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1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1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최근 발표하는 대통령 직무평가 여론조사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긍정 평가자나 부정 평가자나 가장 큰 이유로 외교·안보를 꼽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6일 연합뉴스가 발표한 정례 여론조사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자의 51.2%, 부정 평가자의 28.2%가 ‘외교·안보’를 첫번째 이유로 들었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이런 현상은 윤 대통령이 정치·경제 등 국내 사안보다는 외교·안보, 특히 한·미·일 협력 체계 강화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나토 정상회의 참석, 9월 영국 여왕 장례식 참석과 미국 유엔총회 기조연설, 올해 4월 미국 국빈방문,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등 굵직굵직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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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 특히 한·미·일 협력 체계 강화에 대한 민심의 평가는 어떨까요? 연합뉴스가 여론조사에서 이 부분을 따로 물어봤습니다. ‘한·미·일 정상회의 결과가 한반도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인지’ 물었더니, 응답자의 45.1%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고, 44.8%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긍정과 부정이 비슷하게 나온 것입니다.

윤 대통령과 국민 인식의 괴리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미·일 협력 체계를 강화하면 안보에 당연히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가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도대체 왜 이렇게 높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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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윤 대통령 직무평가가 좋지 않기 때문에 외교적 성과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과 많은 우리 국민 사이에는 외교·안보에 대해 큰 시각차가 존재합니다.

지난 9월1일 윤석열 대통령은 설립 60주년을 맞은 국립외교원을 방문해서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나흘 전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서 던진 “실용이 아니라 이념이 중요하다”는 발언 못지않은 폭발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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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유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아직도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 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 그리고 규범에 입각한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나라들과 함께 안보와 경제, 정보와 첨단기술의 협력 네트워크를 탄탄하게 구축해야 됩니다. 외교 노선의 모호성은 가치와 철학의 부재를 뜻합니다. 상대에게 예측 가능성을 주지 못하는 외교는 신뢰도, 국익도 결코 얻지 못할 것입니다. 국립외교원은 우리의 외교관들이 분명한 가치관, 역사관, 국가관에 기초해서 외교를 수행할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풀면 ‘미국, 일본과 확실하게 손잡고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주문입니다. ‘국익보다 가치가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 놀랍습니다. 이 발언이 옳다면 국제정치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합니다.

윤 대통령은 ‘가치 외교’와 ‘한·미·일 협력 체계’로 자신이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 다녀온 뒤 8월21일 국무회의에서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했습니다. “한·미·일 3국 협력과 공동 이익의 추구는 우리들만의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것”이라며 “인태지역의 모든 국민들과 인류 전체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고 그것이 바로, 3국의 공동 이익과 부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치인의 발언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의 설교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18일(현지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인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를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캠프 데이비드/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18일(현지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인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를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캠프 데이비드/연합뉴스
이승만·박정희도 때론 미·일과 갈등

그러나 우리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과 달리 외교·안보에 대해 훨씬 유연하고 현실적인 안목을 갖고 있습니다. 19세기 말 한반도 주변 열강의 다툼에 휘말려 나라를 잃었던 처참한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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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은 우리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겼습니다. 1945년 얄타회담에서 미국·영국·소련은 한반도 신탁통치를 논의했고 그 결과 남북이 분단됐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는 한동안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마라, 일본은 일어선다, 조선사람 조심해라”라는 민요가 유행했습니다. 짧은 노랫말에는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이치를 꿰뚫어 본 민중의 지혜가 녹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가 최대의 고민이었습니다. 대개는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주변 강대국과의 충돌과 마찰을 불사했습니다. 이승만·박정희 등 독재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도 엄연히 대한민국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 관료들을 중용하고 반민특위를 해체한 것 때문에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은 일제와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재임 기간 내내 일본에 초강경 노선을 취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 미국의 대통령들과도 사이가 무척 나빴습니다. 미국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때부터 한국과 일본의 군사협력을 요구했습니다.

미국이 한국전쟁 초기에 일본의 군대를 데려와야 한다고 제안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그렇게 하면 공산군보다 먼저 일본군과 맞서 싸우겠다”고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독도 해역을 지키기 위해 ‘이승만 라인’을 선포하고 이곳을 침범하는 일본 어선을 나포했습니다.

1954년 한-미 정상회담을 하면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일본과의 수교를 강하게 요구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미국은 이런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 일도 있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965년 일본과 수교했습니다. 국내에서는 1964년부터 강한 반대 여론이 일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남대문서 중앙청에 이르는 중간 녹지대에 안중근, 손병희, 김구, 안창호, 윤봉길, 김좌진 등 반일투사들의 석고상을 세웠습니다. 수교 뒤인 1968년에는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웠습니다. 이 내용은 최근 오마이뉴스 ‘김종성의 히,스토리’에서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인권 탄압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로 미국과 사이가 나빴습니다. 박동선씨를 시켜 미국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벌였다가 ‘코리아 게이트’ 사건이 터졌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에 대비해 자주국방을 시작했고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습니다.

미국은 이런 박정희 대통령을 싫어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미국을 싫어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석에서 “미국놈들”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고 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씨가 2019년 3월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그는 숨지기 전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공동취재사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씨가 2019년 3월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그는 숨지기 전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공동취재사진
신의 한수일까, 지옥문 열었을까

전두환 대통령은 좀 달랐습니다. 미국과 관계가 매우 좋았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의 대소련 강경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고, 팀스피릿 훈련을 강화했습니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도 크게 늘렸습니다.

일본과의 관계도 좋았습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1983년 안보협력차관 명목으로 40억달러를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회고록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공산 진영의 양대 주축인 소련, 중공과 지리적으로 마주하고 있어 동서 냉전의 전초 같은 위치에 있었다.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면서 국가발전을 이루기 위한 전략도 그러한 인식 위에서 출발해야 했다. 외교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맹방과의 협력 관계 강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함께 태평양국가로서 공산권에 대한 공동안보 협력체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일본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면, 이른바 ‘한·미·일 3각 안보 체제’가 공고화됨으로써 북한의 도발을 억지함은 물론 동북아 지역의 평화 유지에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대미-대일 관계는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과는 매우 다르고, 전두환 대통령과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한·미·일 3각 안보 체제’를,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 협력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시대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념이 같기 때문일까요?

마무리하겠습니다.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로 구축된 세 나라의 포괄적 협력 체계가 윤석열 대통령의 호언장담처럼 “우리의 안보를 더욱 튼튼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양질의 고소득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하는 ‘신의 한 수’가 될까요?

아니면, 원로 지식인들의 우려대로 “동아시아에서 미국·일본·한국과 중국·러시아·북한의 관계를 대결 구도로 만들고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의 긴장을 극단적으로 악화시키는” 사태로 치닫게 될까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위성이나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넘겨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한·미·일에 맞서 북·중·러가 합동으로 군사훈련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걱정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혹시 지옥문을 열어젖힌 것은 아닐까요? 아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