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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경기도 파주시 운정동에서 발견된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내용물을 군인들이 치우는 모습. 사진 합동참모본부 제공
지난 2일 경기도 파주시 운정동에서 발견된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내용물을 군인들이 치우는 모습. 사진 합동참모본부 제공

북쪽의 ‘오물 풍선’ 보내기 “잠정 중단” 발표로 충돌 위기로 치닫던 ‘대북전단-오물 풍선’ 사태에 ‘일단 멈춤’ 신호가 켜진 듯했으나 위기 지수가 오히려 높아졌다. 정부가 3일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 정지’ 결정이라는 강수로 맞받으면서다.

‘충돌 회피’의 첫 신호는 지난 2일 밤 10시 넘어 북쪽에서 나왔다. 북쪽은 ‘김강일 국방성 부상(차관) 담화’로 “(대북전단과 같은) 휴지장들을 주워 담는 노릇이 얼마나 기분이 더럽고 많은 공력이 소비되는지 한국 것들에게 충분히 체험시켰다. 국경 너머로 휴지장을 살포하는 행동을 잠정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뒤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에 착수하기로 했다”며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문제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지 4시간여 만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북쪽의 ‘일단 멈춤’ 신호에 오히려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 정지’로 대응 수위를 높였다. 북쪽의 추가 ‘도발’ 땐 ‘9·19 군사합의’에 제약받지 않고 군사적 대응을 포함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뜻이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계기에 서명한 ‘9·19 군사합의’는 “분단사 최초의 운용적 군비 통제” 시도라는 호평을 받았고, 이후 ‘한반도 평화의 마지막 안전핀’이라 불렸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9·19 군사합의’를 “군의 대비 태세에 많은 문제를 초래”하는 ‘나쁜 합의’로 여긴다. 남북관계발전법은 남북 합의서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때 “기간을 정해” 하도록 규정(23조2항)하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가 ‘9·19군사합의’ 효력 정지 결정의 단서로 덧붙인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문구가 이 조항을 충족하는지를 두고 위법 논란이 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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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접경 수역에서 우발적인 군사충돌 가능성을 높인다. 북쪽은 지난달 26일 ‘김강일 담화’에서 한국 해군·해경이 “해상국경선을 침범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며 “어느 순간 수상·수중에서 자위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대북전단이 남북 갈등의 불쏘시개가 될 위험도 여전하다. 지난달 10일 강화도에서 대북전단 등을 북쪽으로 날려보낸 탈북민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는 3일 “‘북쪽으로 바람이 불면 대북전단을 날려 보내겠다’는 기존 계획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북쪽은 2일 밤 “한국 것들이 반공화국 삐라(전단) 살포를 재개하는 경우 발견되는 양과 건수에 따라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집중 살포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한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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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런데도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대북전단 살포 자제를 요청할 거냐’는 물음에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고려해 접근하고 있다”고 답했다. 민간의 대북전단 살포를 사전에 적극적으로 단속·제어할 계획은 없다는 얘기다. 남북관계의 앞길에 지뢰가 쌓여가는 분위기다.

여러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대북전단, 오물 풍선 따위 주고받기는 남이 볼까 두려울 정도로 유치한 싸움”이라며 “정부가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을 의식해 일부러 대북 강경 대응 수위를 높이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