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를 내건 한동훈 대표가 23일 62.84%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으며 당선된 것은 윤 대통령에게는 그만큼의 위기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관계가 4·10 총선을 거치며 악화하고 사실상 회복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가운데, ‘미래 권력’인 한 대표가 자기 색깔을 선명하게 할 경우 윤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찾아 당대표 선출 결과가 나오기 전에 한 축사에서 “우리는 한배를 탄 운명 공동체이고, 우리는 하나”라며 “극단적인 여소야대 상황을 이겨내고 이 나라를 다시 도약시키려면 무엇보다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축사에서 당정이 ‘하나’라는 표현을 다섯차례 썼고, ‘단결’도 세차례 언급했다.
그러나 한 대표가 당원 투표에서 62.65%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데 반해 친윤계가 지원한 원희룡 후보의 당원 득표율이 19.04%에 그칠 정도로, 윤 대통령에 대한 당내 반감은 예상보다 큰 것으로 드러났다. 김철현 정치 평론가는 “무게중심이 윤 대통령에서 한 대표에게 넘어가는 계기가 된 전당대회였다”며 “당정 관계에서 당이 우위에 서게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전당대회를 통해 당심이 ‘현재 권력’이 아닌 ‘미래 권력’을 택했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약화하고, 당정 관계에서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로 이날 한 대표는 당선 수락 연설에서 ‘미래’ ‘변화’ ‘국민 눈높이’ 등을 여러차례 강조하며 당정 관계의 변화를 예고했다.
당장 야당의 채 상병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공세에 한 대표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따라 당과 용산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여당의 총선 참패 뒤 여소야대 국면에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국정운영을 이어온 윤 대통령 입장에선 특검법 재의결을 부결하기 위한 여당의 108석이 소중하다. 야당이 추진하는 각종 특검법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써서 돌려보내더라도 8석의 여권 이탈표가 나오면 재의결에서 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대표에 출마하면서 채 상병 특검과 관련해 ‘제3자가 특검 후보 추천’이라는 대안을 제시한 한 대표가 특검법 국면에서 대통령실과 다른 입장을 취할 경우 윤 대통령의 거부권은 사실상 무력화된다.
전당대회를 달궜던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에서 드러나듯 김 여사와 관련된 여러 논란에 대한 시각차도 화약고다. 당장 이날 한 대표는 기자들에게 김 여사 ‘검찰 출장조사’와 관련해 “국민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통령실은 그동안 ‘전당대회 불개입’ 원칙을 천명하며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전당대회 결과에 촉각을 세워왔다. 이날 한 대표의 당선에 대통령실은 이전 사례를 고려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한 대표가) 예상보다 높은 득표율이 나왔다”고만 언급했다.
일단 대통령실은 한 대표와 충돌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는 것은 경계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다른 관계자는 “야당이 이렇게 (윤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붙이는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냐”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윤 대통령이 체코 원전 수주 등 국정 성과를 보여주며 국민 지지를 받으면, 여당도 무조건 용산과 각을 세우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당정 화합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한 대표를 비롯해 국민의힘 전당대회 낙선자, 신임 지도부 등을 24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만찬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