셋은 지금도 연구의 길을 걷고 있단다.
출판사는 김 교수를 두고 ‘철학하는 과학자’란 카피를 달았다. 인문학 공부는 언제? “출판사가 오버한 거죠. 칸트 등의 철학 원전을 직접 읽지는 않았어요. 박사 받을 때까진 물리가 전부였죠. 24시간 내내 양자역학만 생각했어요. 교수가 된 뒤 시간여유가 생기더군요. 연구 말고 조직 업무나 학생 교육 등 다른 것도 생각해야 했죠. 물리학 지식만으로 안 된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리고 역사나 철학, 사회과학 공부를 시작했죠. 재미도 있었고요.” 이런 말도 했다. “과학 교양 저술에 나선 시기는 ‘물리학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경쟁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때와 겹친 것 같아요. 물리학 연구자가 남다른 결과를 내려면 24시간 연구만 생각해야 합니다.”
인기프로 ‘알쓸신잡’ 출연 ‘유명’
‘떨림과 울림’ 등 저서 판매 쑥쑥
“책쓰기가 연구보다 사회적 기여”
고2때 ‘4차원의 세계’ 읽고 ‘물리’로
‘양자역학-고전역학 경계탐구’ 관심
“국내 학계 ‘소통 부재’ 심각한 문제”
가끔 ‘연구는 언제 하느냐’는 말도 듣지만 그는 자신의 책쓰기 작업이 연구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단다. “그동안 물리학 논문 60편을 썼어요. 그런데 친척 중 누구도 몰라요. 책을 내면 사방에서 전화가 옵니다. 제가 들이는 단위 시간당 인간에 대한 기여도가 책쓰기가 (연구보다) 크죠. 제 일이 우리 사회에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기초학계를 포함해 한국 학계의 소통 부재를 큰 문제라고 여긴다. “인접 학문의 경계 지점 나사를 조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분과학문이 따로 놀지 말고 단단히 연결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기초과학 내부에서도 소통 부재는 심각해요. 물리는 원자 하나만 풀고 화학은 원자 이상의 단위를 다루잖아요. 이렇게 연구 대상이 다르면 연구 용어가 달라져요. 그러면 소통이 안 돼요. 병을 제대로 고치려고 하더라도 몸 전체를 알아야죠.”
중세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낸 <떨림과 울림>에도 <사피엔스> 서평을 포함했다. <사피엔스>는 과학과 인문학을 하나의 틀로 묶는 빅 히스토리 저술이다. 분과학문의 벽에 갇혀선 받아들이기 힘들다. “제가 정보를 다루는 학문을 해서인지 인간사회의 가치를 정량화하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그렇게 하면 인문학이 과학이 되거든요. 하라리의 책을 보고 정량화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라리는 (인간사회가)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그것을 믿는 능력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상상의 산물’이라는 거죠. 상상의 산물이라면 물리적 근거가 없잖아요. 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이란 법칙은 외계인이 와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인간이 돼지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말은 외계인을 납득시킬 수 없어요.”
직접 빅 히스토리 저술은? “현재 과학계간지 <스켑틱>에 연재하고 있는 글이 그런 성격이죠. 저는 이 글에서 시간 대신 공간을 매개로 우주와 인간의 역사를 살피고 있어요. 쿼크에서 시작해 원자 분자 생명체 지구 우주 인간으로 나아가죠.” 빅 히스토리 저술가인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와의 만남이 자극제가 됐단다. “몇 년 전 조 교수가 만나자고 하더군요. 조 교수를 만나기 전만 해도 빅 히스토리는 인문학자가 연구비를 따려고 갖다 붙인 것 아니냐는 불신이 있었어요. 조 교수를 만나고 빅 히스토리는 ‘인문학자가 과학자에 같이 하자고 손을 내미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수하게 받아들였어요. 이전의 과학과 인문 쪽 통섭 시도는 과학자가 공격적으로 생물학 중심으로 인문학을 잡아 삼키려고 한 시도였어요.”
‘철학하는 과학자’답게 그는 과학자도 철학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 왜? “현재 과학자들이 탐구하는 걸 이미 철학자들이 질문하고 답도 했어요. 물론 물질적 증거는 없지만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게 원자로 되어 있다고 했죠.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텅 빈 공간에서 원자가 결합하거나 흩어져 나무가 되기도 하고 사람이 된다고도 했죠. 우주에 의도나 목적이 없다고 봤어요. <이기적 유전자>를 쓴 도킨스 등 요즘 과학자들과 생각이 비슷해요. 에피쿠로스나 데모크리토스 같은 철학자들이 지금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 겁니다. 그들이 과학적 지식 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놀라워요.” 김 교수를 양자역학의 세계로 이끈 하이젠베르크도 플라톤 저술 <티마이오스>가 자신을 물리로 이끌었다고 자서전 <부분과 전체>(김용준 교수 역)에서 밝힌 바 있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물질의 최소부분을 수학적 형식인 정다면체와 연결해 탐구한다.
김 교수에게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증거에 따라 결론을 내리려는 태도이다. 김 교수는 근대 과학의 문을 연 뉴턴을 예로 들었다. “뉴턴은 저서 <프린키피아> 서문에서 ‘난 시간과 공간, 위치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 않겠다’고 해요. 알지 못해서라는 이유죠.” 그는 무지를 인정하는 이런 태도가 과학의 독보성을 주장하는 근거이지만 한편으로는 과학의 발목을 잡기도 한단다. “생물학자들은 (잘 모르는) 양자역학에 관해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받아들이죠.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용기를 가지고 다른 분야 이야기를 해야죠.”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쓴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를 예로 들었다. “슈뢰딩거는 책에서 ‘난 물리학자이지만 생물학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두 학문의 경계를 허무는 용기를 내겠다’고 썼어요. 실제 슈뢰딩거는 그 책에서 오류를 범했죠. 유전을 이루는 물질적 근원을 디엔에이가 아니라 단백질이라고 했거든요. 하지만 이런 오류에도 이 책은 후속 생물학 연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어요.”
김 교수는 양자역학의 고향인 독일 막스-플랑크 복잡계 연구소에서 2년 6개월 동안 연구원으로 있었다. 거기서 뭘 배웠나? “연구 환경이 완벽해요. 컴퓨터 관리자도 물리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어요. 물리학 연구 주제를 놓고 대화가 가능해요. 전 세계 유명 과학자들이 옆 동네에서 살기도 하고, 학교에서도 쉽게 볼 수 있어요.” 2001년 9·11 테러를 기점으로 과학의 중심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느낌이라는 말도 했다. “9·11 이후 미국이 외국인을 꺼리고 많은 재원을 안보 쪽에 쏟고 있잖아요. 그 전에는 독일 과학자들이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 가곤 했는데 지금은 유럽에 그냥 머물러요.“
쉽지 않은 질문이란 걸 알면서도 물었다. ‘쟤물포’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로 14년 있으면서 그 문제를 계속 고민했어요. 학생을 줄 세워 대학에 보내는 지금의 입시로는 답을 찾기 힘들어요. 하지만 낙관합니다.” 낙관이라니? “대학이 무너져 대학을 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그런 생각을 할 때 물리 교육도 바뀔 겁니다. 지금 대학이 그런 쪽으로 가고 있어요.”
인터뷰 중 김 교수한테 빈번하게 들은 말이 ‘재밌다’이다. 양자역학도 그렇고 <사피엔스>나 인문학 공부를 두고도 한 말이다. 그는 이른바 밀리터리(군사) 덕후다. 역시 “그냥 재밌어서”이다. “유아적 취미를 못 벗어난 거죠. 저는 로봇엔 흥미가 없고 탱크나 비행기, 2차대전 무기에 관심이 많아요. 지금도 전쟁이나 에스에프 영화는 빠짐없이 봅니다. 전쟁 때 보이는 인간의 모습에 흥미를 느낍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