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뱀장어는 전기생산세포라는 독특한 조직으로 100볼트 정도의 전기를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네이처> 제공
전기뱀장어는 전기생산세포라는 독특한 조직으로 100볼트 정도의 전기를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네이처> 제공

미국 연구팀이 전기뱀장어를 모사해 몸속 심박측정기나 약물 분사기, 증강현실 콘택트 렌즈 등 소형기기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유연하고 투명한 생체적합형 발전장치를 만들었다.

미국과 스위스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14일 “하이드로젤과 소금으로 부드러운 세포들을 만들어 100볼트 이상을 생산하는 생체적합한 인공 발전장치를 제작했다. 이 발전장치는 사출기가 물을 쏘아대는 것처럼 저전류 고전압의 전기를 쭉쭉 만들어낸다. 이 정도 전력이면 속도조절기같은 소형기기를 작동시키는 데 충분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연구팀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 13일(현지시각)치에 실렸다. 하이드로젤은 물이 기본 성분으로 들어 있는 젤리 모양의 물질로, 콜로이드·한천 따위의 진하고 뜨거운 수용액을 식힐 때 얻어진다.

논문 교신저자인 스위스 프리부르대 아돌프 메르켈연구소의 생물물리학 교수인 마이클 메이어는 “발전장치는 초기 형태이지만 생체적합형 기기나 웨어러블 기기에 독성 부작용을 피하고 배터리를 통한 재충전 없이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연구하면 몸속에서 일어나는 생체 현상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생물전기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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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 발전장치는 전기뱀장어의 발전능력에 견줄 정도는 아니다. 전기뱀장어는 먹이를 잡아먹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훨씬 더 큰 전력을 쏟아낸다. 이번 연구에는 스위스 프리부르대와 미국 미시건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등이 참여했다.

공동연구자인 맥스 쉬테인 미시건대 교수는 “전기뱀장어는 높은 전압을 생산하기 위해 수천개의 전기생산세포(일렉트로사이트)가 순간적으로 극형성과 탈분극을 반복한다. 이를 잘 모사하면 발전장치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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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뱀장어를 모사해 특수프린트로 플라스틱판에 소금젤과 순수 물로 된 하이드로젤을 교차 인쇄했다. <네이처> 제공
연구팀은 뱀장어를 모사해 특수프린트로 플라스틱판에 소금젤과 순수 물로 된 하이드로젤을 교차 인쇄했다. <네이처> 제공

뱀장어는 ‘막투과 수송’이라는 독특한 현상을 일으킨다. 특수 전기생산 조직은 수천개의 병렬로 된 칸으로 이뤄져 있는데, 여기에는 포타슘(칼륨)이나 소듐(나트륨) 이온들이 채워져 있다. 이 칸들은 막으로 분리돼 있는데 뱀장어가 휴식을 취할 때는 두 이온이 분리돼 있다가 전기를 생산할 때는 막이 두 이온의 이동을 허용하고 이로 인해 전력이 뿜어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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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이를 본떠 비슷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소듐과 포타슘 대신에 식탁 위 소금과 같은 소듐과 염소화합물(클로라이드)을 사용했다. 염소화합물 곧 염화물은 하이드로젤에 잘 녹는다. 아돌프 메르켈연구소의 특수프린터로 플라스틱판에 소금젤과 순수 물로 된 하이드로젤의 작은 방울(입적·droplet)이 교차하도록 프린트했다. 이 교차 입적은 마치 뱀장어 조직의 칸과 유사하다.

다음 연구팀은 각 칸을 분리하는 뱀장어의 막을 모사해, 전하 분리 하이드로젤로 또 다른 판을 만들었다. 이 판 위의 입적들은 소듐 양이온이나 클로라이드 음이온은 통과시키고 반대는 통과시키지 않는다.

연구팀은 인공위성 태양패널에 쓰이는 ‘미우라 접기’ 방식을 이용해 전기 생산 입적들이 겹쳐 쌓이도록 만들었다. <네이처> 제공
연구팀은 인공위성 태양패널에 쓰이는 ‘미우라 접기’ 방식을 이용해 전기 생산 입적들이 겹쳐 쌓이도록 만들었다. <네이처> 제공

연구팀이 마지막으로 낸 아이디어는 ‘미우라폴드’라는 종이접기 방식이다. 미우라 오리라고도 불리는 이 방식은 일본 천체물리학자인 미우라 박사가 고안한 것으로, 시트 면적을 최대화하면서 저장 공간을 최소화하도록 접는 것을 말한다. 이 기술은 위성의 태양전지패널에 적용됐다. 연구팀은 4개의 판을 미우라 방식으로 접어 입적들이 정확한 위치에 맞닿아 쌓이도록 발전장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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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어 교수는 “뱀장어의 전기 생산 조직은 아주 복잡하다. 우리가 만든 장치는 뱀장어 조직에 훨씬 못 미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뱀장어가 전기를 생산하는 구조를 그대로 모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장치의 효율을 높이면 생체 속 소형 기기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