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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미래

50년 전 SF 속의 2022년…디스토피아 경고는 빗나간 것일까

등록 :2022-01-07 14:59수정 :2022-01-07 19:28

[박상준의 과거창]
1973년작 ‘최후의 수호자’가 그린 암울한 미래와 현실
1973년작 ‘최후의 수호자’의 예고편 장면. 빈부 격차로 시위가 일상화하고 식량은 배급제로 공급된다. 동영상 갈무리
1973년작 ‘최후의 수호자’의 예고편 장면. 빈부 격차로 시위가 일상화하고 식량은 배급제로 공급된다. 동영상 갈무리

서기 2022년 뉴욕시. 인구는 4천만 명에 달하고 집 없는 사람들이 넘쳐나 고층 건물의 계단마다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식량은 배급제인데 그마저도 부족하기 일쑤라서 시위가 일상적이지만, 그들을 진압하는 것은 전경도 살수차도 아니다. 거대한 포크레인이 시위대를 글자 그대로 ‘퍼담아서’ 뒤의 호송차량으로 넘긴다.

이상은 우리나라에 <최후의 수호자>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는 1973년 미국 영화 <소일렌트 그린(Soylent Green)>의 설정이다. 물론 2022년 현재의 뉴욕 실정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의 뉴욕시 인구는 9백만 명이 채 안 되어(2020년 기준) 서울보다도 적고 식량 부족 문제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50여 년 전 SF영화에서 ‘2022년이라는 미래’를 이렇듯 비관적으로 전망했던 이유는 당시의 근미래 예측 패러다임이 실제로 그런 위기감을 강하게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1966년에 미국의 SF작가 해리 해리슨이 발표한 장편소설 <좁다!좁아!(Make Room!Make Room!)>를 바탕으로 삼고 있는데, 원작은 1999년을 배경으로 인구 폭증과 자원 고갈로 빈곤이 증가하고 식량 부족 사태가 이어져 사회 질서가 붕괴하는 과정을 담은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인구 증가를 우려하는 건 지구 생태계에 불균형을 초래할 가능성 때문이지만 당시에는 인류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을 것이란 불안이 더 컸다. 그 불안감의 기저에는 일찍이 맬서스가 1798년에 <인구론>에서 주창한 ‘맬서스 트랩’이 있었다. 즉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자원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기에 재앙은 필연적으로 닥친다는 것이다.

영화 ‘소일렌트 그린’은 한국에서는 ‘최후의 수호자’라는 이름으로 개봉됐다. MGM/UA 제공
영화 ‘소일렌트 그린’은 한국에서는 ‘최후의 수호자’라는 이름으로 개봉됐다. MGM/UA 제공

1960년대 인구 폭증에 따른 위기 의식 반영

이에 더해서 원작소설이 나온 1966년과 영화가 발표된 1973년 사이에는 씽크탱크 ‘로마 클럽’의 인류 문명 보고서 <성장의 한계>(1972)가 준 충격도 있었다. 인구 증가 추세와 유한한 자원이라는 데이터를 넣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세기말쯤이면 산업 규모의 통제 불가능한 축소와 인구 감소, 다시 말해서 전 인류적인 재앙이 닥칠 것이란 결과가 나온 것이다. 보고서는 그런 파국을 막기 위해선 적절한 인구 정책과 자원 소비 패턴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1970~80년대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기억이 나겠지만 당시엔 이런 위기의식이 꽤 심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맬서스나 로마 클럽의 불길한 전망은 일단 빛이 바랬다. 식량 부족은 질소비료의 탄생으로 사실상 해결되어 이제는 공정한 분배의 문제로 바뀌었고, 20세기 말이면 고갈된다던 석유는 시추 기술의 발전으로 역시 잔존 가용량이 크게 늘었다. 결국 두 전망은 과학기술의 발전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오류를 범한 셈이다.

‘소일렌트 그린’ 원작 포스터. 위키미디어 코먼스
‘소일렌트 그린’ 원작 포스터. 위키미디어 코먼스

과장된 장면 연출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그렇다면 <소일렌트 그린>에서 묘사한 디스토피아적 2022년은 이제 ‘낡은 미래’로 치부하고 넘겨야 할까?

SF의 주요 미덕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미래의 다양한 모습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SF작가들이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많이 묘사하는 것도 정말로 그럴 개연성이 높다고 믿어서라기보다는 반면교사로 현재에 경고를 던지려는 의도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소일렌트 그린> 속 2022년의 사회상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영화 속에서 2022년은 일단 극심한 빈부격차가 드러난 세상이다. 부유층들은 철통같은 요새처럼 조성된 거주 구역에서 그들만의 안락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린다. 심지어 집집마다 기본으로 ‘여자’가 제공되는데 이들을 ‘가구’라고 부른다. 반면에 주인공은 형사라는 직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좁아터진 단칸방에서 늙은 동료와 빈곤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무더위에도 선풍기 하나에 의지하고, 신선한 과일은 어릴 때조차도 먹어 본 기억이 없다.

분명 과장된 묘사라고 볼 수 있지만, 어쩌면 감독은 일부러 이렇듯 뻔뻔스럽게 위악적으로 연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애써 드러내 말하려 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들을 부각하여 사회 윤리적 공론화를 시도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묘사를 보면 그런 심증이 더 짙어진다. 주인공의 늙은 동료는 영화 후반부에서 집을 떠나 정부에서 운영하는 안락사 센터로 간다. 죽기 전에 그에게 제공되는 것은 커다란 스크린으로 흐르는 좋았던 과거 시절의 영상, 즉 울창한 삼림과 야생동물들, 그리고 강과 바다의 모습이다. 늙은 세대는 아스라한 기억으로나마 간직해왔던 것이지만 주인공에겐 생소한 광경들일 따름이다.

빈부격차 심화, 성차별, 자연환경 파괴, 노인복지 문제 등등은 사실 지금 시대에 첨예한 쟁점들이다. 어쩌면 이 영화가 만들어지던 50여 년 전에는 그 심각성이 다른 문제들에 가려져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은 21세기가 되면 그런 문제들이 어떤 식으로든 피할 수 없는 형태로 드러나리라 전망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소일렌트 그린>이 오래전에 전망한 ‘2022년이라는 낡은 미래’는 지금도 여전히 일정한 유효성을 지녔다.

‘성장의 한계’에 수록된 인간의 시야 그래픽. Club of Rome 제공
‘성장의 한계’에 수록된 인간의 시야 그래픽. Club of Rome 제공

지속가능한 미래 원한다면 시야 넓혀야

맬서스의 이론이나 로마 클럽의 경고도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무의미해진 것은 아니다. 단지 유예 기간이 늘어난 것뿐이라고 봐야 옳다. 현실의 2022년에서 우리에게 큰 위협은 기후 위기나 환경 파괴, 그리고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일 것이다. 근년 들어 우주개발이 민간 분야에서 융성하는 뉴스페이스의 시대로 접어든 것도 어쩌면 지구라는 한정된 보금자리를 벗어나려는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빈부격차의 심화나 사회적 약자 차별 같은 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그 답은 바로 로마 클럽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에 이미 제시되어 있다. 이 책자에 등장하는 숱한 도표 중에서 맨 처음에 나오는 것이 ‘인간의 시야’이다. 우리가 평소에 시공간적으로 얼마나 넓고 먼 관점을 지니고 사는가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인류 대부분은 공간적으로는 자기 가족, 시간적으로는 1년 이상을 보지 않고 산다. 세계 전체와 후손들의 삶까지 고려하며 사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인류 대부분이 좁은 시야를 가지고 사는 것은 20세기 이전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고도 산업 문명 시대가 되면서 더 이상 그런 상황은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근시안적인 사고로는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미래, 더 나아가서 지구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성장의 한계>도 인류 문명의 위기는 결국 시공간적 시야의 확장만이 해결책임을 선언한 것이다. 2022년에 접어든 지금, 나는 과연 얼마나 넓은 시야를 지니고 사는지 한번 진지하게 성찰해 보는 시간을 다 같이 가져보는 건 어떨까?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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