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회의에 참석해 정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동원해 대기업에 미르재단 설립 기금을 강제 모금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기가 막힌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가 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지난해 11월6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문예위 위원인 박 회장은 이 회의에서 “(정부가) 이미 재단법인 ‘미르’라는 것을 만들고 전경련을 통해 대기업들의 발목을 비틀어서 이미 450억~460억을 내는 것으로 해서 굴러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포스코 사외이사이기도 한 박 회장은 같은 날 열린 포스코 이사회에서 미르재단에 30억원을 출연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다른 위원들에게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당시 “(포스코 쪽이) 리커창 중국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담 때문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중 간에 문화예술교류를 활성화시키자는 얘기가 오갔고, 이를 서포트(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이것(미르재단)을 만들었다고 설명하면서, (포스코 쪽에서) 이사회의 추인만 원하는 것이지 이사회에서 부결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부결도 못 하고 왔다”고 말했다. 수십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출연하면서도 정부의 일방적인 뜻에 따라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만 한 데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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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정부가 국제문화교류 사업을 내세우면서 그동안 문예진흥기금을 운영해온 문예위에 맡기지 않고 또다른 재단을 만드는 데 대한 비효율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문예위)한테 맡겨주면 추가로 아무런 비용이 안 들고, 소위 간접비용의 손실 없이 고스란히 국제문화예술교류 사업에 쓸 수 있을 텐데 괜히 간접비용이 엄청 들어갈 것 같다”며 “문예위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시비를 한번 걸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이런 지적에 대해 박명진 문예위원장도 “‘메세나가 있는데 이것을 왜 따로 만들어야 하나’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동의하며, “문화체육관광부에 문의해서 다음 회의에 답을 드리도록 하겠다”고 상황을 정리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후속 논의는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도종환 의원은 “박 회장의 발언은 그동안 미르재단에 대한 무리한 모금을 둘러싸고 재계에서 쌓인 불만과 피로감을 확연히 보여준다. 게다가 국제문화교류 사업은 문예진흥기금 등을 통해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굳이 재단을 따로 만든 것은 문화정책의 일관성 차원에서도 맞지 않는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후 활동을 염두에 두고 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관여해 미르재단을 만들었다는 세간의 의혹을 방증하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정애 이세영 엄지원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