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7 비행기에 온 국민을 태웠으나 시동도 걸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다 격납고로 다시 들어가는데, 사과조차 않고 다른 비행기를 타라는 꼴이다.” 경제부처 장관을 지낸 한 인사가, ‘엠비(MB)노믹스’의 핵심인 7·4·7(7% 성장-국민소득 4만달러-7대 경제강국) 공약에서 비롯된 이명박 정부 초기 경제정책의 실패와 목표 수정 과정을 두고 한 말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부처 장관들은 2일 경제정책 목표와 방향을 대폭 수정한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경제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6% 안팎에서 4% 후반으로 낮추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3% 안팎에서 4.5% 안팎으로 높였다. 경상수지 예상 적자 폭은 70억달러에서 100억달러로 늘었다. 일자리 창출은 35만명에서 20만명으로 줄였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여 만의 참담한 후퇴다. 하지만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은 없고 ‘네 탓’만 무성하다.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는 성장에서 물가와 민생 안정으로 고쳐 잡았다. 물가 안정을 위해 시중에 넘치는 돈(유동성)에 대한 관리 대책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저소득층에게 주택임대료를 보전해 주는 ‘주택바우처 제도’를 만들고, 청년인턴 지원제도를 신설하는 등 민생과 고용 안정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성장을 위해 규제 완화와 감세정책은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물가와 민생을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방향 전환은 옳다. 하지만 구체적 정책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레토릭’(수사학)에 그칠 수 있다. 실제로 물가안정책은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성장 위주였던 재정정책이나 환율정책에선 뚜렷한 변화를 읽기 어렵다.
경제장관들은 “국민들께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정책 실패는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는 유가 등 원자재값 급등과 선진국 경제 둔화 등 대외 여건이 크게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촛불시위 탓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가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은 1, 2차 오일쇼크에 준하는 3차 오일쇼크라 할 만한 상황”이라고 발언한 대목에서도 대외 여건을 탓하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여건이 나빠진 건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정부의 잘못된 상황 판단과 정책 탓도 크다고 말한다. 올해 성장률을 6% 안팎으로 잡을 때부터 경제전문가들은 무리라며 물가 불안을 걱정했다. 고환율 정책이 대표적이다. 고환율은 고물가를 낳았고, 소비와 투자를 더욱 위축시켰다. 올 들어 6월까지 중국·일본·대만 등의 통화가치는 미국 달러화 대비 6.5~7% 절상됐는데, 우리 돈은 되레 10.5% 절하(원-달러 환율 상승)됐다. 국제 원자재값 상승 충격이 우리 경제엔 이중으로 덮쳤다. 경제 운용이 뒤틀리고 국민은 더 큰 고통을 겪었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는 “뭘 잘못했는지부터 반성해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고 (정부 돈) 푸는 방향으로 가서는 진보뿐 아니라 보수 쪽에서도 신망을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경제 운용 면에서 신뢰 상실이라는 부채를 안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외 여건 변화로 (정책을) 조정하겠다고만 해서는 신뢰 회복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병수 선임기자 byungs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