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미래&과학미래

1960년의 한국 첫 인공위성…주인공은 어디에?

등록 :2022-01-31 09:02수정 :2022-02-02 09:34

[박상준의 과거창]
경기공고 과학반이 만든 ‘유생물 인공위성’
1959년 세계 미사일발사장 지도 속의 인천
잊혀진 한국 초창기 우주개발사 복원할 때
1959년 '우주과학' 회지에 실린 세계 로켓발사장 지도. 서울SF아카이브
1959년 '우주과학' 회지에 실린 세계 로켓발사장 지도. 서울SF아카이브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역사를 논할 때 2021년은 여러모로 변곡점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자체 개발한 75톤급 로켓 엔진을 달고 우주공간에 오른 누리호의 발사를 맨 먼저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정책적인 면에서 보면 지난 40년 넘게 우리나라 로켓 발사체의 개발을 제한해 왔던 한미미사일(사거리)지침이 완전 철폐된 것이 더 의미심장한 일이다. 2021년 5월에 미국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이 지침은 완전히 폐지되었고, 이로써 우리나라는 아무런 제약 없이 얼마든지 고성능 로켓을 연구하고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전까지 우리는 우주 로켓을 안 만든 것이 아니라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못 만든 것이다.

역사에 만일은 없다지만, 만약 한미미사일지침이 없었다면 우리 손으로 만든 로켓이 우주로 날아오르는 일은 몇십 년 앞당겨져 이미 20세기 중에 실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순히 희망적인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나라의 초창기 우주개발 역량이 그 정도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로켓 발사 공개 실험은 1959년 인천 해안에서 실행되었으며, 당시 국방부과학연구소(현재의 국방과학연구소와는 다른 기관)에서 만든 3단계 로켓을 포함해 총 5개의 로켓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이승만 대통령도 직접 참관했던 이 발사 실험은 대한뉴스 영상으로도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국가기록원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당시의 실험은 국제적으로도 공인받은 차원의 일이었다. 미국에서 발행되던 우주공학 전문 잡지 ‘미사일과 로켓(missiles and rockets)’ 1959년 3월호에는 세계 미사일 발사장 지도가 실려있는데, 여기엔 한반도의 ‘Inchon(인천)’도 표시되어 있다. 더구나 이 잡지는 위에 언급한 공개 실험보다도 몇 달 먼저 나온 것이다. 이는 앞서 1958년에 이미 비공개로 같은 장소에서 로켓 실험을 했던 것이 알려진 때문이었다.

이 지도는 1959년 10월에 창간된 ‘우주과학’이라는 간행물에 재수록되어 우리 국민에게도 알려졌다. ‘우주과학’은 앞서 1958년에 창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개발 관련 전문가 조직인 대한우주항행협회의 기관지이다. 당시의 회원들은 여러 대학의 우주항공공학자들 및 공군, 또 정부의 관련 부처 직원 등 우주개발 분야의 엘리트들이 총망라되었다. 그중에는 훗날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왕복선 개발의 주역 중 하나로 활약하게 되는 박철 박사 같은 인물도 있었다.

1960년 전국과학전람회에 출품된 '유생물 인공위성'. 서울SF아카이브
1960년 전국과학전람회에 출품된 '유생물 인공위성'. 서울SF아카이브

초창기 우주개발사가 잊혀진 이유

로켓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분야는 인공위성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은 공식적으로 1992년에 지구 공전 궤도에 오른 우리별 1호가 맞지만, 인공위성 제작 시도 자체는 그보다 30년도 더 전인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 전국과학전람회에서는 경기공업고등학교 과학반이 장승호 교사의 지도로 ‘유생물 인공위성’을 만들어 출품, 민의원의장상을 수상했다. 이것은 모형이 아니라 실제로 로켓에 실려 우주 궤도에 오르면 인공위성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각종 측정장치와 통신장치 등이 들어 있었다. 인공위성 제작에서 중요한 관건 중 하나가 우주 환경에서도 잘 동작하도록 탑재 장비들을 설계하는 것이다. 우주는 진공 상태에다 강력한 우주방사선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극저온과 태양열로 인한 고온을 넘나들기 때문이다. 당시 출품자들은 그런 점들까지 고려하여 실제로 우주에서 작동할 수 있는 인공위성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인공위성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시 제작된 인공위성도 아직도 어딘가에 흔적이나마 남아있기는 한 건지 전혀 알 수 없을뿐더러, 당시의 경기공업고등학교(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의 전신) 장승호 교사와 과학반 학생들도 찾을 수 없다. 사실 필자는 십수 년 전부터 이 인공위성과 관련된 내용을 기고와 강연 등을 통해 기회 있을 때마다 알리면서 제보를 기다렸지만 아직 단 한 건도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우주개발사를 논할 때 다들 기억하는 것은 최초의 인공위성이 1992년의 우리별 1호라는 사실이고 로켓 역시 2013년에야 발사에 성공한 나로호를 떠올릴 뿐이다. 1950년대 말의 로켓 발사와 대한우주항행협회의 결성, 1960년대 초의 인공위성 제작 시도와 60~70년대에 활발했던 민간의 로켓 동아리 활동 등은 사실상 잊힌 채 이제껏 누구도 제대로 복원하고 알리는 노력을 하지 못했다.

왜 우리의 우주개발 역사는 이렇듯 단절되었던 것일까? 사실 이는 정치 및 외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각각 집권 뒤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자 로켓 연구팀을 해체하거나 각서(한미미사일지침)를 쓰는 등 적극적으로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로켓 개발이 대륙간 탄도탄 등 미사일 무기로 전용될 것을 우려하던 미국을 의식한 일이었다.

이렇듯 우리의 우주개발 의지를 옥죄어오던 한미미사일지침이 완전히 폐지된 지금이야말로 비로소 우리의 잊힌 초창기 우주개발 역사를 완전히 복원할 때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의 관련자들은 대부분 노령으로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다. 이제라도 남은 분들을 찾아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모아서 기록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 관계기관들에 관심과 지원을 간곡히 호소드린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광고

광고

광고

미래&과학 많이 보는 기사

‘한 발로 10초 서기’ 해보면…‘10년 후 사망 위험’ 보인다 1.

‘한 발로 10초 서기’ 해보면…‘10년 후 사망 위험’ 보인다

평균 건강수명 73.1살…70대 되면 왜 갑자기 노쇠해질까 2.

평균 건강수명 73.1살…70대 되면 왜 갑자기 노쇠해질까

‘귀도’에서 아시아 행복지수 1위로…대만의 변화 비결은? 3.

‘귀도’에서 아시아 행복지수 1위로…대만의 변화 비결은?

‘면도날 삼키는 인후통’ 부르는 오미크론…어찌해야 덜 아플까 4.

‘면도날 삼키는 인후통’ 부르는 오미크론…어찌해야 덜 아플까

반세기만에…‘아폴로 쌍둥이’, 달 착륙 위한 새 장정 돌입 5.

반세기만에…‘아폴로 쌍둥이’, 달 착륙 위한 새 장정 돌입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Weconomy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 뉴스그래픽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더나은사회 | 탐사보도 | 서울&
스페셜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사업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