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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가 12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이재명팔이’ 세력에 문제를 제기하며 대응 계획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정봉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가 12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이재명팔이’ 세력에 문제를 제기하며 대응 계획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8·18 전당대회가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는 가운데, 워낙 일방적인 ‘확대명’(확실히 대표는 이재명) 분위기로 관심도가 떨어지던 판이 ‘명팔이’ 세 글자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명팔이’는 다섯 자리를 뽑는 당 최고위원 선거에 나선 정봉주 후보가 지난 12일 던진 얘기입니다.

“이재명 전 대표를 팔아 권력 실세놀이를 하고 있는 ‘이재명팔이’ 무리들이 있다. 통합을 저해하는 당 내부 암덩어리인 ‘명팔이’를 잘라내야 한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국회 소통관에서 연 당시 기자회견에서 정 후보는 ‘이재명팔이 무리가 누구냐’는 취재진 질문에 즉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후폭풍이 거셉니다. “앞과 뒤가 다른 자, 오로지 이 전 대표 공격에만 몰두하는 이런 자들이야말로 진짜 이 전 대표를 파는 자”(김병주), “이재명의 억강부약 대동세상, 기본사회, 먹사니즘 저 참 많이 팔았다. 더 팔겠다”(강선우) 등 다른 최고위원 후보들이 일제히 정 후보를 비판하면서 내부 싸움이 고조되는 모양새입니다. ‘이재명 중심으로 뭉치자’던 정 후보는 왜 갑자기 ‘이재명팔이’ 척결을 외쳤을까요?

‘명팔이’ 갈등은 지난달 20일 이재명 당대표 후보의 차 안에서 시작됐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이 후보는 인천 지역 전당대회를 치른 뒤 자신의 차 안에서 김민석 최고위원 후보와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도 하느라 (김 후보가) 본인 선거를 못 해서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말했습니다. 최고위원 후보 모두가 친이재명(친명)을 외치는 혼전 속에서 확실한 ‘재명픽’을 찍어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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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임이 확실시되는 이 후보는 김 후보 당선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 후보는 ‘목발 경품’ 장병 비하 발언, 가정폭력, 성추행 의혹 등으로 지난 4·10 총선 공천이 취소되는 등 구설수가 잦고 통제가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그 뒤 다른 최고위원 후보 모두 이재명 후보 방송에 출연했지만, 이 후보를 지지하는 권리당원들이 이 후보와 ‘주파수’를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상위권 순위가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유일한 원외 인사라는 약점에도 전당대회 초반 권리당원 온라인투표 1위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정 후보가 김 후보에 밀리기 시작한 시점이 그 즈음입니다. 21일 기준 누적 4위였던 김민석 후보가 일주일 만인 27일 울산·부산·경남, 28일 충남·충북 선거에서 정 후보를 제치고 1위를 기록하더니, 누적 득표가 지난 3일 1위로 올라선 것입니다. 지난 11일 대전·세종까지 진행된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 누적득표 결과, 김민석 후보(18.03%)가 1위를 굳히면서 2위로 밀려난 정 후보(15.63%)와 격차를 벌리는 모양새입니다. 최고위원 선거는 대의원 14%와 권리당원 56%(온라인+ARS), 국민 여론조사(민주당 지지자와 무당층 대상) 30%를 합산해 결정됩니다. 순회 경선은 18일 서울 한 곳을 남겨뒀지만, 정 후보로선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국민 여론조사 등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불안한 상황이 된 거죠.

이 때문에 정 후보가 이 후보의 ‘선거 개입’에 분노했다는 후문이 들려옵니다. 정 후보는 2022년 이재명 1기 체제에서, 통상 재선급 이상이 맡는다는 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을 지낼 정도로 사이가 나쁘지 않았는데 이번에 빈정이 상했다는 것입니다.

정 후보가 비공개 자리에서 한 발언까지 알려지면서 갈등은 더 증폭됐습니다. 지난 8일 박원석 정의당 전 의원은 에스비에스(SBS) 라디오에 나와 “(정 후보가) 이재명 전 대표의 최고위원 (경선) 개입에 상당히 열 받아 있다”며 “정 후보가 ‘최고위원회의는 만장일치제다. 두고 봐, 내가 들어가면 어떻게 하는지’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후보 지지자들은 정 후보에게 거세게 항의를 쏟아냈습니다. 정 후보의 한 측근은 “이재명 후보는 연임이 기정사실화돼있는 당대표인데, 반장선거에 담임이 개입한 셈 아닌가. 거기다가 ‘개혁의 딸’이라는 강성 지지자들이 정 후보를 공격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 일각에서 ‘명팔이’는 이 후보 강성 지지자, 혹은 지지 그룹을 표방하는 ‘더민주전국혁신회의’, 나아가 ‘이재명’을 지칭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 후보에게 화가 났지만 이 후보를 저격할 순 없고 더 약한 상대를 골라 때렸다’는 것입니다. 이 후보가 대표일 때 정무조정부실장을 맡았던 김지호 전 민주당 부대변인은 “원래 장수를 치기 전에 말부터 베는 것”이라며 정 후보가 사실은 ‘명팔이’가 아닌 이재명 후보 당사자를 저격하는 것이었다고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정 후보가 비이재명계 표심에 호소하기 위해 이런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난 10일 경기 지역에선 3위, 11일 대전·세종 경선에서 정 후보는 2위와 큰 차이 없는 3위를 기록하면서 당선권에 안착했습니다. 17개 지역 중 서울 1곳의 경선만 남은 상황에서 당선권에 안착한 정 후보가 이 후보와 각을 세우는 것이 비교적 친명색이 옅은 대의원 투표나 국민 여론조사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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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8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전당대회에선 1명의 당대표와 5명의 최고위원이 선출됩니다. 이제 시선은 최고위원 선거 이후를 향합니다. 정 후보는 기자회견 다음날인 13일 페이스북에 “이재명 후보를 간절히 지키고자 하는 개딸, 당원들이 ‘이재명팔이’일 리가 있느냐”고 해명했지만, 당 안팎의 시선은 엇갈립니다. 민주당 한 인사는 “당내 불특정 다수를 암덩어리에 비유하며 ‘제거’하겠다고 공약한 거잖나. 분란을 일으킬 게 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단지 빈정이 상했을 뿐 (이 대표와 비슷하게) 팬덤 정치로 성장한 정치인이고 주류를 지향하기 때문에 이 후보에게 일부러 반기를 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선도 있습니다. 정 후보는 과연 어떤 길을 걸어갈까요.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